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절을 떠나보내며.
공백기를 끝내고 이제 다시 움직여야 할 때라고 생각하며 떠올린 것은 당연히 전 직종으로의 복귀였다. 관성에 따라 늘 보던 채용 관련 홈페이지를 둘러보고, 내가 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공고를 찾는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서류들을 작성하고 모으고, 면접을 본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 내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은 '어디라도 가서 일해야지.' 하나뿐이었다.
올해 들어 두 번의 면접을 보았고 모두 떨어졌다. 면접 이전에도, 면접 도중에도, 면접 이후에도 붙을 거란 확신도 자신감도 없었다. 그러나 경력이 있는 지금의 내가 과거로 돌아가 면접을 본다면, 붙었던 면접에서도 떨어질 거란건 확신할 수 있다. 지금 나는 무엇보다 이 일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부딪혔을 때, 별 것 가진 것도 없을 때에도 나는 언제나 면접에 충실히 응했다. 누구보다 많이 알고, 전문성을 갖춘 인재는 아니었지만 흔히 말하는 열정 비슷한 것이 있었다. 하고 싶다, 해야 한다는 마음이 무엇보다 강했고 그래서 무모했지만 성공했던 도전들이 있었다.
두 번의 면접에서 내가 다른 지원자들에게서 본 것이 그런 빛나는 것이었다. 떨리는 목소리, 완벽하진 않더라도 열심히 고민한 답변들, 긴장감 속에서도 애쓰고 있는 사람들. 그런 것이 빛나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조용히 권태감에 젖어있었다. 면접자들의 질문을 평가하며 속으로 한숨을 쉴 뿐이었다. 한 번 푹 삶아내 숨이 죽어버린 채소처럼 빛이 나지도, 생생하지도 않았다. 처음으로 면접을 보며 '이 자리는 내 것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옆 지원자가 채용된다면 딱 맞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1년 쉬는 동안 내가 잃은 것은 뭘까. 자신감과 의지일까. 가장 처음엔 분명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 맞는데 어째서 이렇게 시들게 되어 버린 걸까. 자꾸 나를 곱씹고 돌아보며 떠올린 것은 '진심'이다. 내가 진심으로 이 일에 임하려 하고 있는가? 무언가를 회피하기 위한 의미 없는 시도는 아닌가? 그저 그렇게 일하며 돈이나 벌어보려던 생각은 아니었나? 진심의 부재. 일을 하고 돈을 버는데 진심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사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니다. 진심에서 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떠오르는 것이다. 돈이든 명예든 대단한 성취가 아니더라도 그것이 일을 지속해 나가는 힘이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진심을 잃었다. 아니 이제껏 진심이 부족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진심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아마 나는 조금 부끄러웠던 것 같다. 나는 타성에 젖어 겨우겨우 일을 해치워나갈 때에 그 사람들은 진심으로 일을 대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자신의 것을 열심히 추구하고 있었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이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내가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싶다면 그만큼의 진심은 있어야 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오랜 나의 경력을 이제 그만 포기하기로 했다. 애써 내 조건에 끼워 맞춘 채용 공고를 찾아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진심을 쏟을 수 있는 그런 분야를 찾아 다시 시도하기로 했다. 돌아보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제껏 쌓아 온 경력이 그렇게 하찮은 것은 아니라서, 여러 사람의 희생으로 이뤄낼 수 있었던 경력이라서. 어쩌면 진심인 척 속여가며 다시 일을 하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으로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분명 다시 흐린 눈동자로 모니터를 쳐다보며 관성대로 움직이는 '직원 1'이 될 뿐이겠지.
늦은 나이, 다시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 그러나 이상하게도 불안하지 않다. 왠지 무언가 해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오랜 시간 이어나갈 수 있는 일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긍정적인 마음과 자신감이 마음에 조용히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