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현 | 『모차르트』| 아르떼
모차르트는 만 두 살에 피아노를 치고, 다섯 살에 작곡을 시작했다는 에피소드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흔히 천재를 논하는 대상에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다. 35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수백 곡(작품번호가 붙은 것만 626곡)을 작곡했던 워커홀릭의 대명사이기도 한 그는 전 지구, 온 시대를 통틀어 유명인 상위 0.1%에 속하다 보니 꽤나 친숙하게 느껴진다. 나 역시 모차르트의 광팬은 아니지만 이미 영화 <아마데우스>를 본 적이 있고, 라디오를 통해 토막토막 그의 이야기를 들어왔던 터라 적어도 『모차르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여겼다.
때문에 김성현의 『모차르트』 (부제; 천재 작곡가의 뮤직 로드, 잘츠부르크에서 빈까지)를 대면하면서 큰 설렘은 없었다. 다만 모차르트의 삶을 따라가는 여행기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데 끌렸다. 나중에 오스트리아나 독일을 갈 기회가 있다면 작가처럼 모차르트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까하는 호기심으로 첫 장을 넘겼다. 프롤로그를 보니 작가와 내가 모차르트를 깊이 알기 전 그에 대해 가졌던 인상이 비슷했다는데 동질감을 느끼며 흥미가 붙었다.
책은 모차르트가 태어나서 청년이 되기(1756~1780년)까지를 잘츠부르크 시기로, 이후부터 죽음(1780~1791년)까지를 빈 시기로 나누어 그가 태어난 곳, 머물렀던 곳, 작업했던 곳, 연주했던 곳, 연인을 만났던 곳 등등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각 시기는 모차르트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 각인된다. 잘츠부르크 시기의 아버지 레오폴트와 빈 시기의 아내 콘스탄체가 바로 그들이다.
역사학자 피터 게이의 비유처럼 레오폴트는 “모차르트의 교사였다. 협력자이자 조언자이자 간호사이자 비서이자 흥행사이자 홍보관이자 응원단장”이었다. (114쪽)
아들에 재능에 대해 선견지명을 가졌던 아버지 레오폴트는 아들의 연애나 결혼을 훼방 놓을 정도로 집착했다고 한다.
반면 아내 콘스탄체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꽤 천박하게 그려졌지만 실상 음악에 문외한이 아니었을 것이며, 모차르트 사후 그의 전기를 내기 위해 애썼던 중요한 인물이라고 알려준다.
‘모차르트 신화‘ 탄생의 일등공신이 아버지 레오폴트였다면 신화의 완성은 아내 콘스탄체의 몫이었다. (293쪽)
라는 대목이 모차르트 인생에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을 한 마디로 정리해주고 있다.
『모차르트』는 우리의 모차르트에 대한 배경지식에 많은 편견을 깨주는 책이기도 하다. 먼저 18세기 시대상을 철저히 고증했다고 정평이 난, 영화 <아마데우스>로만 모차르트를 알았다면 그 서사에 픽션이 많이 가미되어 있다는 점을 바로잡는다. (<아마데우스>는 피터 셰퍼가 집필한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특히 모차르트를 시기한 이인자로 알려진 살리에리에 대한 부분은 극적 서사를 위해 왜곡하거나 축소시킨 점이 명확해 보인다.
또한 수 세대에 걸쳐 유일했던, 피아노 소품부터 교향곡, 오페라까지 작곡 가능한 전천후 천재로 인증되며 신격화된 모차르트가 평생토록 구직활동을 하게 되었다는 부분이나, 사치로 인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점 등은 모차르트가 훨씬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다.
다만 전기는 아니라지만 유명한 개인을 다루는 책이기 때문에 살짝 아쉬운 것이 바로 시기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었다. 연도와 날짜가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데 일부는 모차르트의 나이로 대체했다면 그가 역사에 남은 옛날 사람이 아니라, 독자와 함께 호흡하는 한 개인으로 더 가깝게 느껴졌을 법하다.
그럼에도 한국 독자로서 이 책의 장점은 충분했다. 첫 번째는 외국의 위인을 다루는 데 있어 번역을 거치지 않아 어색한 문장이 없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또 같은 이방인의 시선으로 주인공을 바라보다
보니 문화의 비슷한 눈높이에 거부감이 들지 않았던 점도 좋았다.
그것은 출판사 아르떼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셰익스피어, 헤밍웨이 등의 대문호들은 물론 클림트, 뭉크 등의 화가와 모차르트, 푸치니 등의 작곡가들을 한국인 작가의 집필로 출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를 흥미롭게 본 독자라면 다른 시리즈를 도전해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대성당』을 다 읽고 나면 아르떼 시리즈의 『레이먼드 카버』도 도전해볼 계획이다.)
모차르트 음악의 강점은 ‘익숙하다’는데 있다. 클래식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살면서 모차르트의 음악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엄마 손에 이끌려 갔던 피아노 학원에서였거나, 태교에 좋은 음악이라고 추천을 받아서였거나, 영화나 광고의 삽입곡으로 얼핏이라도 말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모차르트를 좀 더 알고 싶은 한국인이라면 김성현의 『모차르트』를 추천한다. 서정적인 모차르트의 음악과 함께 그의 흔적을 담은 사진들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