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트웨인 | 『톰 소여의 모험』 | 문예출판사
서평 모임에서 선정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으려고 펼쳤는데 첫 챕터에서 톰 소여가 등장했다. 허클베리(헉)는 ‘마크 트웨인 씨가 책을 하나 썼는데 그런 건 읽지 않아도 된다’고 딱 잘라버렸다. 그래서 『톰 소여의 모험』을 읽기 시작했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하니, 왠지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말이다. 한데 초반에 벌어진 톰 소여의 만행에 무릎을 탁! 쳤다. 아, 나도 작가에게 걸려들었구나!
울타리에 회반죽을 칠하라는 벌을 받은 톰은 지나가는 친구들에게 ‘이 대단한 일을 너희는 할 수 없으니 안타깝다’는 식의 말로 꼬여 결국 친구들이 그걸 대신하도록 만든 것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이어진 설명은 이랬다.
그는 얼떨결에 인간의 행동에 관한 위대한 법칙을 하나 발견했던 것이다. 그 법칙이란 바로 어른이건 아이건 어떤 물건을 갖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려면 그 물건을 손에 넣기 어렵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32쪽)
하지만 덫에 걸려든 것 치고는 이득이 남는 시간이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까지 다 읽고 덧붙이는데 극적인 짜임새로 보자면 톰 소여 편이 훨씬 재밌었다.)
폴리 이모, 사촌 시드와 함께 살고 있는 톰은 문자 그대로 ‘악동’이다. 학교는 땡땡이치기 바쁘고, 밤마다 집을 나가 떠돌아다니며 이모 속을 썩이는데 심지어 롤모델이 해적이다. 하라는 것은 절대 안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기어코 해야 직성이 풀리는 톰은 친구들 사이에서는 골목대장을 못해 안달이지만, 좋아하는 소녀를 위해 대신 선생님께 매도 맞을 수 있는 허세까지 장착하고 있다.
온 마을을 휘젓고 다니던 톰은 친구 헉과 함께 공동묘지 살인사건의 목격자가 된다. 그 사건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쓴 이를 위해 증언을 하고, 도망친 진범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움에 떨지만 진범이 숨긴 1만 2천 달러의 행방에 관한 중요한 열쇠를 쥐게 된다. 두 소년은 번번이 마을의 중대한 사건에 중심에 놓이게 되고, 그것은 소년들의 망상에 가까운 허기진 (해적이라는) 꿈을 채우는데 충분했다. 호기심이 이끈 우연에 행운이 더해져 치기 어린 소년 톰은 대대손손 들려줄 무용담을 탄생시킨 것이다.
아마도 엄청나게 뻐기면서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들려줄 톰의 무용담을 읽으면서 느꼈다. 소년의 모험은 결코 실패하는 적이 없다는 것을. 혹시 그것이 실패라는 모양새를 갖추어도 '소년'에겐 절대 실패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소설가 사무엘 랭혼 클레멘스.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으로 훨씬 더 잘 알려진 그는 미국 현대 문학의 링컨이라 일컬어질 정도인데, 『톰 소여의 모험』(1876)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1884)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는 면에서 연속성을 가진 두 작품은 정제되지 않은 소년식 유머가 특징이다. 순진하지만 영악하기도 한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해학과 풍자를 담은 이유를 『톰 소여의 모험』의 머리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주로 소년 소녀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이 책을 썼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성인들에게 외면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때 자신들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이야기했는지, 그리고 때로 어떤 이상한 짓에 몰두했는지 성인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회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내 계획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머리말 중)
소년들의 익살스럽고 맹랑한 모험담을 흥미롭게 보고 나니, 10대 소녀의 예민한 감수성이 그리워졌다. 마침 27년 전에 샀던 책이 누렇게 낡아져, 새 버전으로 구매한 『빨강머리 앤』을 당장 펼쳐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