< 아무튼 비건>(김한민)을 읽고 나는 혼란스럽다
최근 김탁환 작가께서 비건을 선언하고 온몸으로 비건을 실천하기 시작하셨다. 김탁환 작가는 제주에 사시는 강보식 선생님의 전도로 비건을 시작하셨다고 했다. 그분들과 2박 3일 제주를 걸을 일이 있어, 비건에 대해 관심이 생겼고 한식은 매우 비건적인 식단임에도 현재는 반 비건적인 식단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식에 관심이 많아 비건과 한식을 매칭하여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보식 선생님께 여쭈니 일단 <아무튼 비건>을 읽고 비건에 대해 이해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읽었다. 책의 시작은 '타자'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풀어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비건에 왠 타자! 라는 질문이 생겼고, 저자는 그에 대한 답으로 철학자 레비나스의 말을 인용한다.
"참으로 사람다운 삶은 그냥 존재함의 차원에 만족하는 조용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답게 사는 삶은 타자에 눈뜨고 거듭 태어나는 삶이다."
타자에 눈을 뜬다는 것은 어렵고 또 많은 귀찮음을 극복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 타자는 동물이 될 수도 있고 그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타자에서 시작된 저자의 물음은 환경, 동물복지, 비건에 대한 간단한 정보 그리고 방법까지 본인이 생활하면서 온몸으로 느낀 비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최근 농가를 취재할 일이 있었다. 나는 축산농가들이 암소나 암돼지의 공태기(임신을 할 수 있었음에도 임신을 하지 않고 지내는 기간)를 단 하루라도 줄이기 위해 별별 방법을 동원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기술을 개발하여 축산농가의 생산성을 높인다는 그 분께는 그 기술력을 칭찬했지만 내 마음 한 켠에서는 '인간은 참 잔인한 존재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축산 농가와 같이 살기 위해 이 잔혹한 방법에 박수를 쳐야하나? 더 많은 자연과 공생하기 위해 나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하나?
고기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병원에서 고기를 더 먹어야한다는 처방을 받고 억지로 먹기 시작해 고기 맛을 조금 안 정도이다. 책을 한 권 읽었다고 내 삶이 하루 아침에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비건이라는 타자를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하려한다.
이 책 <아무튼 비건>은 다소 교조적이다. 당연하다. 저자는 비건이야말로 미래라고 강조하는 사람이니 그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은 비건의 철학과 필요성에 대해 비교적 쉽고 받아들일만 하게 설명하고 있다.
엄청난 자본의 힘에 의해 식생활 마저 우리 의지로 선택하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한번 쯤 비건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