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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깎이 Apr 13. 2020

전염병과 부모 되기

코로나 19, 그리고 앞으로도

첫째를 낳고 사직서를 제출한 나는, 둘째가 돌이 지나고 두 돌이 다가올 때까지 일할 기회만 노렸다. 그리고 마침내 계약직이나마 일할 기회를 얻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좋은 직장에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자리에 자리를 얻게 되어서 기쁜 것도 잠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일반 사기업이 아니라 공공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는 것은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 믿었기에. 그러나 전혀 아니었다. 코로나에 굉장히 민감한 것 같으면서도 아니었다. 돌봄휴가라든지 재택근무는 아주 소극적으로 이뤄졌다. 돌봄 할 가족이 있음에도 돌봄 휴가를 쓰는 사람은 없었다. 재택근무 시행도 아주 뒤늦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아주 소수만 간헐적으로 재택근무를 이용했다. 


신입이고, 계약직이고 거기에다가 조금 특수한 계약(정부의 일자리 지원 사업의 일종)을 한 근로자라서 나는 그냥 조용히 일을 했다. 특별한 배려 같은 것은 바라지 않았다. 다만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왜, 돌볼 사람이 있음에도 재택근무도 하지 않고, 돌봄 휴가도 쓰지 않는지 의아했다. 공무원이라서 프로그램 보안 등의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일의 양도 줄어 있는 상황이고, 특별히 급박한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닌데 뉴스에서 말하는 그 모든 코로나 관련 지원 정책들은 이곳을 비껴나가는 것 같았다.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유치원도 어린이집도 휴원에 들어갔고, 맞벌이를 하는 부모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갑자기 맞벌이를 하게 된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 둘을 집에서 하루 종일 돌보는 것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인데 이걸 누구한테 '대신' 해달라고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눈을 뜨는 순간부터 삼시 세끼를 해먹이고, 아이들의 자잘한 요구들에 반응하면서 '방치'하지 않고 돌보는 것.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육체노동과 감정 노동의 이중고를 아이들이 눈뜨는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지속해야 한다. 그래서 일을 시작하기 시작했을 때 너무나 난감했다. 이 모든 고생을 부모 아닌 조부모가 대신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이들 걱정은 덜었지만 몹쓸 불효녀가 되는 생각에 괴로웠다. 그렇다고 이 시국에 면접을 보면서 시터를 구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몇 주간 혼란을 겪은 후 나는 어쩔 수 없이 긴급 보육을 보내기로 했다. 


긴급 보육을 보내도 '아이들은 괜찮을 거야'라고 내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는 생활이 삼 주쯤 지났다. 그 와중에 온라인 개학을 했고, 아직 내 아이들에게 닥친 일은 아니지만 걱정은 더 커졌다. 앞으로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어떡하지? 코로나 이전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뉴노멀이 어쨌다 저쨌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또 돌아다닌다. 코로나 이후 이런 대규모 전염병 창궐 사태는 또 일어날 거란 말들이 무성하다. 그럼에도, 전염병에 노출될 가능성을 높이면서 긴급 보육에 보내야 하는, 혹은 온라인 개학을 위해 아이들을 컴퓨터 앞에 방치한 채 직장으로 나가는 맞벌이 가정에 대한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그러게 왜 맞벌이를 하냐, 그만두고 애들을 보면 될 일이지 '징징댄다'라는 말에 나는 도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나 역시 이제 막 시작한 일, 그만둘 수 있다. 오히려 그만두기는 훨씬 쉽다. 복직을 포기했다거나, 어렵사리 취직이 되었으나 포기했다는 말도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언제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무나 쉽게 취업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하나의 기회가 소중하고, 그 기회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일을 할 수 있는 것인데, 이 사태에 발을 동동 구른 나는 코로나 사태에 '징징대는' 워킹맘이 된다. 결국 여성들은 가정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인가. 포기하지 않고 야망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나에게는, 여성에게는 너무나 사치인 건가.   


고민이 깊어지지만, 그럼에도 나는 직장을 포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일과 가정 중에 하나만 선택하는 것 말고,  온라인 개학이 서둘러 이뤄지고 온라인 수업이 재빨리 도입되었듯, 직장에도 그에 맞춰갈 수 있는 근무 환경과 조건이 도입되길 바란다. 엄마와 아빠 모두 육아에 동등한 수준으로 참여하며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갖춰지길 바란다. 일을 하는 부모의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조부모의 손에 자라는 상황이 적어지길 바란다. 이게 너무 무리한 욕심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나는 징징대지 않고, 그때까지 열심히 내 선에서의 대안을 찾아나가며 육아하고 또 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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