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색스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알마
얼마 전, 남편과 대화를 나누면서 마침 읽고 있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추천했다. 페도라가 분홍색 구름 위에 떠 있는 표지를 본 남편은 “그런데 남자가 실제로 아내를 모자로 알아봤다는 거야? 아니면 단지 착각하는 상상을 했다는 거야?”라고 물었다. 나 역시 이 책이 1985년 출간된, 신경과 전문의 올리버 색스의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은 물론, 어떤 내용인지조차 모르고 접했을 때 그런 의문을 가졌었다.
곧 그 착각은 실제 행동으로 연결되어 일어난 일임을 알게 됐다. 첫 번째 이야기에 등장한 성악가 P선생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그는 작가와 상담을 마치고 일어나면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고 아내의 머리를 집어 들려 했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그는 사람들의 얼굴을, 심지어 아내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심각한 상태였던 것이다. 이처럼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뇌의 이상으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파편을 담은 환자에 대한 기록이다.
총 24편의 사례가 네 가지로 분류되어 있다. 1부는 (P선생과 같은) 안면인식 장애 및 기억이나 몸의 감각 등을 잃어버린 ‘상실’을 다루고, 이와 반대로 투렛증후군처럼 갖가지 강박을 보이는 ‘과잉’을 2부에서, 현실과 꿈(환영)을 오가는 ‘이행’을 3부에서 소개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밑줄을 그은 부분은 자폐증 환자를 다룬 4부다. ‘단순함의 세계’ 속 주인공들의 면면은 이렇다. 지능지수는 60에 불과하지만 시적 은유와 함축을 이해하는 소녀, 3살 아이처럼 행동하지만 음악 사전을 외우는 남자, 일명 캘린더 계산기로 불렸던 (숫자) 소수에 집착하는 쌍둥이 형제, 뛰어난 시각적 기억력으로 한 번 본 그림을 멋지게 재탄생시키는 남자. 백치천재라 불리는 그들은 뛰어난 특정 기능을 제외하면 사회생활이 어려울 정도여서 무시당하며 허드렛일을 하거나, 무기력하게 수용시설에서 평생을 보낸다. 대부분의 자폐증 환자들을 ‘연구대상’ 혹은 ‘병적’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본다.
우리는 그들을 어떤 틀에 끼워 맞춘다든지 시험하려는 시도를 버려야 한다. 그 대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알려고 해야 한다. 마음을 열고 조용히 관찰해야 한다. 일체의 선입견을 버리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로 대해야 한다. (325쪽)
본업은 의사지만 유명 작가이기도 한 올리버 색스는 환자들의 특별한 경험과 능력에 대해 의학자로서의 관찰과 연구를 이어가면서도 그들을 단순한 환자가 아닌 인격체로 대하려는 상담가로서의 면모도 보여준다. 또 거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연구진들에게,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용기 있게 제안한다.
설령 특수하고 좁은 영역일지라도 (중략) 지능이 낮은 사람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까닭은 그들에게 ‘창조적인 지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해하고 소중하게 키워주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지성이다. (321쪽)
작가가 표현한 ‘지성’이라는 단어에 한참 시선이 머물렀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뇌는 대단히 안녕할 가능성이 높다. 평균 부근의 ‘지능’과 평범한 ‘지각’을 가지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흔히 우리가 ‘정상’이라고 부르는 그 안녕에 작가가 말하는 ‘지성’을 얼마나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인가 성찰해보게 되는 점. 그것이 이 책을 무려 35년 동안이나 베스트셀러로 굳건하게 한 요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례로 인지하는 것에 그칠 것인지, 책에 등장한 이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의 아픔과 존재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인지는 독자의 몫이다. 하지만 작가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따뜻함을 느꼈다면 분명, 우리는 자신의 뇌 건강에 안도함을 넘어 영혼과 마음의 안부도 자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