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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깎이 May 14. 2020

끝나지 않는 고민과 자책 사이에서

시터를 찾다

이래서 경단녀의 삶을 끊어내기가 어렵나 보다. 워킹맘의 삶을 시작한 지 두 달쯤이 지나자 여러 가지 고민들이 다시금 밀려온다. 가까이에 사는 내 엄마만 믿고 내달렸던 삶에 브레이크가 걸린다. 아무리 아이들이 유치원, 어린이집을 간다고 하더라도 일주일 내내 등원과 하원을 할머니에게 맡기는 건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등하원 도우미를 구하자니 두 아이 등하원도우미의 시급은 15,000원 이상이라고 한다. 15,000*6시간*5일*4주....머리가 복잡해진다. 내가 버는 돈은 아이 돌보미 비용으로 전부 나간다고 해도 개의치 않겠다고 했던 다짐들이 흐물흐물 무너진다. 할머니의 황혼 육아에 기대는 것도, 고비용의 아이돌보미에게 기대는 것도 모두 부담스럽기만 하다. 삶에도 관성이 있기 때문일까, 지난 5년 간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닐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많은 엄마들이 이래서 경단녀의 삶을 끊어내기가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악착같이 버틴다는 것이 이런 의미구나 싶다. 사회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단단히 다져놓지 않고 출산과 육아에 뛰어들고 나면,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 재취업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벌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일하는 시간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을 구하는 건 어마어마한 비용이 든다. 그러면 이제 시간과 비용, 기회비용을 따져가며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과연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 돈 벌면서 일할 거면 엄마가 보는 게 낫지'라는 비난 아닌 비난이 내 속에서도 슬쩍 일어나는 것이다. 첫 아이 낳기 전에 열심히 커리어를 쌓아 두었으면 어땠을까, 조건이 여의치 않더라도 다니던 회사에서 나오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자꾸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게 된다. 열심히 일하고 지금쯤 아이를 가졌더라면 상황은 좀 더 나았을까.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선택지를 지금과 비교하며 한숨을 내쉬게 된다. 남편과 이야기를 해도, 같은 고민을 했던 엄마들의 고민을 읽어보아도, 워킹맘이었던 우리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딱 맞는 해법을 찾기가 어렵다. 교사를 했어야 하나, 공무원을 했어야 하나, 프리랜서를 알아봐야 하나, 파트타임을 알아봐야 하나, 전문직이 역시 최고인가... 직업에 대한 고민도 더더욱 깊어진다. 


며칠간 여러 시터 소개 업체에 구인 신청서를 올렸다가 내렸다가 반복하길 수차례, 시터 연락처를 받고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하길 수 일. 여러 번의 고민 끝에 면접을 보기로 했다. 다행히 가까이 사시는 분이었고, 면접 당일에도 아이들도 있는데 빈 손으로 올 수 없었다며 과일과 빵을 들고 오신 분. 잘 알지 못하는 분이었지만, 한 동네 사시는 분이고 다정하게 아이들을 바라봐주셔서 그래 이 분에게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어딘가 찜찜한 기운이 쉽게 떨쳐지지 않았는데, 그것은 시터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이 아직도 확실히 큰돈을 지출할 준비가 안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일 하려면 어쩌겠어, 마음을 다잡고 다잡고 양가 부모님 게 시터 구인 소식을 알렸다. 


그런데, 부모의 마음이란 이런 걸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을 알지만, 그래도 자식 내외가 힘써서 일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셨다며 시터 대신 당신들이 봐주시겠다고 연락을 주셨다. 너무 죄송하여 선뜻 감사하다고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시터 분에게 죄송하지만 채용하지 못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고, 양가 부모님들이 아이들 봐주시는 스케줄을 정리했다.  그러고 나니 문득, 예전 직장에서 퇴사했던 선배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너무 바빠 아이를 양가 부모님께 번갈아 맡기다가, 아이가 여러모로 쇠약해져 결국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또 다른 직장에 다닐 때 옆자리의 상사는 늘 아이, 학교 선생님, 아이를 돌봐주시는 부모님의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특히 학교 선생님에게 아이들의 '문제'에 대한 전화를 받을 때면 늘 내 마음이 아팠다. 그렇다면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양가 부모님께 아이들의 등하원을 맡기는 이 체제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다시 직장으로 돌아간 엄마에 아이들은 점점 적응해가고, 나 역시 적응되어 가고 있다. 집에서 아이들을 착실히 돌봐주는 엄마들의 식단, 교육 열정, 여러 체험들과 좋다는 학원들을 보면서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돌이켜본다. 지금 힘들지만 언젠가는 정말 모든 상황이 나아질까? 조금만 더 참아보자, 남편과 결의를 다지고 다진다. 아이들은 열심히 크고 있고, 조부모의 사랑을 열심히 받고 자라고 있으니 우리는 우리 자리에서 열심히 하자며 남편과 서로를 응원한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지 못하는 건 아닐까 자책하지만, 이미 많은 것을 주고 있다며 도닥이는 남편이 있어서, 늘 밝게 엄마를 배웅하고 맞아주는 아이들이 있어서, 노후에도 자식 걱정에 살아가시는 부모님이 있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워킹맘들은 미안함과 죄책감을 늘 가슴 한편에 안고 살아가지만, 직장에서 집에서도 가정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워킹맘들에게 그것은 아마 조금 떨쳐내도 좋을 종류의 감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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