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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O May 07. 2022

뜬금없는 고려청자와 스타트업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품이 뭐냐 하면 다들 뭐라고 답할까? 건축물을 제외한다면?

나는 고려청자라고 답하곤 하는데 말 그대로 우리나라여서 가능한 작품 같아서란 아주 얕은 지식과 생각 때문. 그러다 단순한 의문이 시작되었다. 


출처: http://asq.kr/yYHLh0M


Q1. 청자는 우리나라에만 있는가?


청자(靑瓷)는 말 그대로 푸른 빛깔의 자기(瓷器)를 의미한다. 이미 한대에 제조되기 시작해 송에서 꽃을 한껏 피웠던 청자는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유럽에도 많이 있다. 그럼 왜 우리의 청자는 고려청자라 하고 뭐가 달라 그런가란 질문. 



Q2. 그럼 왜 고려청자가 최고라 하는가?


난 전문가가 아니기에 지극히 기초적 수준, 제한된 이야기만 함을 미리 말한다. 

가장 차별화된 건 바로 빛깔일 게다. 물론 상감기법, 곡선 등등의 여러 특징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상업적 측면에서 다양성과 실용성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개량된 유럽의 도자기는 열외로 하고, 한중일 세 나라, 특히 중국과 고려의 청자 비교를 주로 하게 되는데, 중국의 청자는 유약이 두껍게 여러 번 칠해진다. 더구나 후대로 갈수록 유약이 반투명하거나 불투명한 유색으로 바뀌며 '투명도'가 확연히 줄었다. 때문에 중국의 그것은 태토의 색이 아닌 유약의 색에 좌우된다. 그에 반해 고려의 청자는 '투명하다'란 느낌이 강한데 이는 투명한 유약을 아주 얇게 발라 구워내 유약이 아닌 태토 본연의 색과 질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럼 왜 우리는 두껍게 바르지 않았나를 찾아보니 '비싸서!'. 유약이 워낙 고가였기에 아주 얇게 바를 수밖에 없었다 한다. (* 그래서 고려청자는 뒤집어 보면 밑바닥엔 유약이 칠해져 있지 않다고! 이후 만든 작품들은 담갔다 빼기에 밑바닥까지 유약이 묻어 있다 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태토(도자기를 빚는 흙)의 특성과 빛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마치 완벽한 풀메이크업을 해 예쁘고 화려해도 투명하단 느낌은 들지 않는 것처럼, 수수하고 잡티 좀 드러나더라도 얇게 한 듯 안 한듯한 메이크업을 보며 투명화장이라 하듯. 


그럼 다른 나라에서도 투명 유약을 얇게 발라 구우면 고려청자를 만들어낼 수 있나?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였다 한다. 그 이유는 애초에 흙이 달라서. 우리나라에서만 나는 흙이어야 가능한 빛깔이라고. 



Q3. 진짜 고려청자가 세계 최고인가?


청자 중의 최고가 고려청자란 말을 자주 들었다. 진짜냐 의심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럼 진짜 우리 청자가 최고라는 건 어떻게, 누가 정했나? 찾아보니 '고려청자 엄지 척'은 중국 문헌에 한두 번 언급되었을 뿐이라 한다. 그나마도 그 빛깔과 형태가 일품이란 거지 세계 최고는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중국과 일본의 청자가 유럽을 중심으로 각광받았고, 이미 오를 만큼 오른 가치인 가운데 고려청자가 블루오션처럼 등장한 게 더 크다. 이건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로, 각국의 청자 고유의 매력 그대로 각자 인정받고 있다는 편이 나을 수도. 다만 투명도에서 보면 청자가 일등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청자만의 가치가 따로 있고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고 찬사를 자아내며 인정받는다가 더 맞지 않을까? 





갑자기 왜 고려청자 얘기인가 하면.. 


문득 스타트업의 온보딩, 육성 이야기를 하다 고려청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청자의 투명성은 '결핍'에서 시작되었다. 중국만큼 유약이 흔치도, 싸지도 않았기에 나올 수 있던 색이란 얘기다. 인재풀, 자본력, 복지나 인지도 등등 많은 걸 가진 대기업에 비해 아무리 수 백, 수 천억 씩 척척 투자를 받는다 해도, 또 아무리 요즘 스타트업이 각광받는다 해도 아직은 자원적으로 열위에 있는 게 일반적. 그럼 그 안에서 생존하는 건 다른 빛깔을 내는 게 최선 아닐까 하는. 비싼 유약을 많이 바르려 하기보단(연봉 상승, 파격 복지 등은 업무조건 개선을 넘어 무리가 된다면..?) 현재 상황에서 무엇을 조합해 우리만의 것을 보여주느냐에 좀 더 집중해야 하는 게 아닐까. 유약은 최소화하는 대신 굽는 방법을 발전시켜갔던 건 스타트업만의 일하는 방식과 문화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좋다고 하니 너도나도 벤치마킹을 순환시키며 비슷하게 간다 해봐야 진짜는 늘 그만의 독보적 가치로 빛나기 마련이다. 고려청자를 흉내 낸 이후 청자들을 바닥만 뒤집으면 진품과 가품이 구별돼 듯. 흉내 내고 그럴 싸해 보이는 것들, 잘 쌓아온 이미지나 평판은 그 내실이 탄탄치 않았을 때 생각보다 쉽게 뽀록날 수 있다. 



요즘 많은 회사들을 만나며 가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제조업, 대기업 씬에 있던 난 스타트업이 회자되긴 했지만 또 그렇게까지 내 삶을 휘감는 것도 아니었다. 다들 가끔 스타트업처럼 우리도 일하자란 이야기가 있기는 했어도 어디서 스타트업 사례를 보거나 했을 때 새로운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 하는 갈증의 하나였을 뿐이다. 그런데 스타트업에 나와 보면 마치 우리나라의 모든 산업과 경제가 스타트업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이젠 나의 주 네트워크가 이 씬에 있기 때문이다 보니 온통 스타트업 피플에 둘러싸여 그들의 관심과 일 속에 파묻혀 보고 드는 게 그게 거의라 그렇다. 물론 지난 2년 간, 스타트업의 성장과 그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기반산업에서 느끼는 스타트업은 아주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은 고루한 듯, 대기업은 구태의연한 듯, 대기업 일하는 것은 틀린 듯 인식되고 말하는 걸 보면 가끔 물음표. 


취준생들 사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중소기업 비하 발언도 그렇고, 물론 대기업보다 훨씬 위계적이고 불통인 중소기업이 많긴 하지만 그럼에도 매출을 올리고, 수출을 하고, 영업이익을 내서 그 이익으로 제품을 만들고 인력을 운영하는 기업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갈수록 크게 느낀다. 플랫폼이나 데이터 중심의 스타트업들 특성이 과거의 기반 산업의 BEP 시점이나 달성 방법과는 현저히 다르다고는 해도 말이다. 모든 것엔 그 나름의 역사가 있고 그 역사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절대적으로든 상대적으로든 모든 것이 우위일 수도, 모든 것이 열위일 수도 없다. 


고려청자가 세계 최고라는 말, 이 말이 내 것만 보고 내가 아는 작은 우물 속에서 보는 편협함은 아닐는지. 스타트업이 최고, 우리 기술이 최고, 우리 제품이 최고.. 같은 것도 가끔은 비슷하지 않나 싶고. 




뚝배기와 도자기의 출발은 거의 같다 한다. 물론 옹기처럼 태토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차이를 가르는 건 흙이나 유약보단 온도에 있다. 1200도란 온도는 성질, 물성을 변화시킨다. 1200도가 넘어가면 흙이 녹기 시작해 전혀 다른 성질로 변화하게 된다는 거. 1200도 미만에서는 뚝배기가 나오고, 그 이상에서는 도자기가 나온다. 그럼 도자기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특정 온도에서 성질이 변한다는 건 원래의 흙을 볼 필요가 있다. 본래 흙은 살아 숨 쉰다. 공기가 통한단 얘기. 장을 담고, 찌개를 끓이는 등의 '먹을 것'을 담아내는 뚝배기는 흙 본연의 살아 숨 쉼을 유지해야 한다. 어떤 목적과 용도, 이걸 사용할 고객이 누군가에 따라 못해서, 안 해서가 아닌 그에 맞춰 온도를 조절해 흙의 성질을 극대화한 것이다. 우린 아직 뚝배기이지만 도자기가 될 거야라든가, 도자기처럼 보일 거야 가 부질없는 이유. 

뚝배기가 될지, 도자기가 될지부터 정의되고 철저히 탁월한 뚝배기가 될 것인가, 탁월한 도자기가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먼저. 그럼에도 우리는 도자기가 될 거야 한다면.. 1200도 이상의 시련과 녹아내리는 고통을 온전히 감내해내야 한단 거. 도자기가 뚝배기가 되기 어려운 이유도 어쩌면 이미 변해 고착된 물성을 되돌리기 어려워일 수도.. 대기업이 백날 혁신 글로벌 기업, 스타트업 조직문화를 벤치마킹해도 벤치마킹에서 끝나버리는 이유. 


스타트업에서 '우리도 체계~~'라며, '인재전쟁이니까 문화~'라며 같은 명분 하에 앞다투어 복지를 개선하고 채용 공고를 정성 들여 쓰지만, (그게 나쁘다가 절대 아님!) 그러다 보니 되려 비슷비슷해 보이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본질이 아닌 것만 늘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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