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역사의 역사>, 돌베게
고등학교 국사 수업 때였다. 진도는 삼국시대 부분. 갑자기 선생님께서 “충청도 사람이 왜 그렇게 말이 느리고,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줄 아니?” 라고 질문하셨다. 그 답을 교과서에서 찾으려면 찾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객관식도 단답형 주관식도 아니었다. 그것은 일명 썰(설)이었다.
한강을 두고 늘 전쟁을 벌였던 고구려, 백제, 신라. 한강을 중심으로 충청도 부근의 지역은 자고 일어나면 국적이 바뀌는 탓에 주민들은 늘 혼란스러웠다. 때문에 그들은 무장한 군사를 만나면 먼저 말하지 않고 상대가 말하길 기다렸다. 그래서 고구려 말씨를 쓰면 그제야 ‘나는 고구려인이오’라 대답했는데 백제, 신라의 군사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삼국시대는 500년은 족히 이어졌고 중간 지역 사람들은 먼저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러한 지리적 환경과 사회적 배경이 현재 충청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말씨와 성향에 영향을 미친 주요한 원인 일 수 있다는 주장. 정말 그럴듯하지 않은가!
초, 중, 고 12년을 통틀어 그렇게 재밌는 역사 이야기를 해준 선생님은 딱 한 분뿐이었다. 모두가 텍스트와 시험문제에 집중해 있을 때 그 선생님은 묘청의 난이나 동학혁명에 대해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뒷이야기를 실감나게 들려주셨다. 나는 B.C.5세기에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통했던 헤로도토스를 현실에서 만났던 것이다.
『역사의 역사』는 《헤로도토스》를 시작으로 《유발 하라리》까지 약 2500년 간 가치 있는 서적과 업적을 남긴 역사가를 꼽아 소개한다. 열다섯 명의 역사가가 처한 시대적 배경과 함께 그들의 역사관을 들여다보고, 저서를 파헤쳐 역사가 어떤 역사로 흘러왔는지 통찰하고 있다. 한 마디로 역사에 대한 안내서. 그것이 『역사의 역사』다.
작가는 이 책의 독서 방법에 대해 입질이 오는 꼭지부터 읽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그 제안을 나중에 알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렇다보니 코스 요리를 먹는다기 보다는 다양한 메뉴를 하나씩 도전하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민족주의 역사가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을 소개한 6장은 익숙하지만 맛있는 김치찌개를 먹는 듯 했고, 아랍의 역사가 《이븐 할둔》에 대한 3장은 듣도 보도 못한 음식에 도전하는 기분이었다. 마르크스를 소개한 5장은 보기에는 몰랐는데 안에 해산물이 잔뜩 들었음을 알게 되어 그릇을 밀어내고 싶은 마음이었고, 21세기 역사가를 다룬 9장은 근사한 인테리어에 음악까지 완벽한 맛집의 가장 좋은 자리에서 음식을 기다리는 기대감이 충만했다.
물론 전체적으로 내용은 쉽지 않았다. 심지어 원문이 아니라 작가가 친절히 해석을 한 부분들도 난해했다. 그래서일까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에드워드 H. 카》의 이야기를 담은 7장에 있었다. 다른 문화권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독해는 당연히 어려운 과정이라고 나 같은 독자들을 다독여줬기 때문이다. 작가 본인도 『역사란 무엇인가?』를 열 번을 읽었지만 다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면서.
하지만 작가는 위로에 그치지 않았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일부를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로 변환해(224~225쪽)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가 하면 『역사란 무엇인가?』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과 인용을 일일이 찾아보려 하지 말고 그것 자체가 《에드워드 H. 카》의 주장이라 해석해보라고 조언한다. 그것은 나에게 통했다! 필독 목록에 『역사란 무엇인가?』를 넣고 말았으니까.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유시민 작가의 거침없는 비평이다. 『사기』는 시대와 문명의 과거를 언어로 재구성한 ‘전체사’였다면서 『총,균,쇠』와 『사피엔스』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사기』보다 더 훌륭하거나 감동적인가? 인간 본성과 존재의 의미에 대해 더 가치 있는 메시지를 던졌는가?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또한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은 토인비와 『역사의 연구』를 만나기 위해서일 뿐이라며 어마어마한 독서 이력을 가진 천재만이 쓸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횡설수설이라고 평한다.
객관적 사실만을 기록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랑케》를 향해 지독하게 재미없는 글을 썼다면서 그의 업적은 오류 덕분에 빛나며, 오류는 업적 때문에 돋보인다고 일갈했다.
유독 랑케를 혹독하게 비평하면서 작가는 말한다. ‘역사는 언어의 그물로 길어 올린 과거’라고. 그것은 이 책을 통해 작가가 꾸준히 주장하는 <서사의 힘>을 대변한 문장이다. 그리고 결국 ‘역사는 기록으로 시작해서 과학을 껴안고 예술로 완성된다’는 작가의 역사 인식을 드러낸다.
과연 그의 주장과 역사 인식에 동조할 것인가? 아무래도 완벽하게 이해한 후 동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역사의 역사』에 소개된 책을 다 읽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통해 만난 역사가들에 비추어 볼 때 나의 역사에 대한 입장을 역사는 역사가에 따라 다르게 기술 될 수 있다는 《카》와 실감나는 입담을 자랑했던 《헤로도토스》의 중간쯤에 놓아보려 한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이 책을 패키지여행에 비유했다. 짧은 시간에 적은 비용을 들여 이름 난 공간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소소한 즐거움이나 깊은 의미를 제공하지는 못하는 한계도 명확히 한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역사』 출간 후 인터뷰에서 밝힌 저술 이유를 알게 되면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호기심이 생길 것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시끄러웠을 때. 작가는 ‘올바른 역사, 바람직한 역사, 객관적인 역사는 존재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물음이 고개를 들고 있었고 그런 의문을 가진 시민들에게 ‘역사 전반에 대한 철학적, 이론적, 경험적 고찰’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부디 이 책이 그 길잡이가 될 수 있길 바란다면서 인터뷰 말미 그는 쿨하게 한 마디를 남겼다.
『역사의 역사』 몰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알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