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10년보다 더 오래된 추억들
어릴 적, 종각에 피아노거리가 있던 시절부터 시사일본어학원을 다니기 위해 수유동에서 버스를 타고 종각에서 내리곤 했다. 어학을 제대로 배우려면 종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취업준비를 할 무렵에는 친구와 함께 종로3가에 위치한 YBM토익학원을 다녔다. 학원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도 했지만, 가끔은 걸어서 학원 주변 종로 일대를 구경하기도 했다.
배가 고픈 날에는 3천원대의 작은 뚝배기에 나오는 된장찌개를 먹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 무렵부터 나는 종로를 좋아했다. 대단히 활기차지도 그다지 세련되지도 않은 곳이지만 나에게 시내는 언제나 종로였다. 경제력이 없어서 좋은 밥집이나 예쁜 카페를 가본 적 없이, CD플레이어를 가방에 넣고 긴 이어폰을 빼내어 귀에 꽂은 채 그저 걷는 것이 전부였어도 종로가 좋았다.
종로의 길은 오랜 역사를 지나며 자연히 형성된 도시답게 도로 폭이 균일하지 않고 구획이 촘촘하게 나뉘어 있다. 큰길에서 뻗어나가는 작은 골목을 걷다 보면 그 끝에 방향이 꺾인 새로운 골목이 나오기도 했고, 계단이 나오기도 했다. 이 길의 끝에 무엇이 나올지 예측하기 어려운 점이 종로를 걷는 재미였고 그 자체가 경험이며 발견의 기회였다. 종로는 내게 사소하지만 처음 마주하는 것들로 가득 찬 노다지였다.
나는 그때의 경험을 스마트폰 지도앱을 수시로 열어보는 편의를 누릴 수 없는 시절만의 낭만으로 기억한다.
버스를 타고 종로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언젠가 이곳에서 살아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종로일대의 극장들인 서울아트시네마, 코아아트홀, 씨네코드선재, 대한극장, 서울극장을 돌아다니며 독립영화들을 보기도 했다. 영화에 큰 관심이 없고 특별히 챙겨보는 매니아도 아니면서 시절마다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두었던 덕분에 수혜를 받았다.
오랫동안 좋아했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비롯해 토니타키타니, 스트로베리쇼트케이크, 소중한 날의 꿈, 가족의 탄생, 똥파리, 낮술과 같은 독립 영화들은 모두 이 시절에 종로 어딘가에서 은희언니를, 최지윤이를 따라가 어쩌다 보게 된 것들이다.
모의고사를 보는 어느 날, 학교에 가지 않고 코아아트홀로 영화 '돌스'를 보러 갔었다. 충동적인 실행이 아니라 완벽한 일탈을 계획하며 '냉정과 열정사이'와 '돌스' 두 선택지 중 신중히 고르고 골라 실행한 것이었다. 올드보이를 상영할 당시에는 미성년자였음에도 허술한 연령확인 덕분에(?) 맨 앞줄에서 관람하고 예상보다 더 자극적인 장면들에 충격 받았었다. (친구와 함께 한 달 뒤면 성인이니까, 조금 당겨서 미리 보아도 되지 않겠느냐는 논리?를 세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종로에서의 영화 관람 중 가장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는 날은 네 식구가 모두 함께 대한극장에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본 날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영화관람은 당시의 내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 이전에 가족과 함께 상영관에서 영화를 본 것은 일곱살 때였다. 동두천의 작은 극장에서 미녀와 야수를 보았는데 처음 와본 극장의 낯선 느낌과 설레이는 밤공기가 환상적으로 여겨져 영화 속 마법이 현실로 이어진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 어릴 때의 감정이지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에는 너무 어려 쿵쾅되는 마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부모님이 나를 위해 이 환상적인 영화와 화목한 분위기를 선물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시 넣어두고 20년 전의 대한극장으로 돌아가보면, 빠듯하게 사느라 함께 외출이나 여행, 여가생활을 즐기는 일이 적었던 우리 식구가 다시 시내로 나와 영화를 보게 된 것에 감사했다. 미녀와 야수를 보던 날로부터 14년 정도의 세월이 지난 후였다.
이제는 대부분 사라지고 없는 종로의 극장들에는 오래된 기억, 그 오래된 기억을 소환하는 또 다른 오래된 기억들이 그물처럼 엮여있다.
지금은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도 걸어 다녔던 종로에 살고 있다. 친구의 사촌이 살고 있는 익선동의 원룸형 아파트가 살기에 괜찮다는 추천으로 연이 닿은 2016년부터 지금까지 11년 차다. 고향인 동두천에서의 9년, 수유동에서의 10년보다도 긴 시간을 이곳 종로 익선동에서 보냈다.
마음을 나누던 곳이 생활권이 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익선동에서 살아가는 11년 동안 강남으로, 또 분당으로 출퇴근해야 했지만, 그 길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출퇴근이 어려울까봐 걱정해 주시는 동료분들께는 ego를 강북에 두고 일하는 자아만 강남으로 들고 간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종로에서 산 11년 동안 가장 가까이 지낸 이웃은 고양이 친구들이었다. 2017년 봄, 익선동과 바로 마주한 동네 운니동에서 어느 고양이 가족과 특별히 가장 사랑하는 나의 운이를 만났다. 운이와 함께한 7년이 조금 넘는 시간은 너무 짧았고 또 축복 같았다. 이 글을 열어볼 때마다 가슴 아플 자신이 없어서 고양이 가족과 운이에 대해서는 자주 열어보지 않는 일기장에만 남겨두고, 언젠가 조금 더 씩씩하게 꺼내어볼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때 다시 기록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