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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달 april moon May 04. 2020

‘공간과 추억’ 인간이 지나간 자리는 숨을 쉰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 | 비채


모든 유리창이 열리고 공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여름 별장이 천천히 호흡을 되찾아간다. 


    

나의 20대가 응답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나에게 첫사랑이라 남겨진 이가 두 번이나 꿈에 나타났다. 상황도 대화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등장만은 선명했다. 분명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책 때문이다. 화자인 사카니시 도오루는 29년 전 자신의 20대, 사회 초년생인 때를 추억한다. 특별히 1982년, 첫 직장이었던 무라이 설계사무소 여름 별장에서의 일들이다. 나는 도오루처럼 건축을 전공했고, 그 여름 별장과 같은 곳을 공유한 사람들이 있었고, 또 그들 중 첫사랑도 있었다. 책은 자연히 나의 20대에 박제된 기억을 소환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무라이 슌스케라는 건축가의 설계사무소를 택한 사카니시. 어쩐지 그는 최신 유행, 거대한 빌딩, 경쟁, 출세 등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가 존경하는 무라이 슌스케 역시 딱, 그런 인물이다. 수장은 칠순을 넘겼고, 사무소 직원은 열세 명. 그나마 사카니시는 3년 만에 뽑힌 신입사원이다. 서서히 저물어가는 듯한 무라이 사무소가 활기를 찾은 것은 신입사원 때문만은 아니었다. 국립현대도서관이라는 대규모의 설계 경합 참여가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그 분투는 내내 담담하고 차분했다. 긴장과 흥분이 없는 서사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어쩐지 아오쿠리 마을의 별장이라면 그런 밋밋함이 자연스러울 법하다.


   

공간을 공유한 사람들, 공간 가족 


해발 1000미터에 위치한 여름 별장은 건축 자체도 멋지게 묘사되어 있지만, 그 주변 환경이 예술이다. 그런 곳에서는 어떤 시름도 잊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그대로 전해졌다. 온갖 자연의 풍경과 소리로 가득한 아오쿠리 마을 같은 곳에 (물론 화산 폭발은 좀 무섭지만) 나도 별장 하나쯤...하고 저절로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무라이 부부의 사적 별장으로 지어졌지만 여섯 번의 증개축을 통해 사무소 직원들의 합숙소로 변모했다. 지금이라면 ‘굳이 합숙까지 하면서 일을 해야 해?’ 라고 내키지 않는 쪽이 더 많을 것 같다. 그곳에서 칼퇴나 워라벨 따위가 보장될 리 없다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일 테니. 


30년 된 아파트 지하의 작업실은 계단 입구에서부터 퀴퀴한 냄새가 났다. 내가 건축공학과에 입학했을 때 신입생은 연구실 아니면 작업실에 소속되기 마련이었다. 연구실은 담당 교수가 지정되어 있고 조교, 대학원생들과 함께 하는데 보통은 그들의 수습생이 되는 것이 원칙이다. 작업실은 재학생들끼리 모여 만든 곳으로 학교 밖의 공간을 임대해 운영되었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연구실도 작업실도 신입생 유치에 나선다. 연구실보다는 작업실 선배들이 훨씬 적극적인데, 그도 그럴 것이 작업실은 학교에서 따로 지원해주는 시설이 아니다 보니 유지를 위해 운영비가 절실했던 이유였다. 


대학생들이 주인공이었던 청춘드라마 속의 작업실은 꽤나 근사했는데, 내가 선택한 작업실은 화장실도 없어서 근처 교회 화장실에 기생해야 하는 처지였다. 비록 처연한 환경이었지만 20대의 활력은 그곳을 낭만적 공간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칙칙한 시멘트 위를 수놓은 능력자 선배의 그래피티가 인상적이었고, 가구들은 다 주워왔지만 나름의 구색을 갖추고 있었으며, 각자 제도판 하나 정도는 구하고 각종 잡동사니로 파티션을 만들어 자리를 꾸며 놓았다. 거기서 과제나 공모전 준비로 밤을 새우기도 하고, 주당인 선배에게 붙잡혀 밤새 새우깡 하나에 소주를 마시기도 했다. 졸업한 선배들이 가끔 찾아와 단백질 섭취도 도와주고, 끼리끼리 마음도 맞아 (나 역시) 연애도 했었는데, 내가 졸업을 앞둔 해, 더 이상 작업실을 원하는 신입생들이 없어서 문을 닫았다. 그곳의 이름은 공간을 함께하는 가족이라는 뜻을 담은 ‘공간 가족’. 그 이름에 반해 10여 개가 넘는 다른 작업실을 마다하고 그곳을 택했었다. 단연 구성원의 분위기도 최고였다. (역시 이름은 잘 짓고 볼 일이다!) 


무라이 사무실에서 사내 연애를 금지한 것은 물론 주인공이 몰래 연애를 한 것도, 그들이 별장에서 먹고 자고 일하며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것도, 사무소의 운명이 기울어가는 것을 목도하는 주인공의 시선도, 모두 나에게는 직접적 경험의 감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건축, 기능과 디자인 사이에 인간이 있다  


무라이 선생님이 설계한 국립현대도서관은 실제로 어떤 모습일까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어떤 장면에서는 설계도면이 내 앞에 펼쳐져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카니시가 무라이와 여름 별장을 추억하며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로 귀결되면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다. 나에게『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은 단순한 추억여행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높고, 크고, 화려한 건물들에 대한, 혹은 인간을 잃은 모든 기능과 디자인에 대한, 그런 것들을 부추긴 자본주의에 대한 묵직하고 조용한 타이름으로 느껴졌다. 


“잘 된 집은 말이야. 우리가 설명할 때 했던 말을 고객이 기억했다가 자신의 집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게 되지. 우리 건축가들의 말이 어느 틈엔가 거기 사는 사람들의 말이 되어 있는 거야. 그렇게 되면 성공적인 거지.” (60쪽 무라이 선생님) 


“먹고 자고 사는 곳이라고 한 것은 참 적절한 표현이야. 이들은 뗄 수 없는 한 단어로 생각해야 돼. 먹고 자는 것에 관심 없이 사는 곳만 만들겠다는 것은 그릇만 만들겠다는 얘기잖아? 그러니까 나는 부엌일을 안 하는 건축가 따위 신용하지 않아. 부엌일, 빨래, 청소를 하지 않는 건축가에게 적어도 내가 살 집을 설계해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어.” (106쪽 우치다) 


깊이 공감하면서 내가 건축을 업으로 삼았다면 반드시 새겼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했다. 건축에 종사하지 않지만 20대 초반의 나는 건축을 애정하며 공부했다. 학문으로서의 매력과 흥미는 물론이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하나 허투루 보지 않는 시선을 그때 그 시절 여러모로 가꾸었다. 지금도 내가 공간을 누리는 즐거움은 인생 자체를 훨씬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을 다시금 일깨워준, 나의 추억을 불러준 이 책에 깊이 감사한다. 


그리고 한 번 더 읽을 기회가 된다면, 그래서 서평을 다시 쓸 기회도 주어진다면 그때는 도서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다. 특히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던 정기용이라는 건축가에 대해서 꼭, 언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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