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들의 도시락을 싸게 되었을 때, 우리 엄마가 싸 주었던 도시락들을 떠올렸다. 늘 그날 아침에 만든 따끈한 반찬들을 친구들과 나눠먹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넉넉하게 넣어주셨던 그 도시락. 그 도시락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반찬은 삼치조림이었다. 폭신한 삼치 살코기와 달콤하고 짭짤한 간장 양념은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을 만큼 항상 맛있었다. 고작 유치원생인 딸아이도 할머니가 해 준 그 반찬을 얼마나 잘 먹던지. 매번 엄마를 따라 해 보려고 조리법을 묻고, 몇 번씩 따라 해 보았지만 수십 년간의 솜씨를 쉽게 따라잡을 순 없는 일이다.
그래도 엄마의 레시피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알면, 모든 음식에 꽤나 감칠맛을 더할 수 있는데 그건 바로 멸치와 다시마를 듬뿍 넣고 팔팔 끓여 만들어 낸 멸치다시물이다. 그 맛있는 삼치조림에도 이 다시물이 들어간다는 걸 알았을 때, 이게 엄마 요리 비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멸치다시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집에서 가장 커다란 냄비를 꺼내 물을 넣고 멸치를 생각보다 더 아주 많이, 다시마도 커다란 걸 몇 장 넣는다. 종종 파뿌리나 양파 껍질이 등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늘 기본은 멸치와 다시마다. 그렇게 푹푹 끓이면 온 집안에 짠 바다 냄새가 퍼지는데, 불에서 내리고 하룻밤을 기다리면 비법 다시물이 완성된다. 처음 결혼을 하고 요리를 시작할 땐 미리 만들어 놓은 다시물도 없고, 다시물을 만들고 요리를 할 만큼 요리에 시간과 정성을 쏟지 않았으므로 늘 물을 썼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찾은 많은 레시피에서는 무색무취의 물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맛을 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김치찌개를 할 때에도, 미역국을 끓일 때에도 물로 열심히 맛을 내보려고 노력했다. 물론 잘 될 리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혼집에 놀러 온 엄마는 기다란 유리병에 멸치다시물을 들고 왔다. 지금 생각해도 반찬이 아니라 웬 멸치다시물을 가져오셨나 싶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이 다시물 없이는 국물, 조림 요리를 하지 않는다. 이 육수의 위력을 남편 역시 알게 되었고, 자신이 요리하는 날에도 늘 나에게 멸치다시물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엄마가 하던 대로 재료를 아끼지 않고 가득 넣는다. 중요한 건 펄펄 끓는 육수를 바로 쓰지 않는 것, 충분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기다려야만 진한 멸치다시물이 만들어진다.
다시 삼치조림을 생각해보자. 이 삼치조림은 고춧가루와 무가 들어간 빨간 삼치조림이 아니라 진한 갈색의 반짝거리는 소스가 덮여있는 삼치'간장'조림이다. 생선 가게에서 삼치 손질을 부탁할 때는 조림용이라고 하면 몇 도막으로 어슷 썰어주기 때문에 삼치간장조림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가로로 반을 갈라서 잘라주세요'라고 말씀드려야 한다. 그렇게 해야 얇아진 삼치 양면으로 소스가 충분히 스며들고, 가시 바르기도 수월하다. 그렇게 손질해서 가져온 삼치를 깊이가 있는 팬에 넣는데, 먼저 기름을 넣고 삼치 겉면을 살짝 지져준다. 삼치의 껍질이 쪼그라들며 노릇하게 지져지면 양념을 넣기 시작한다. 양념 재료는 간장, 다진 마늘, 올리고당, 매실액 그리고 다시물이다. 각 양념의 계량은 간장 한 바퀴 반, 다진 마늘 조금 등등으로 도무지 계량할 수 없으므로 경험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또한 다시물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요리이긴 하지만, 역시나 그냥 물로 하고 나면 어딘지 맹숭맹숭하고 단조로운 맛이 된다. 어쨌든 살짝 구워진 삼치는 간장이 섞인 멸치다시물, 고동색의 양념에 담가져 졸여지기 시작하는데 바글바글 끓으면 그때부터 식욕을 돋우는 맛있는 냄새가 난다. 아주 걸쭉한 소스가 될 때까지 졸이고 나면 완성이다. 통통하고 부드러운 삼치 살코기와 간장 소스면 밥 한 공기는 다른 반찬 없이도 뚝딱 먹을 수 있다.
내가 먹을 저녁밥이 아니라 아이들이 먹을 저녁밥을 생각하며 퇴근하는 길, 오늘은 뭘 해서 먹이나 고민하며 현관문을 열었을 때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고 짭짤한 냄새가 나면 그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다. 마치 내가 먹을 밥이 준비되어 있는 양 서둘러 식탁으로 가서 메뉴를 본다. 삼치간장조림. 엄마가 만들어 놓은 선물. 아이들과 나의 허기진 배를 순식간에 채운다. 자꾸 집안일을 더 하시려는 엄마를 등 떠밀어 집으로 보내고,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는 바쁜 저녁을 보낸다. 그리고 적막해진 주방을 돌아본다. 가스레인지 위 프라이팬에 남은 삼치 몇 도막, 그리고 당연하게도 냉장고 안에는 엄마의 손으로 끓여 낸 다시물 두 병. 삼치조림과 다시물은 어두운 공간에 차갑게 식어있었지만 간장 소스 덕인지, 투명한 유리병 덕인지 계속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