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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달 april moon Dec 03. 2019

국가를 선택한 개인은 없다

김영하  l <검은 꽃> l 문학동네

풍전등화. 20세기 초, 조선왕조 500년을 이어 받은 대한제국의 국운은 세계정세와 일본의 야욕이라는 바람 앞에서 사그라들고 있었다. 어지러운 그 시기, 나라는 운명을 선택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들의 운명을 선택했던 다소 용감한 이들도 있었다. 1902년부터 태평양을 건넜던 약 1만 명의 사람들. 대부분은 하와이로 향했으나 하와이행이 막혀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던 이들이 있었으니. 묵서가(墨西哥). 즉, 멕시코 행 일포드호에 오른 1,033명이 바로 그들이다. 4년만 일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광고에 자신의 운명을 맡긴 이들은 몰락한 황족 일가, 천주교 신부, 박수무당, 제대 군인, 보부상에게 자란 고아, 내시, 역관, 그리고 좀도둑 등 그 면면이 다양했다


그들의 꿈은 제각각이었지만 그 꿈에 두려움과 기대가 공존했다는 점은 비슷했다. 하지만 지구 반 바퀴를 돌아야 했던 이민자들의 두려운 기대는 일포드호의 화물칸에서부터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과연 그들은 한반도에 남아 스러져가는 국가의 운명을 지켜보는 편이 나았을까, 아니면 까마득한 타국에서 노예처럼 스러지는 자신들의 운명을 한탄하는 것이 나았을까. 애석하게도 남은 자들이나 떠난 자들 모두 희망적이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미래를 내다볼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 그 사이를 강산(江山)이라 부르던 사람들이었다. 강과 산이 없는 세상을 그들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카탄엔 그 두 가지가 모두 없었다 (114쪽)

도착한 곳은 그랬다. 강산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에서의 생활은 온갖 악취와 전염병의 공포로 가득했던 함선의 화물칸이 차라리 나을 성 싶을 정도였다. (알로에와 비슷하게 생긴) 에나킨 수확 작업에 투입된 그들은 외국인 노동자로 팔려와 금수처럼 혹사당했다. 그리고 곧 나라마저 잃은 난민 노동자로 전락하고 만다.



묵서가(墨西哥)에서, 뜨거운 햇볕에 그을린, 국적 없는 검을 꽃들. 그 꽃들은 천천히 그러나 아주 처참하게 시들었다. 대한제국의 직인이 찍힌 여권이 휴지조각이 된 뒤 돌아갈 곳 잃은 이방인들은 결국은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혁명이라는 소용돌이에까지 휘말리게 된다. 혁명에 휘말리지 않은 이들도 조국으로 돌아온 이는 없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멕시코 이민자들의 최후는 대개가 비극이었다. 검은 색이 상징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최초의 멕시코 이민자를 다룬 역사소설 『검은 꽃』은 김영하 작가에게 동인문학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사실 김영하는 국내에서 소설가가 받을 수 있는 상이란 상을 거의 다 받은 스테디셀러 작가임에도 나는 그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 때문에 그의 다른 작품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검은 꽃』에서 만큼은 간결한 필체와 어떤 등장인물에도 연민을 부여하지 않은 작가의 입장이 꽤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한 번 책을 잡으면 놓기 어려운 흡입력도 과연 저명한 작가의 필력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토지』, 『태백산맥』 등 응당 역사소설이라면 ‘대하’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작품들에 깊은 애정을 가졌던 터라 ‘10권짜리 역사 대하소설을 압축한 명작’이라는 『검은 꽃』의 평가에 의문을 품는다. 그 압축이란 것이 어쩐지 쫓기듯이 마무리한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후반부 등장인물들의 선택에 대한 궁금증이 해갈되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윤치호, 존 마이어스 등 실존 인물의 등장과 멕시코 이민자들의 하와이 이주 계획, 멕시코와 과테말라 혁명에 참여 등 실제 사건들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이민 역사를 되새겨 볼 수 있다는 점이 의미 있다고 생각된다.



지난 이 책이 발간된 2003년, 미주 이민 100주년 기념으로 인천 월미공원에 한국이민사박물관이 개관했다. 그렇다. 『검은 꽃』의 배경으로부터 100년이 넘게 흘렀다. 그간 우리 재외동포는 700만 명을 넘어섰다. 한 세기를 지나 결국 에나킨의 가시는 사라졌을까?

책을 덮으면서 2003년 당시 유행했던 블랑카의 “사장님 나빠요”라는 유행어를 떠올리고 말았다. 그리고 회상은 지난해 핫이슈 중 하나였던 제주도의 예멘 난민 문제까지 이어졌다. 단순히 우리의 이민 역사가 아프게만 느껴질 수 없었다. 우리는 1900년대가 아니라 2019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일본인이 되겠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이정의 말에 요시다가 웃었다. 언제부터 개인이 나라를 선택했지? 미안하지만 국가가 우리를 선택하는 거야. (298쪽)

100여 년 전 일포드호에 올랐던 대한제국 국민도, 현재의 그 어떤 외국인 노동자 혹은 그 어떤 난민도 스스로 나라를 선택한 적이 없다. 그 불가항력 앞에서 우리는 아픈 역사에 머물 것이 아니라 잔인한 역사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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