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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나무 Oct 26. 2023

산꼭대기 위의 집 3화

닭 이야기

  공작 세 마리가 살던 우리 왼쪽 절반 정도가 닭장이 되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에 오니 수탉 두 마리, 암탉 열한 마리, 이렇게 총 열세 마리가 닭장에 있었다. 몸집이 자그마한 갈색 암탉들과 조금 더 큰 수탉들이 뒤뚱뒤뚱 지나다니거나, 푸드덕거리며 횃대 위에 올라서거나, 모이를 콕콕 쪼아 먹거나,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거나, 꼬꼬꼬 소리를 내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아마 종일 닭만 구경하라고 해도 열세 마리 닭의 각기 다른 행동을 관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수탉들은 수컷 공작보다 성격이 더 거칠었다. 수탉은 암탉을 밟고 올라서기도 했는데, 암탉들은 별다른 소리도 내지 못하고 깔려 있기만 했다. 모이를 수탉이 먹고 있으면 암탉들은 감히 넘보지 못하다 나중에 먹고는 했다. 순하디 순하고 둥글둥글 오동통한 암탉들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닭을 키운 지 몇 달 되자 할머니가 암탉을 한 마리씩 잡기 시작했다. 전통 방식으로 집에서 잡는 과정을 어쩌다가 몇 번 보게 되었는데 닭을 그리 귀여워했으면서도 굉장히 무덤덤했다. 먹는 데에 진심인 편이라 그랬을까. 집에서 키운 닭이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그저 시중 닭 요리처럼 먹었다. 요리된 닭은 목이 길고, 가끔은 제거되지 않은 털이 듬성듬성 있었으며, 털을 뽑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껍데기가 오돌토돌했다. 닭발 두 개도, 닭똥집이라 불리는 모래주머니도 늘 먹게 되었다.


  하루는 편찮으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닭 모이 주는 심부름을 했다. 잔디밭 왼쪽 길을 따라 쭉 걸어가, 사료 포대를 들고 닭장 문을 열었다. 사료를 주려는데 내 키만큼이나 커다란 수탉 한 마리가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닭들은 모이 주는 사람이 누군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수탉을 보고는 긴장해서 사료를 빨리 주고 나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순간 수탉이 나를 향해 돌진했다. 들고 있던 사료 포대를 닭장 안에 내팽개친 채 소리를 지르며 집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었다. 당시 나는 키는 작았어도 달리기는 빠른 편이었다. 그런데 수탉도 만만치 않았다. 닭장에서 우리 집까지는 50~60m 정도로 거리가 꽤 있었는데 집 앞까지 쫓아올 줄이야. 신고 있던 슬리퍼는 온데간데없고 흙투성이가 된 발로 우리 집 뒷문으로 후다닥 들어왔는데 수탉도 우리 집까지 나를 따라 들어올 기세였다. 결국 할아버지가 수탉을 막으셨고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날 저녁 밥상에는 수탉이 바비큐가 되어 올랐다. 평소에 먹던 암탉과 다르게 고기가 굉장히 질겼다. 수탉이 어찌나 컸던지 다섯 식구가 이틀 내내 먹고도 남았다. 나는 여태 내가 우리 집 천덕꾸러기인 줄 알았는데,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이날만큼은 귀한 손주였던 모양이다. 남의 집 손주를 위협했던 수탉의 운명은 참으로 가혹했다. 수탉을 향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복수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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