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낯선 경험
나는 어려서부터 잔재주가 많았다.
다만 특출 나지 않아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교내 대회에서 그림과 글짓기로 상을 받았고, 아홉 살에는 전국노래자랑 예심에 나가 심사위원의 칭찬과 관중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친구들과 어울리면 늘 춤이 빠지지 않았고, 성인이 된 뒤에는 지인들의 결혼식 축가를 자발적으로 맡았다. 직장의 워크숍에서 레크리에이션도 진행해 보고 체육대회나 송년회 장기자랑에선 1등, 2등은 당연했다. 하물며 내 결혼식에서도 식순에 들어갈 곡들을 직접 골랐고,
남편과 듀엣으로 축가를 불렀다. 돌이켜보면 나는 무대 위에서든 행사 준비 속에서든 사람들의 웃음과
박수를 끌어내는 일을 좋아했고,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로 인해 보람과 행복을 느꼈던 것 같다.
10여 년간의 타지 생활을 정리하고 서른이라는 나이가 코앞이던 시기에 고향으로 내려왔다.
일에 지치고 사람들에 지쳤기도 했고 그중 가장 컸던 건 만나던 연인과의 이별이었다.
언니 집에 머물며 한동안은 일을 하지 않았다. 어린 조카들을 돌보며 하루하루 다시 적응기간을 가졌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조급하지 않게 취직 자리를 알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사회에서 쌓은 경력들이 무색하게 면접장에서는 늘 결혼에 대한 우려가 발목을 잡았다.
당시 분위기는 나이만 차면 결혼과 출산이 당연시되었기에, 20대 후반 여성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란 쉽지 않았다. 회사의 입장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막상 내 일이 되고 보니 서운함과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도 무엇 하나 증명하지 못한 채 돌아서야 하는 날들이 반복되다보니 점점
나 스스로도 위축이 되어 갔다.
생각을 정리하려 산에 올랐다. 평소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고 등산도 손에 꼽힐 만큼 해본적이 없었기에 올라가는 내내 다리가 후들후들 숨이 턱턱 막혔다. 여기까지 왔는데 500m까지 가보자는 오기로 드디어 목표한 바위 위로 올라섰다. 위에서 바라본 아랫 세상은 장난감 블럭처럼 작고 작았다. 물 한모금 마시며 잠시 숨을 고르던 중,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렸다. 며칠 전 같은 이유를 댔었던 종합병원이었다.
주말이 지나면 바로 출근 가능한지에 대해 물었고 나는 기쁨을 숨긴 채 가능하다고 답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건 처음 뽑힌 직원이 며칠 만에 그만뒀다는 사실이었다.
어찌 되었든 내게는 놓치기 아까운 기회였기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각오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맡게 된 일은 내가 생각했던 총무 업무와는 달랐다. 200명 직원의 급여와 4대 보험 신고, 각종
인사·노무 관리까지, 병원이 돌아가는 크고 작은 제반 업무를 책임져야 했다.
해보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채용된 것에 감사하며 하나하나 배워갔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하나, 내가 숫자에 대한 정확함과 꼼꼼함에 취약하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었기에 부딪치며 견뎌내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업무 적응은 되었지만, 급여 정산일만 다가오면 신경이 곤두서고 작은 실수 하나에도 큰
후폭풍이 따라왔다. 그때마다 감당해야 하는 스트레스는 너무나 버거웠다.
연봉 협상에서조차 우리 부서는 늘 뒷전이었고, 보람보다 허탈감이 더 컸다. 쌓여가는 스트레스는 결국
몸으로 드러나 잦은 입원으로 이어졌다. 직원 의료 복지에 이만한 직장을 다시 구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참고 또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점점 병들어가고 있었다.
나의 첫 아이는 이곳에서 버티는 와중에 태어났다. 상사 눈치에 출산 휴가도 오래 쓸 수 없어 3개월이 지나자마자 포대기에 싸져 언니 집에 맡겨야 했다. 아침마다 어린 아이를 두고 출근하는 발걸음은 늘 무거웠다.
직장에서 버티고 치이는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아이와 함께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3년을 더 버티니 몸도 마음도 한계에 이르렀음을 느꼈다. 결국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어렵게 구한 직장을 내려놓는 일이 아깝고 또 앞으로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때는 하루빨리 그곳을 벗어나야 내가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구독과 ♥는 작가로서 저의 성장 과정을 지켜봐 주는 따뜻한 눈빛 같습니다.
글의 가치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아질수록 브런치는 더욱 빛 날 겁니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