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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라고 음식에서 파를 가려내면 안 되나요?

2021.10.28_파 맛을 알지만 여전히 좋아하진 않아요

파를 촘촘하게 썰면서, 라면에 파를 넣으면서 생각한다. ‘역시 파는 어른의 음식이야’라고.


오늘 아침도 역시 밥상 차리기가 싫었다. 급한 대로 냉장고의 채소를 꺼내고 남편에겐 파우치 도가니탕을 데워주었다. 대신 파를 촘촘히 썰어 듬뿍 넣어먹으라고 했다.


나는 파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렸을 땐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나를 펫처럼 취급하며 낮은 코를 빨래집게로 집어 높이겠다는 고모들이 ‘파를 먹어야 이뻐진다!’며 파를 먹였다. 난 이뻐진다는 말에 파를 입에 넣긴 했지만 그 미끈거리는 질감이 싫어 씹지 않고 그냥 삼켰다.


내가 스스로 파를 먹기 시작한 것은 마흔이 다 되어서 일 것이다. 잘 익은 파김치로 시작해 파김치는 제법 잘 먹고 심지어 잘 담그지만 여전히 국물에 들어가는 파는 가려내고 먹었다.


음식을 배우기 시작하고, 파에 대한 나의 태도는 조금 변했다.


지금은 라면엔 파를 그것도 뿌리에 가까운 흰 부분을 듬뿍 넣어야 라면 특유의 기름 맛도 제거되고 향이 좋다는 것을 알아서 나 혼자 먹을 라면에도 파를 넣는다(파를 자연스럽게 안 먹을 수 있다면 굳이 파까지 먹진 않는다). 게다가 구운 파는 맛있다고 생각하여 채소를 구울 때 파를 과감하게 함께 굽는다.


아마 난 더 어른이 되어도 국물 음식에 둥둥 뜬 파는 적극적으로 먹진 못할 것이다. 못 먹어서가 아니라 먹고 싶지 않아서다.


나는 편식을 존중한다. 남편은 복숭아를 알레르기 때문에 못 먹고, 혜민 씨는 밥에 올라온 콩은 맛있게 먹지만 콩국수는 못 먹고, 나는 닭 소 돼지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럼 뭐 어떤가? 먹을 수 있는 다른 음식을 먹으면 되는데. 그러나 파를 싫어하면 귀찮을 일이 많다. 파는 내 취향이나 의견과 관계없이 여기저기에서 불쑥 나타나고 가려내기도 참 어렵다. 동네 밥집에서 계란말이를 주문하며 ‘계란말이에서 파 빼주세요’ 해 보아라. 그럼 이런 답이 돌아올 것이다. ‘파 빼면 무슨 맛으로 먹어. 그리고 이미 계란에 파를 섞어 놓아서 안돼. 먹으면서 골라내’라고.  


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가급적 파를 잘게 썬다. 국물에 파를 넣을 때도 어슷하게 크게 써는 대신 촘촘하게 썬다. 그럼 먹기가 조금 수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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