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세 번째 눈물 Ⅰ

1화 -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떠난다

by 사월




내 남편은 쉽게 울지 않는 사람이다.

결혼 후 지금까지 그가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본 건 딱 두 번뿐이었다.

심지어 영화나 TV속 슬픈 장면을 봐도 나만 울고 있어서 멋쩍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남편이 처음 무너졌던 날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첫째 딸의 돌잔치를 세 달 앞둔 그해 삼일절, 남편의 서른세 번째 생일이었다.

큰 아주버님을 제외한 시댁 식구들도 모처럼 함께 모였다.

누구보다 기쁘게 축하받아야 할 날인데도 누가 먼저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를 만큼 적막만 흘렀다.



며느리가 된 후, 내가 기억하는 어머님은 툭하면 머리가 아프다 하시며 판○만 찾으셨다.

하루에도 몇 병씩 드실 정도였다. 많이 드시면 안 된다고 사다 드리는 걸 일부러 모르는 척하면,

사 올 때까지 전화를 하던 마냥 어린아이 같은 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님 눈 밑에 종기 하나가 났다. 단순한 다래끼겠거니 했지만 조금씩 크기가 변하는

모양새에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동네 의원의 말을 듣고 철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2년 전에도 어머님은 뇌수막염으로 한 번 큰 고비를 넘기셨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어머님의 연세에는 예후를 장담하기 어려운 악성 흑색종이었다. 병원에서는 가능성이 낮아 되려 더 힘들어질 수 있다며 수술과 치료를 권하지 않았고 가족들은 고민 끝에 병원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내렸다.



우선 가장 가까웠던 우리 집에 모시고자 했지만, 한평생을 그 집에서 사셨던 어머님은 아파트 생활을 버티지 못하셨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모셔드릴 수밖에 없었는데, 야속하게도 그 시간도 오래 주어지진

않았다. 점점 더 나빠지는 병세에 결국은 입원을 택해야 하는 그 순간이 자식들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어머님은 당신이 큰 병에 걸린 줄도 모른 채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셨다.

처음엔 아들과 며느리, 손녀를 알아보시며 짧게나마 대화도 가능했지만 2~3주가 지나자 모든 걸 기계에

의존해야 할 만큼 어머님의 시간은 너무도 빠르게 줄어들었다.



남편은 퇴근 후 거의 매일 어머님을 보러 갔다. 대화 조차 할 수 없는 엄마를 보며 어떤 마음이었을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 달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머님 자제분들이 더 있으시죠?

가능한 한 빨리 오셔야 할 것 같네요. "


의사 선생님의 말에 남편은 너무 두려웠다고 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형제들에게 연락을 돌렸고 며칠이 지난

늦은 오후, 형님들과 막내 아주버님이 오셨다. 내 엄마의 몸이 그렇게까지 약해지고 작아져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도 그제야 제대로 마주한 것 같다.



기계음과 이상한 약품 냄새가 나는 그곳에 어머님만 고요했다. 남편 먼저 여의고 홀로 긴 세월, 농사에

바쳐 자식들 키우느라 억척스러웠을 두 손은 바늘을 꽂아대느라 성한 데가 없었다. 만지면 부러질 것 같은 엄마의 멍투성이 손을 두 딸들은 그저 조심 또 조심히 어루만질 뿐이다. 어머님은 딸들의 부름에도 대답이 없다. 아직은 뛰고 있는 박동기가 실낱 같은 희망일 뿐. 짧은 면회를 마치고 함께 저녁을 먹는 내내 무거운 공기만 맴돌았다. 막둥이 생일이 무슨 대수랴.. 집으로 가던 중 지역 번호가 찍힌 전화가 울렸다.

병원이었다.

“어머님이 위독하시니 빨리 오라”는 한마디가 병원으로 달리는 내내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돌아간 그곳에 더 이상 희망은 없었다. 제세동기의 불빛이 희미하게 깜빡였고 모니터 위의 그래프는 의미

없는 움직임만 있을 뿐.. 의사는 더 이상 소생을 이어가지 않았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주변의 모든 소리가 멈춘 느낌이었다. 의사의 사망 선고가 그랬다.

남편의 서러운 울음과 형제들의 애달픈 슬픔만이 병실을 메웠다.

이곳에서는 이런 죽음이 흔한 일이었던 걸까. 어머님의 시간은 막내아들의 서른셋 생일에 힘없이 멈추고

말았다.



저녁 먹기 전, 어머님을 마지막으로 면회했을 때 막내 형님이 어머님 귀에 대고 나지막이 하셨던 얘기가 있다.

"엄마~ 그동안 우리 키우느라 고생 많았어. 우리 왔으니까 우리 봤으니까 이제 편히 좋은 데로 가.

아프지 말고 잘 있어. 나중에 만나게..."


어머님은 희미한 의식 속에서도 자식들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계셨던 것 같다.



남편은 어머님이 마흔일곱에 낳은 늦둥이였다. 나이 차가 많은 형제들과 정을 나눌 시간도 짧았고,

아버님은 남편이 아직 꼬마일 때 세상을 떠나셨다. 남편의 유년 시절이 얼마나 지독하게 외로웠을지 나는 안다. 늙고 쇠약한 할머니 같은 엄마였지만, 어린 막내에게는 세상에서 유일한 버팀목이었다는 것도 안다. 한파가 끝나지 않은 그해의 3월은 유독 더 추웠다. 살아 있는 것과 떠난 것의 경계가 그렇게 얇다는 걸

나도 처음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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