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국수 1부
어머니가 사라졌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영자 이모의 목소리가 떨렸다.
"중수야, 네 엄마 없어졌다."
오전 배달을 마치고 늦은 아침을 먹던 참이었다. 순간, 입맛이 싹 사라졌다.
"걱정하지 마라. 파출소에 이미 연락해 놨다 아이가. 니 놀랄까 싶어서 내가 먼저 전화한 기다."
"예. 알겠습니다. 이모님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중수는 벌떡 일어섰다. 의자가 밀려나며 삐걱 소리를 냈다. 함께 밥을 먹던 태곤도 젓가락을 내려놓고 중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데?"
"아무것도 아닙니다."
"혹시 어머님 일인가? “
중수의 사정을 잘 아는 태곤이었다. 중수는 의자에 걸어둔 재킷 소매에 팔을 끼우다가 태곤을 바라보았다.
"기사님. 배달 부탁을 해도 될까요?"
"그게 뭐가 어렵다고. 내가 뛰면 되지.”
"아닙니다. 제 일은 제가 끝내야죠."
중수는 마저 재킷을 입고 식당 문을 나섰다. 한두 번 부탁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적재함을 살핀 뒤, 문을 닫고 트럭에 올랐다. 부응- 소리를 내며 멀어져 가는 트럭의 뒷모습을 태곤이 문밖에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중수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가슴이 답답했다. 끓어오르는 불안감과 초초함. 지금이라도 집으로 달려 가 순애를 찾는 일에 가담하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본업이 우선이었다. 익숙해져야만 했다. 갈수록 그녀의 상태는 나빠질 것이다. 그때마다 생계를 포기한다면 더 이상 자신뿐 아니라 순애까지 살아갈 방법이 없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5분이나 지나 있었다. 배달은 시간이 생명이었다. 액셀을 밟는 발에 힘이 들어갔다.
한 시간 뒤, 수거통을 가져와 적재함에 싣는 중이었다.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받았다. 영자였다. 수화기 너머로 안도의 한숨과 함께 격양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에휴. 중수야, 네 엄마 찾았다. 집에 모셔 왔으니 천천히 온나.“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
”죄송은 무슨. 나도 미안하지. 잘 좀 돌봐야 했는데. 너무 걱정 말고. 네 할 일 다 마치고 들어 와도 된다. 알겠나? “
”예. 서둘러 마치고 가겠습니다. “
다행이었다. 순애의 치매는 아직 심각한 단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따금 무슨 연유에서인지 말없이 사라질 때가 있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물으면 자신도 모르겠다며, 갑자기 눈앞에 안개가 낀 것 같다고, 누군가 부르는 것 같다며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정신이 차려져 난감하다고 했다.
그 후로 중수는 이웃에 사는 영자에게 순애를 부탁했었다. 요양보호사 자격이 있어 잠시 짬이 날 때에 아르바이트 식으로 돌봐달라며 수고비를 주고 맡긴 거였다. 오늘 같은 경우, 영자가 방문하는 날이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은 날에 이런 일이 빚어질 때도 있어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배달을 마치고 식당으로 돌아오니 땅거미가 짙어지고 있었다. 겨울의 바람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들어온다. 서둘러 잔반과 기물들을 정리했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컸던 걸까. 식당 옆 사무실에 있던 혜진이 밖으로 나왔다. 평소 같으면 새벽에 출근한 탓에 저녁 반찬까지만 봐주고 들어가는 혜진이 웬일로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있었을까.
”어. 사장님. 안 가셨네요? “
”그냥 이것저것 할 일이 좀 있어서. 바빠? “
”아니요. 이것만 하면 곧 마무리됩니다. “
”그럼 사무실로 들어와. 으. 추워. “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혜진이 겉옷도 걸치지 않고 나온 걸로 봐서 자신을 꽤나 오랫동안 기다린 게 아닌가 싶었다. 사무실로 들어가니 연탄난로의 따스함이 훈훈하게 퍼져 있었다.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사장실 안 쪽 소파에 마주 앉았다.
”어머니는? “
”찾았습니다. “
”어디 계셨대? “
”영자 이모 말로는 버스정류장에 앉아 계셨다더군요. 멀리 가지 않아 금방 찾은 듯한데 왜 그런 건지……. 추운 날씨에 여러모로 걱정이긴 한데 그래도 찾아서 다행이죠. “
”그래서 결정은 했어? “
”아직이요……. “
이미 몇 차례 중수에게 순애를 요양원에 보내라고 권했던 혜진이었다. 잔소리가 길어질 거 같았다.
”야. 정신 차려. 박중수. 너는 너 인생 없어? 사람이 일단 스스로 서고 봐야 그다음도 있는 거야. 네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하고. 여기에서 12시간씩 배달 일해서 버는 돈으로 사는데 어머니가 그럴 때마다 네가 쫓아다닐 수 있어? 없잖아? “
”예. “
”어 차피 우리가 요양원에 식사 배달하는 업체고. 내가 부산 시내 요양원 사정 모르는 것도 아니고. 몇 군데 괜찮은데 추천도 해줬잖아. 이제 좀 맡겨. “
”예. 좀 더 생각해 보고요. 저보다는 어머니 의견도 중요해서. “
”아이고. 답답아. “
혜진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화도 잘 내고, 욕도 잘하는 혜진이었지만 연민도 강한 사람임을 모르지 않았다. 지입기사로 일하며 억울하게 당하며 살았던 자신을 거두어 사람답게 살만큼 키워준 것도 혜진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하는 말에는 되도록 순종하는 편이었지만 이번 일만큼은 순애의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어머니가 기다려서요. 내일 뵙겠습니다. “
”그래. 내일 보자. “
사무실 문을 열고 나오니 어둠이 가득했다. 깊게 내려앉은 어둠 사이로 트럭의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환하게 비출 뿐이었다.
중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장에 들러 피순대를 샀다. 부산 피순대는 찹쌀과 선지, 숙주나물의 조화가 남달랐다. 쫀득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는데 순애가 가장 좋아하는 별미 중 하나였다. 특히 뜨끈한 막장에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넣으면 그 감칠맛이 두 배로 살아난다며 더욱 좋아했다.
"엄마. 저 왔어요."
거실에서 멸치를 다듬으며 TV를 보고 있던 순애가 중수를 반갑게 맞이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아들 왔나? 바깥 춥지?"
"그렇죠. 뭐. 엄마 좋아하는 피순대 사 왔는데. 오랜만에 소주 한잔 할까요?"
"그럴까. 중수랑 한 잔. 좋다, 좋아."
중수는 부엌에서 막장과 고추를 준비하고, 탁자에 소주 한 병과 술잔 두 개를 꺼내 차렸다. 간단하지만 정겨운 술상이었다. 오랜만에 함께 하는 밤이었다.
중수는 술잔에 소주를 따라 순애에게 건넸다. 두 사람은 가볍게 잔을 부딪치고 한 모금씩 소주를 삼켰다. 소주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앓던 시름도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중수는 어머니의 잔에 다시 소주를 따랐다.
순애도 기분이 좋은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며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술 한 잔에도 금세 취기가 오르는 순애의 주사는 노래였다. 평소에는 조용한 편이지만 술이 들어가면 어딘가 생기 있는 모습으로 변하곤 했다.
'지금은 그 어디서 내 생각 잊었는가 꽃처럼 어여쁜 그 이름도 고왔던 순이 순이야…'
그녀는 문성재의 <부산 갈매기>를 좋아했다. 가사 속 순이의 이름이 자신과 비슷해서 더 애착이 간다고 했다. '꽃처럼 어여쁜 그 이름도 고왔던 순이 순이야'라는 부분에서는 종종 '순애, 순애야'로 개사하며 부르기도 했다. 순애에게 이 노래는 그냥 취중 가무가 아니었다. 국수 삶을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심지어 힘들어 눈물을 삼킬 때도 중얼거리던 노동요였다. 가게가 한산해질 즈음, 가만히 장부를 정리하며 흥얼거리던 그 음률. 젓가락을 두드려 장단을 맞추던 어린 중수의 모습까지 그 노랫소리 속에 녹아 있었다.
"파도치는 부둣가에 지나간 일들이 가슴에 남았는데 부산 갈매기 부산 갈매기 너는 정녕 나를 잊었나"
가만히 순애의 노래를 듣던 중수가 별 일 아니라는 듯 ”엄마. 갈매기가 누구를 잊은 거예요? “라고 물었다.
젓가락으로 상을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던 순애의 손짓이 멈칫했다.
”글쎄. 나를 잊었나. 너를 잊었나. “
오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았지만 중수가 무척이나 신경 쓰고 있음을 모르지 않는 순애였다. 그러나 문제를 문제 삼기보다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두 사람이었기에 오늘도 얼렁뚱땅 넘길 생각이었다.
”엄마 자신은 잊지 마세요. “
중수는 이렇게 말한 뒤, 연이어 소주를 두 잔을 들이켰다.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르지 않은 순애였다.
”그래. 그래. 갈매기처럼 잊으면 안 되지. 나는 안 잊는다. 너도 나도. “
순애도 앞에 놓인 소주를 한 모금 들이킨 뒤, 순대를 막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순대가 참 쫄깃하네. “
”그렇죠. 순대는 이 집만 한 데가 없는 거 같아요. 더 드세요. “
라며 순애의 잔에 소주를 부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