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전화벨이 울리고, 나는 왕따가 되었다
중학교 2학년 2학기가 시작할 무렵쯤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혼자 있는 집에 전화벨이 울렸다. 같은 반 아이였다. 친하지는 않았지만 같이 어울려 놀던 아이 중 한 명이었다. 대뜸 큰 액수의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 일주일 용돈이 만원인데, 그만한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갑자기 큰돈은 빌려줄 수 없다는 말을 건네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학교에서 왕따가 되었다. 학급의 모든 아이들은 나를 피해 다녔다. 조별 활동시간이면 교실 한구석 뒤, 책상 하나와 덩그러니 홀로 남는 날이 잦아졌다. 돈을 빌려 달라는 전화 한 통의 거절로 교실에는 이상한 소문이 감도는 것 같았지만 소문의 진위를확인할 길은 없었다. 모두들 방관자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한 사람이 되어버린 이 느낌. 이 상황을 바로잡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용기 내어 친했던 같은 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전화는 끊기지 않았고, 그 친구는 말했다.
“혹시 너 XX에게 돈 빌려 달라는 전화를 받았어?”
“응, 돈 빌려 달라고 전화가 왔는데, 빌려줄 수 없다고 했어.”
“나는 돈을 빌려줬어. 그리고 더 이상은 나도 얘기 해 줄 수가 없어.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은 진심인 듯 했지만, 더 이상 얘기 하면 자신이 곤란한 처지가 될 모양새였다. 이상한 소문이 펴졌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 그 소문의 내용은 알 길이 없었다. 수학 영어 분반 수업으로 교실을 이동할 때도 늘 혼자였다. 그때 처음 노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죽고 싶다는 생각 해 보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것을 실현해 볼 용기는 없었다. 하지만 좌절감과 무력감을 쉽게 떨쳐낼 순 없었다.
꾸역꾸역 학교를 다녀오고 난 뒤면, 동네 종합 학원으로 향했다. 전교에서 단 3명만 배정받은 먼 거리의 중학교를 다녔던 탓에, 나의 학교생활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학원에는 좋아하는 수학 선생님과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학원 생활이 없었다면그때 그 시절은 버티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깜깜했던시간들을 겨우 삼켜가며 2학년 생활이 끝났다. 기다리던 반 배정이 발표되었고, 돈을 빌려 달라고 했던 그 아이와 다른 반이 되었다. 그렇게 새 출발 하듯 떨리는 마음으로 나는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첫 도덕 수업 시간이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여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각 단원마다 조별로 나누어 학생들이 직접 수업을 하게 될 거예요.”
시작부터 학생들이 이끌어가는 수업이 될 것이라고 말하셨다. 첫 과제는 개인별 3분 스피치였다. 곧 차례가 돌아왔고, 3분 말하기 주제는 나의 왕따 생활로 정했다. 무슨 용기로 새 출발 하는 시점에, 감추고 싶었던 과거 이야기했는지 모르겠다. 주어진 3분이 지나고 40명이 넘는 아이들 앞에서 결국 울고 말았다. 도덕 선생님은 마음에 켜켜이 쌓아둔 감정을 치워주시듯 나를 대신해 분개하셨다. 그리고 반 친구들로부터 격려의 박수가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과거를 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할수 있었다. 더이상 덩그러니 홀로 놓인 책상과 함께 하지 않아도 되었고, 친구들 틈에서 중3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세월이 지나도 그 시절의 모든 흔적이 지워진 것은 아니었다. ‘왕따시절’은 내 삶의 부끄러운 낙인이자 철저히 숨겨야 할 진실이었다. 나는 왕따인 것이 창피했다. 그때는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해 볼 요량도 없었다. 부모에게는 당연히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왕따라는 사실은 마치 부모마저 세상의 왕따로 만드는 기분이었기에. 여느 부모님이 그러하듯, 기대한 성적을 받아오면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는 줄 여겼다. 그때는 나의 힘듦을 토로하는 일은 마치 내 삶의 금기어를 내뱉는 일이었다.
최근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왕따와 학교 폭력 피해자들의 고백이 이어진다. 가해자들이 지목되고 비난받는 장면들을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왕따였던 그 경험이 꼭 부끄러움으로만 남아야 하는 건 아닐지도모른다고.
어느 날 여덟 살이 된 딸아이에게 나는 잠들 기 전 고백하듯 말을 건넸다.
“엄마는 하늘이 보다 인생 선배잖아. 힘든 일 이 생기면 엄마에게 상담 요청해 봐. 물론 엄마는 답을 내려 줄 수 없고, 너를 대신해 줄 수는 없어. 하지만 엄마의 경험들을 들려줄 수는 있어. 그리고 엄마 왕따가 되어 본 적도 있거든.”
오랫동안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나의 낡은 인생 한조각. 이제는 먼지를 털어내어 딸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다. 엄마도 이런 시간들을 지나온 적이 있다고. 내가 부모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아이는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운이 좋았다.
그때 그 아이와 다른 반이 된 것.
그때 좋은 도덕 선생님을 만난 것.
그때 3분 말하기 시간이 주어진 것.
그때 내가 용기 내어 말한 것.
그때 나를 편견 없이 바라봐 주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 것.
그리고 학원 생활이 있었던 것.
마흔이 지나서야 마음으로 깨닫는다. 학창 시절의 상처와 아픔도 아이를 이해하고 말을 건넬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서야,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 기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