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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깎이 Jul 22. 2018

아이들이 내게 준 것

응급실에서부터 지옥같던 5일을 겪으며

아이를 키우면서 응급실 한 번 안 가본 부모는 없을거다. 나만 해도 아기 때 응급실 간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돌이 지나고 언젠가는 응급실에 갔는데 심지어 혈관이 안 보여 머리를 밀고 거기에 링거 바늘을 꽂았다고도 했다. 초등학교 때는 중이염으로 귀가 너무 아파 밤에 응급실 갔던 것도 생각난다.


첫 째 아이를 세 돌까지 키우는 동안 응급실에 두 번 갔다. 한 번은 고열로 두 번째는 놀다 다쳐서. 두 번다 너무 놀라 달려갔고, 두 번 다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둘째는 백일도 안돼서 응급실에 가게 됐다. 저녁부터 몸이 뜨겁더니 열이 펄펄. 평일. 둘째를 들쳐업고 가자니 첫째가 있다. 남편과 가자니 첫째가 홀로 남고 혼자 가자니 무섭다. 결국 동트자마자 우리 엄마를 불러 첫째를 맡길 수 밖에....


새벽부터 엄마랑 헤어진다고 우는 첫째를 두고, 불덩이 같은 둘째를 안고 응급실로 간다. 열을 재고 진료를 받는다. 백일 전 아기는 열이 나서는 안되고, 날 경우 심각한 경우가 많아 무조건 입원 후 4가지 기본 검사를 하게 된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뇌수막염, 뇌염 확인을 위한 뇌척수액 검사다. 이러저러한 말들 여차저차한 의견들...결국 뇌척수액 검사는 하지 않고 항생제와 해열제만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열이 나는 아이를 붙잡고 약과 물수건과 체온계와 힘겹게 시간을 버텨나갔다. 이틀 뒤에 진료를 다시 잡아놓았지만 그 때까지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걸까, 검사를 했어야 한건 아닐까, 해열제는 왜 잘 안드는 거지. 첫째는 날 찾고, 남편은 일하랴  걱정하는 날 달래랴 정신 없고. 나는 밥을 제대로 넘길 수도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었다. 응급실에 다녀온 다음 날 저녁 열이 뚝 떨어질 때까지 나는 눈 앞의 이 작은 아기 옆을 지키면서도 지옥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열은 이틀만에 잡혔지만 그 후로도 삼일은 오르지 않아야 한다는 의사 말에 또 삼일을 열을 재고 또 재며, 조금만 따뜻해져도 놀라서 체온계를 찾으며 그렇게 보냈다. 그렇게 5일이 지났다.


불면 날아갈까 두렵고 쥐면 터질까 두렵다. 이 두려움은 부모만이 알거다. 아이가 잠잘 때 수시로 숨소리를 확인할 정도로 모든 것에 신경이 곤두서고 사소한 것에도 두려움이 몰려온다. 요 며칠 동안 아직 뒤집기도 못하는 아이를 보살피며 마음으로 울고, 또 울고,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우량아로 태어나 잘 먹고 잘 잔다고 우쭐하여 아기를 함부로 한 건 아닌지, 둘째라고 다 안다고 이것저것 소홀해진 건 아닌지, 무엇보다 그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 자신에만 너무 취해있던 건 아닌지.


내 곁에서 곤히 자고 있는 첫째와 둘째. 편안히 밤잠을 자고 있음에 감사하다. 이 조그마한 아이들이 내게 와서, 나라는 사람을 믿고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고 또 두렵다. 철모르던 시절 죽음 같은 것은 두렵지 않다고 떠들던 나를 반성한다. 내게 주어진 삶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겸손히 주어진 시간을 바라보게 된다. 이 아이들이 내게 준 행복과 두려움이 그 무엇보다 생 앞의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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