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를 떠나 살 수 있을까

사랑하는 도시를 마음에 담아두고

by 소현

이전 글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종로에 살기 이전부터 오랫동안 이곳을 좋아해 왔고 여전히 사랑하며,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주민세를 낼 때마다 꽤 기분 좋은 소속감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이 좋은 종로를 떠나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상상을 자주 한다. 대단한 이유 없이 단순히 이미 오래 살아봐서 일수도 있고, 언제든 원하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의 원룸형 아파트를 떠나 주거비가 저렴한 지방의 넓고 쾌적한 신축 아파트에 살아보고 싶어서 일수도, 관광객이 몰려드는 지금의 종로 거리에 피로감을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도 내 맘을 잘 몰라, 이랬다가 저랬다가 해.' 하고 말기에는 스스로의 인생 여정에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아서 자주 떠오르는 '떠남'에 대한 생각을 모으고 정리해 나가기 위해 글을 쓰기로 했다.


그래서 다시 제목의 질문으로 돌아가 "이 좋은 종로를 떠나 살 수 있을까?"

서울의 다른 지역은 사실 썩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회사와 멀지 않은 거리이면서 푸른 나무들과 흥미로운 가게들로 넘쳐나는데 북적이지는 않고 사람 사는 냄새나는 강남의 아파트라면? 같은 가정은 하지 않는다. 현실에 발붙여 살고 있는 직장인으로서의 고민을 해보고 있다.)

"안 살아봐서 모르지."라고 하기에는 그간의 경험으로 쌓아온 데이터들을 돌려 보았을 때, 내게 만족감을 줄 환경과 조건이 무엇일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오래 살아온 것의 이점이다. 이 정도 데이터가 누적되었으면 인사이트도 제대로 뽑을 줄 알아야 한다. 자신 없거나 크게 마음이 가지 않는 모든 일을 다 겪어보며 선택할 수는 없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살아오며 쌓아온 배움을 내 삶에도 적용할 수 있어야겠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현재 종로에 있는 나를 control로 두고, variant로 삼을 지역을 선택하여 동시에 실험을 돌릴 수 없고, 기간으로 끊어 A이후에 B, B이후에 C를 실행하는 방식으로 실험하는 것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다 실행해 보니 역시 A가 낫더라! 판단되더라도 롤백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연고 없는 지방에 가서 사는 N년간 새로운 직업을 찾고 새 아파트에서 쾌적하게 생활했지만 역시 서울에서 직장인으로 살던 날들, 종로 생활권자로서의 날들이 그리워 돌아가고 싶어 졌을 때, 나를 다시 받아줄 직장이 없다면 어떻게 하지? 같은 두려움도 리스크 중 하나다. 또 실험적으로 살아갈 젊은 날이 그리 길지 않다는 생각에 초조한 것도 한몫한다. 도전정신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그 생각도 맞다. 잃을 것이 그렇게 많냐고 묻는다면 그런 것도 같다.

더구나 나는 새로운 장소를 찾아 나서는 탐험보다는, 이미 마음을 준 곳에 계속 마음을 주며 거듭 찾아가거나 오래 머무는 일을 더 즐겁게 여긴다. 스스로를 특정한 유형으로 단정 짓고 싶지 않지만, 그동안 쌓인 삶의 궤적들을 돌아보면 그런 경향성이 있다.


그럼 그냥 서울에, 종로에 살면 되는 것 아닌가?

너무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다. 지금 이곳에 나를 괴롭히는 무언가가 없기 때문에 떠나기 위해 떠날 필요는 없다. 변화를 만들고 싶은 갈망의 속내를 잘 들여다보고 이것이 어쩌다 간혹 드는 호기심 같은 것인지, 아니면 필요를 본능적으로 센싱한 것인지 마음을 주고 싶은 도시들을 탐색하고 그곳에서의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떠올려보는 과정을 통해 차근히 정리해 보아야겠다.

이제는 고향같은 종로 돈화문로의 어느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