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 쓴 답안지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지나간 선택은 수정할 수 없으며,
노력과 결과는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열아홉, 단 하루의 시험으로 배운 진실. 어린 시절 자신의 꿈을 꾸는 대신 대부분 부모의 기대로 점철된 바늘구멍 같은 곳을 통과하기 위해 5~6년의 시간을 꼬박 희생한 대가로 알게 되는 진실 치고는 가혹했다.
20년 전 그날의 차갑고 거친 공기, 어색하고도 오래된 누군가의 책상은 여전히 기억 속에 또렷하다. 칠판 앞에 놓인 동그란 시계 속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에 내 심장도 빠르게 들숨과 날숨을 내어놓는다. 수리영역시간,마지막 문제의 답을 답안지에 옮겨 적는 순간 무언가 잘못된 것을 직감했다. 답안지를 밀려 썼다. “종료되기 10분 전에는 답안지를 교체해 줄 수 없다.” 180센티미터쯤 되어 보이는 마른 키에 검은색 안경을 쓴 날렵한 눈매를 가진 감독관은 그 한마디 남기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교실을 어슬렁 거리며 수험생으로 앉아있는 우리를 감시했다.
그렇게 지난 3년간의 노력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성적표에 찍힌 숫자에 맞춰서 갈 수 있는 학교를 고르고, 그 중 합격할 만한 학과에 지원서를 냈다. 내 의지력으로 할 수 있는 선택은 가장 집에서 먼 곳으로 지원하는 것. 유일한 건 그뿐이었다. 대기번호 9번을 받고서, 몇 주의 시간이 더 흘러 나는 가장 먼 지방의 한 학교로 진학했다. 감당하기 힘든 재수 비용과 내 의지의 한계를 실험하는 대신, 나는 한 대학의 신입생이 되었다.
전공 첫 시간, 상상했던 대학 수업은 없었다. 고3때와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여전히 강의실에서 학생 개개인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다. 또 다시 텍스트 앞에 단어를 외우고 해석하고, 몇 개의 작문시험과 사지선다형시험을 보았다. 열아홉의 그날, 시험 답안지를 밀려 쓰지 않았다면 스무 살 강의실의 풍경이 조금은 달랐으려나. 어디에 쓰임이 있을지 모르는 전공을 값비싼 등록금을 내며 연명하는 대가로 대학생 신분은 유지했다.
먼 지방에서 왔다는 이유로 첫 학기에는 기숙사에 입소했다. 네 명이 함께 쓰는 기숙사 방을 청소하고, 빨랫감을 들고 세탁실에 동전을 넣고 난생 처음 세탁기를 돌렸다. 매달 30만원의 용돈으로 교통비와 유흥비 식비와 부수적인 비용들을 해결하는 법도 익혀나갔다. 기숙사에 합격할만한 성적을 받지 못한 다음해엔 가장 저렴한 자취방을 알아봐야 했고, 저렴함의 대가로는 낡고 허름한 방과 추위 그리고 가끔은 낯설고 무서운 벌레와 쥐를 마주한 날도 있었다. 아픈 날에는 병원을 찾아 약을 짓고, 회복되기까지 홀로 버텨야 했다. 값비싼 등록금으로 전공대신 생존하는 법을 익혀나갔다. 4년이 꼬박 지나고 나니 제법 그럴싸한 반찬을 만들어 밥을 차려 먹을 정도는 되었고, 간단한 집수리 정도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내공을 쌓았다. 그리고 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사라졌다. 부모가 정해둔 규칙의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 대학생활의 결실이라면 결실이다.
새마을호 기차를 타고, 또 다시 노란색 마을버스에 올라 낯설고 어색한 길들을 지나 학교에 첫 걸음한지도 20년이 훌쩍 지났다.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동시에 대학이 아무것도 아니라고도 말 할 수 없는 학부모가 되었다. 한 번의 실수가 인생을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할 수 있지만, 한 번의 실수로 가는 길은 달라진다는 것을 너무 잘 알게 된 어른이다.
집에서 가장 먼 곳에서 홀로 대학생활을 시작한 덕분에 나는 자립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지만, 이 모든 것이 괜찮았다고 나의 아이에게는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세월이 지나 그저 무뎌지는 것일 뿐, 삶에서 만나는 수많은 변수 앞에 너무 좌절하지 말라는 말 한마디 외에 내가 무슨 말을 더 건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