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이문세의 노래를 부른다면

by 윤담
너 노래하는 거 좋아한다며, 여기 한번 나가봐.


폴란드 친구 휴버트가 문자를 하나 보내왔다. 교환학생으로 지내던 대학에서 음악 축제를 연다는 포스터였다.

나는 굵직하게 적힌 독일어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노래, 악기. 무엇이든 당신의 재능을 보여주세요.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든지 가능합니다.


기회는 늘 예기치 않은 모습으로 찾아온다. 무심코 흘린 말이 이렇게 날개를 달고 돌아올 줄이야. 쿵쿵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찻잎을 우렸다. 물결은 잔잔했지만, 내 손끝은 쉼 없이 움직였다.


저도 공연하고 싶어요.


메일을 보내고 5분도 지나지 않아 답신이 왔다.

‘Of course.’

오디션도 없이 공연진으로 합류하게 된 것이다.

손에 닿을 듯한 꿈 앞에서 잠시 멍해졌다. 예상치 못한 쿨함에 픽 웃음이 나왔다. ‘이방인은 환영받지 못한다’는 생각, 어쩌면 내 편견이었을지도.


그런데, 진짜 고민은 이제부터였다.

그들에게 어떤 노래를 들려줘야 할까?

모두가 아는 팝송? 아니면 내 이야기가 담긴 노래?


밴드부에서도 늘 가장 오래 걸리는 건 ‘곡 선정’이었다.

우리의 음색, 무대의 분위기, 관객의 마음이

한 줄의 멜로디로 연결될 수 있는 노래.

그걸 찾느라 반나절 동안 노트북을 닫지 못했다.


이번엔 상황이 더 쉽지 않았다. 무대는 독일의 작은 카페바. 관객은 각국에서 온 대학생들, 그리고 바를 찾은 독일인들이다. 날이 저물어가며 답이 보이지 않자

깊은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밤의 서늘한 향이 스며들어왔다.

그때, 우연히 뜬 한 공연 영상이 답을 알려주었다.


Snow melts off a leaf, on a warm spring day
잎사귀 위 눈이 녹아내리는 따뜻한 봄날

This old love, I’ll always see
옛사랑, 늘 바라보네

You will be with me
당신은 내 곁에 있을 거야

That white snow keeps going up high into the sky 하얀 눈, 하늘 높이 애써 올라가네

- Lyrics by Klove


이 영어 가사, 어디서 많이 들어본 느낌이었다. 바로 이문세의 〈옛사랑〉이었다. 한국 노래를 사랑하는 미국인이 옛사랑을 영어로 개사해 부른 무대였다.


그리운 옛사랑, 상흔을 애써 감추는 미련.

언어는 다르지만, 감정은 국경을 넘어 마음에 닿았다.

그 순간, 모든 답이 명확해졌다.


나도 〈옛사랑〉을 불러야겠다.

나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

그리고 모두에게 닿을 수 있는 노래.


찻잎은 무겁게 가라앉고, 마음은 고요히 맑아졌다.

컵을 내려놓으며 마지막 고민을 털어냈다.

밤하늘에 별이 흩어졌다.


그렇게 일곱 밤이 지나고,

드디어 공연 당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