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게 한 첫 질문은, “어디 사세요?”
중이염이다. 피곤하면 귀에 문제가 잘 생긴다. 술 안 마시고 잘 쉬면 자연스럽게 낫지만 염증이라 약을 먹는 게 나을 것 같아 병원을 가기로 했다. 동네에 몇 개의 이비인후과가 있지만 다 대기가 길다.
운동 다니는 곳 근처에 진료과목이 다양한 의원 간판을 건 병원은 대기가 길지 않을 거 같아 그곳에 가기로 했다. 정형외과, 비뇨기과, 내과, 이비인후과를 진료과목으로 건 오래된 건물 2층에 있는 동네병원이다.
병원 문을 열었다. 오래된 건물에 어울리는 오래된 실내다. 간호사들은 패딩조끼와 기능성 상의를 맞춰 입었다. 그리고 족히 예순은 되어 보였다.
정돈되지 않은 실내와 간호사들의 표정을 보는 순간 ‘아...’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하면 거절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내 눈에 보인 것은 여기저기 놓인 수석과 앰프와 믹싱기였다. 원장님의 취미는 악기와 수석 수집인 모양이다.
원장님께 인사를 하고 귀가 아프다 하니 내 얼굴을 잠깐 들여다보시더니 ‘병원 안 다녀요? 이 동네 살아요?’라고 물으셨다. 특별히 병원을 자주 다니진 않는다 답하니 이번엔 ‘몇 년이나 됐어요?’라고 물었다. 환자의 상태엔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대기하기 싫어 일부러 사람이 없을 것 같은 곳에 오긴 했지만 뭔가 불안했다.
3년 좀 넘었다는 내 대답을 듣고 내 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 번엔 ‘사모님은 귓구멍이 정말 작네요’라는 엉뚱한 말씀을 하시고는 아~하고 입을 벌리라고 하셨다. 그리고선 귀도 귀지만 목도 붓고 임파선도 부었다고 하시며 이비인후과에 많이 걸린 해부도를 가리키며 설명해 주셨다. 원장님이 처방전을 쓰기 위해 책상으로 자리를 옮겨 나도 따라 자리를 바꿔 앉았다. 책상 위에 있던 작은 오카리나 같은 것이 눈에 띄어 물으니, 오카리나보다 더 멋진 악기가 있다며 전자 관악기를 꺼내 보여 주시며 ‘이게 야마하건데 백 가지가 넘는 악기 소리를 낸다’며 앰프에 전원을 넣고 연주할 준비를 하셨다.
아차! 싶었다. 싸한 진료실 분위기를 가볍게 하기 위해 던진 내 질문을 원장님이 덥석 물으신 거다. 난 진료실에서 이대로 원장님의 연주를 들어야 하는 것인가!
다행히 두어 번의 시도에도 전원 연결이 원활하지 않아 연주는 불발에 그쳤고 다음에 듣겠다고 말씀을 드리니 처방을 시작하셨다. 염증이 있으니 항생제를 쓸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두 번 반복하시며 독수리 타법으로 3일 치 처방을 입력하셨다.
처방전을 들고나가는데 들어올 땐 보이지 않던 주사실이 보였다. 반쯤 열린 커튼 사이로 주사실 내부가 보였다. 실내엔 침대가 여러 개 놓여있었고 환자도 여럿 누워있었다.
병원을 나서려는데 할머니 한분이 문을 열고 들어오시기에 문을 잡아드린 후 병원을 나섰다. 주사 처방이 없는 것에 안도의 숨을 내쉬며 같은 빌딩에 있는 작은 약국으로 갔다.
자주 다니는 약국이라 약사와 안면이 있어 방금 다녀온 병원 분위기가 독특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약사가, ‘그래요. 그 병원 처음 가셨어요?’ 그 병원 원장님 저 자리에서 20년 훨씬 넘게 진료를 하셔서 동네분들을 거의 다 아세요.’라고 말해줬다.
그래서 증상보다 어디 사냐는 질문을 먼저 하셨던 거구나! 진료실에 들어선 환자에세 던진 의사의 첫 질문에 대한 의심이 풀렸다.
이어서 약사는 ‘영양 주사 같은 거 안 맞으시나 봐요. 거기 주사실은 따듯해서 영양주사 맞고 누워있으면 좋아요. 물리치료사가 남자라 남자분들이 편하게 생각하고 많이 다니세요’라며 추가 정보를 주셨다.
물리치료를 잘한다는 이야기에 늘 어깨가 아프다는 남편 생각이 나서 ‘어깨 치료도 잘하세요?’라고 물으니 ‘어깨, 무릎 모두 물리치료가 좋아 동네 노인분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하셨다.
간호사 분들도 나이가 많다고 하니 최근에 일흔 넘긴 간호사 분이 그만두셔서 조금 젊어진 것이라고 했다.
약사로부터 병원에 대한 추가 정보를 들은 후에야 동네 의원과 원장님에 대한 의심을 풀 수가 있었고 왠지 모를 정도 조금 생겼다.
조금만 더 깨끗하면 좋을 거 같긴 하다.
이후, 이 병원의 잘못된 진단으로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 막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