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세 번째 눈물 Ⅱ

2화 - ‘다시’의 힘은 절망에서 나온다

by 사월



5년이 지난 어느 주말, 남편이 말했다.


"나 사업해 볼까? 지금 벌이로는 앞으로 더 빠듯해질 텐데."


사실 그랬다. 그때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둘째를 낳아 아이 둘 육아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사정으로 친정엄마와 함께 살게 되어 우리 집은 이제 다섯 식구가 되었다.

웬만해선 섣불리 시도하지 않는 남편이었기에, 그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을 고민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친구들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는 모습이 남편에게도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마침 일을 맡기겠다는 거래처도 생겼고, 한 번쯤은 남편도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나도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설령 실패해도 우린 아직 젊으니까 재기할 수 있을 거라고...

당시 제조업 경기가 전체적으로 좋은 건 아니었지만 늘 흐름은 반복되어 왔기에 곧 괜찮아 질거라 생각했다.



남편의 사업은 기술 제조 분야이다, 기술 보증을 통한 대출을 받기로 하고 남편을 도와 사업계획서를

정리해 제출했다. 반신반의하던 계획은 한 번에 통과됐다.

1억이라는 큰돈을 갚아야 한다는 부담 속에서도 남편의 얼굴에는 처음 보는 기대에 찬 빛이 돌았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도 설레는 시작이었다.

원하는 자금을 받아 작은 공장을 마련하고 수천만 원짜리 장비를 들이니 남는 돈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남편을 응원했고, 남편은 거래처를 믿었다.



사업이 처음부터 잘 풀릴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렇게까지 단 기간에 삶이 흔들릴 줄은 몰랐다.
오늘 출근해서 내일 퇴근하는 날이 부지기수였고, 거래처는 납기가 촉박한 일만 맡겼다.
끼니를 거르는 날이 많아지면서 남편은 한 달이 멀다 하고 살이 빠져갔다. 보기 좋던 얼굴이 피곤함에 짙게

물들어 갔지만, 그는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사업하면 다 이런 거지. 살도 빼고 좋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조금이라 고생하는 남편이 너무 안쓰러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아빠의 회사를 자랑스러워하며 “아빠 보러 또 가자” 하고 조를 뿐이다.



그렇게 세 달쯤 흘렀을까, 남편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밤새 납기를 맞춰도 거래처의 결제는 미뤄졌다. 서랍 속엔 세금계산서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받아야 할 돈은 끝내 들어오지 않았다. 생활비 통장은 얼마 더 버틸 만했지만 자재값과 나갈 돈만 쉴 새 없이 빠져나갔다. 남편이 그동안 얼마나 애를 태웠을지... 그저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믿었던 거래처에 대한 신뢰는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남편은 몸도 마음도 이미 지쳐 있었다. 몇 달을 더 버틴다 해도 그 이후를 장담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예견한 듯 보였다. 단 몇 개월 만에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니 남편은 비관과 자책 사이에서 지독하게 힘들어했다.


"괜찮아, 안 될 것까지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었잖아.
아직 다 잃은 건 아니니까 그만하고 싶으면 그만해도 돼."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굴었다.



그저 똑같은 일상이었지만 집 안에 머물면 적막이 더 짙어졌다.
첫째가 어린이집에 간 동안 둘째를 엄마에게 맡기고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한참을 달려 숲이 우거진 호수공원에 도착했다. 어디가 끝인지 모를 산책로를 그냥 말없이 걸었다.

남편이 앞서 걸으면 나는 네다섯 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잠시나마 혼자 숨 돌릴 시간을 주고 싶었다.
한참 후, 남편이 뒤돌아 나를 기다려주었다. 우린 그렇게 다시 손을 잡고 걸었다.
가을빛이 나무 사이로 눈부시게 비추던 오후였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평소 사위가 좋아하던 음식을 차려 두셨다. 남편은 밥을 몇 숟갈 뜨다가 말했다.


“이 집 내놓고 잠시 떨어져 지내는 게 나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월세방 얻어서 같이 벌어 살면 되지 뭐 하러~”


그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몇 숟갈 떴을 때쯤 서럽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편이 수저를 든 채 고개 숙여 울고 있던 것이다.

넓은 어깨가 하염없이 떨리는 걸 보니 나도 엄마도 이내 참았던 눈물이 터졌고

그 고단함을 우리는 함께 짊어지려는 듯 숨죽여 울어줄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태어나 세 번 운다는 말이 있다. 남편은 태어나면서 한 번, 어머님을 떠나보낼 때 한 번, 그리고

인생의 큰 실패 앞에서 울었다.

그 세 번째 눈물이 훗날 내 안에 오래도록 번져가는 파문이 될 줄은,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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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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