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 엔지어 | 『원더풀 사이언스』| 지호
최근 남편이 사들인 책 중에서 스티븐 호킹의 저서가 3권이나 포착됐다. 하긴 전부터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에 관련된 책들을 읽고 있긴 했다. 과거 남편은 수학Ⅱ나 과학 쪽으로는 눈도 돌리지 않았던 문과생이었는데도 말이다. 스티븐 호킹의 책들과 함께 놓여 있던 『마블이 설계한 사소하고 위대한 과학』을 보니 이해가 된다. 그가 가진 과학(책)에 대한 애정은 공상과학영화 편력의 연장임이 확실하다.
오래전 “어떻게 이과 쪽 공부를 하고도 양자역학이 궁금하지 않지?”라는 남편의 농담 섞인 말에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던 내가 최근엔 『코스모스』도 읽고 말이야~ (그러고 보니 그 책도 남편이 샀다) 또... 그래! 『원더풀 사이언스』도 읽었는걸!! 과 반응을 보이게 됐다.
그렇다. 난 이과생인데 과학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우리 부부만 보면 문이과 분리가 참 쓸데없다 느껴진다.) 『원더풀 사이언스』를 읽다 보니 내가 왜 그렇게 과학에 관심이 없었을까가 이해되었다. 과학과 삶을 철저히 분리시키고 사는 사람은 나 말고도 엄청나게 많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과학에 있어서는 압도적인 다수자에 속했다.
자 그럼, 퓰리처상 수상에 빛나는 과학 작가의 『원더풀 사이언스』에 빠져볼까? 지레 겁먹지는 말자. 저자가 과학자가 아니라면 적어도 이 책이 논문은 아닐 테니까!
나탈리 앤지어는 자신이 과학 작가가 된 경위를 명백히 밝혔다. 과학과 결혼은 못하겠고, 평생 연애만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과학을 사랑하는 마음과 똑같은 에너지로 서문부터 분개한다. 어쩌다 과학이 어린이들의 전유물이 되고 말아서는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자연사 박물관보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보는 것이 당연하게 됐느냐는데, 마치 내 앞에서 침을 튀기며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그 분노는 나처럼 과학을 내동댕이쳐버린 대중을 위한 기초과학 안내서가 시급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것이 『원더풀 사이언스』의 탄생 비화다.
‘아니, 과학이 얼마나 재밌고, 얼마나 우리 생활에 밀접한데...’라는 서문을 통과하고 나면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최면에 걸려들 차례다. (1장. 과학적으로 생각하기; 유체 이탈 화법) 그대들이 과학을 재미없다고 느끼는 이유는 과학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서란다. 따지고 보면 장미가 붉게 보이는 이유도, 달의 모습이 매일 바뀌는 것도 다 과학이라며 일상 속 과학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호소한다. “과학은 의견이 아니라고요” 정량적 사고와 증거에 철저히 기대고 있는 과학은 그마저도 불확실함을 인정함으로써 진보할 수 있었다. 확실에 가까운 가설을 찾기 위해 사활을 걸면서도 보다 진리에 가까운 가설이 나타나면 바로 인정하는 것이 과학자의 기본 소양이란다. 집요한 만큼 쿨하기도 한 과학이 격하게 신뢰되는 대목이다.
과학의 근간을 이루는 수학적 요소인 확률과 척도를 지나면 본격적인 기초 과학 산책에 들어선다. 물리, 화학, 진화생물학, 분자생물학, 지질학, 천문학까지 자연현상과 생명에 관한 분야들이다. 어디 하나 눈에 들어오는 분야가 있다면, 바로 그곳부터 시작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서사가 두드러진 책은 아니니까.
앞 페이지를 읽지 않고는 절대로 뒷장으로 넘어갈 수 없는 약간의 편집증이 있다면 순서대로 읽어도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나 같은 과포자도 읽어냈음을 상기시키며, 평소 정전기 때문에 짜증이 좀 났다거나, 진화론이냐 창조론이냐로 격렬한 토론을 해본 적이 있다거나, 지진이나 화산 폭발이 걱정됐던 적이 있다면 충분히 흥미로울 부분들이 있다. (창조론자들에게는 분노 유발 가능성이 있음을 굳이 알린다.)
『원더풀 사이언스』가 무엇보다 원더풀 한 것은 작가의 찰떡 비유와 인용이다. 물리의 4가지 힘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스타워즈 속 제다이의 ‘포스’를 불러낸다든가, 화학의 결합을 설명하며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를 소환한다든가, 분자생물학에서 쥬라기 공원의 모기 혈액 추출을 언급하는 등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를 통해 과학 지식의 기억을 강화시키는 영민함을 보여준다. 영화뿐만 아니라 문학, 스포츠,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끌어온 인용과 비유는 과학과의 거리를 좁혀주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에게 나도 아는 것이 있다는 안심과 함께 웃음도 주니까.
아쉬운 것은 시각 자료를 통해 설명을 도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분이다. 서문에서 “가능한 한 사진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선언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필력을 확신했을 것이라고 추측되지만 진정 과학을 더 많이 전파하고 싶었다면 충분히 타협할 수 있는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과학에 대한 편견을 깨려는 열정과 쉽게 설명하려는 노력에 유쾌함까지 담아낸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과학이 당신에게 말을 거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학과의 친분이 0이었다면 ‘어때, 과학, 알아보니 재밌지 않아?’ 정도로, 10에서 20 수준만 돼도 ‘진화론은 어때? 아니면 지질학? 천문학도 매력적이지?’ 정도로. (음의 기호가 앞에 붙는다면..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확실히 나로 하여금 『원더풀 사이언스』는 과학에 대한 흥미에 불을 댕겼다. (작가가 그토록 원하던 과학에 전도된 독자 여기 추가요!) 진화생물학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기에 다윈의 『종의 기원』을 구매했는데 올해 내로 완독하는 게 목표다. 다윈이 또 다른 과학으로 나를 안내하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 나탈리 앤지어의 노력 위에 이루어진 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