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잃어버린 연습장

by 사월




고등학생 무렵, 내 마음 한구석에는

작고 단단한 꿈 하나가 살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꼭 시집 한 권을 내야지.”

힘들어진 가정 형편에도

여고생의 감수성은 숨겨지지 않는

향기처럼 피어올랐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자습시간..

틈틈이 적어 내려간 시들은

어느덧 작은 연습장 한 권을 빼곡히 채웠다.



하지만 첫 취업의 고단함에

매여 있던 사이 집은 이사를 했고

나의 첫 시집이 될 뻔했던

그 연습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것은 단순히 종이 뭉치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그날,

가장 나답던 시절의 일부를 통째로

잃어버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후로 오랫동안 시 대신

팍팍한 현실을 읽었고, 연습장 대신

월급 명세서를 손에 쥐었다.



낯선 환경에 부딪히며

살아야 했던 시간 속에서

나를 물들였던 그 고운 감정들은

이제 다 휘발되어 사라졌다고 믿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나는 타인의 마음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다시 글을 쓰고 있다.



마치 오래전 잃어버린 나의 연습장이

마지막 페이지를 비워둔 채

묵묵히 나를 기다려온 것만 같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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