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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O Jan 23. 2023

목표는 죄가 없다.

꿈이 야무진 게 뭐 어때서!

결과적으로는 부족했을 지언정 

설연휴 아침 댓바람부터 한숨 가득 담은 후배와 나눈 이야기.


일도 잘하고 인정도 받는 친구, 그런데 차기 팀장에 욕심 있다고 회사에서 얘기한 이후 주변으로부터 완곡한 비아냥을 받는 것 같다는 것. 얘길 들어보니 대략 ‘팀장은 따로 있어, 너가 무슨’ 정도인 듯. 후배 본인도 목표 반, 현실 수용 반 정도인데 팀장 기회가 생긴다면 욕심 있다는 게 대체 무슨 잘못이냐는 거.


학창 시절 행시 보겠다고 신림동 고시촌으로 향했다. 당시 동기들이나 학교 사람들이 7급도 아닌 행시씩이나 하는 걱정 어린 말들을 하곤 했는데 뭘 모르던 시기, 그냥 이거 해야겠다 정도. 그러나 난관은 1차 시험 스터디 입문부터였다.신림동에서 너네 학교 처음 본다느니, 그 학교는 고시반은 있냐느니 묻곤 했다. 다 떠나 스터디에 끼워주질 않더라. 스터디는 잘하는 사람들과 하려 하고 붙을 것 같은 이들과 하고 싶어 한다. 당연한 건데 그래서 낄 곳이 없었고 겨우 낀 곳에서도 뭔가 늘 나는 열외였다. 비교적 빨리 1차를 합격하고서야 겨우 상대 좀 받은 듯.


대학원을 가겠다 했을 때, 어느 학교를 가겠다 했을 때 과동기들의 시선도 별반 차이 없었다. 4년 내내 학교를 거의 안 나갔고 학점도 바닥이어서 그럴 만 하긴 했다. 서류 통과 자체가 안 될 거라 했는데, 그래서 남들 다 서류로 간 대학원을 나는 7과목 시험 다 보고서야 간신히 들어갔다. 그제야 말이 들어갔고.


대치동 입시선생이 될 때도 그랬다. 네 학벌, 네 나이에, 여자로 거기 엄마아빠들 어떻게 상대하냐부터 애들은 어떻고.. 심지어 동료 선생들까지도 무시했었다. 내가 자리를 잡고 학원화 했을 때서야 뒤에서야 뭐라 할 지 몰라도 적어도 내 면전에서의 비아냥은 싹 사라졌다. 그러나 내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 시절에서 하나 건질 게 있다면 하루 두 시간 겨우 자며 어지간한 선생님들보다 열심히 했고 집중했던 것엔 부끄러움 없이 당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장 초년 시절 CHO 면담 때 면담 전 3, 5, 10년 목표나 커리어 계획 등을 적어 내라셨다. 그래서 10년 후 팀장을 적었고, 면담 중 왜 그렇고, 뭘 하고 싶은지를 말씀드렸다. 그날 CHO가 웃으며 독특하다 하셨는데 대놓고 당당하게 팀장 하고 싶다 얘기하는 사람을 인사팀에서는 처음 보셨다고. 다들 팀장 힘들어 싫다 하지만 임명될 때 거절하는 이 본 적 없고 가시권에 있을 때 말만 않지 욕심내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입 밖으로 하고 싶다 말하는 이는 없었다. 이건 매 승진 때도 마찬가지. 난 더 빨리 하느냐의 문제였지 승진 자체를 의심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에 대해서도 말 꽤나 들었다. 결론은 승진하고 포지션을 달고서야 쑥덕거림이 없어졌다.


차장 고연차가 되었을 때 팀장이 아니라 임원이 되어야겠단 생각을 했었다. 그게 이곳이든 다른 곳이든 나는 좋은 참모형인 거 같으니 내 사업보단 직장인이 잘 맞고, 그렇다면 직장인으로 최대한 올라가 봐야겠다고. 포지션 타이틀에 국한된 건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일다운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필요했기 때문이다. 팀장도 임원도 내가 된 들 뭘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래서 목표했고 일하면서 누가 물으면 그렇다 했다. 팀장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임원은 택도 없는 거란 뉘앙스의 말을 많이 들었지만 어쨌든 지금 그 역할을 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시행착오 겪어가면서도 하나씩 해나가고 있다. 긴 기간 몸담았던 회사가 아니어도 내가 이건 아니라 생각한 건 최대한 안 하고, 이렇게 해야 할 거 같다 생각한 건 최대한 해볼 수 있는 곳으로 옮겨서 말이다.


위 일들의 결과는? 

아예 성과가 없지는 않았지만 고시 패스도 안 됐고, 대학원에서 수석이 되지 못했으며 박사도 중퇴했다. 대치동에서 제일 비싼 일등 강사는 아니었고 직장인으로 커리어의 정점 역시 찍지 못했다. 그래서 "뭐 얼마나 성공했는데?"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저런 목표마저 없었다면 50점 정도 인생이 되지 않았을까? 그나마 저 정도 야무진 꿈을 꾼 덕에 50점 정도에 머무를 시간들이 60~70점은 되었다 믿는다. 지극히 평범한 머리와 스펙을 가진 사람인지라 적어도 50점 정도의 능력을 좀 올렸다 생각한다. 그래서 이 모든 과정에 당당할 수 있다. 나도 흔히 말하는 "열심히는 됐고 잘 해야지!" 하는 사람. 때문에 적당한 성취에 타협하자는 건 아니다. 다만 일의 목표를 떠나 내 삶을 살아가는 성의는 과정을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목표가 있고 그 달성을 위한 과정이 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고들 잘도 떠들지만 막상 현실에선 과정을 많이들 간과한다. 더 나아가 그 과정 자체를 쉽게 폄하하기도 한다.

물론 많은 경험을 통해 ‘아.. 저건 좀 힘들겠는데.. 저건 못할 거 같은데..’ 싶은 목표를 들을 땐 있다. 보통은 작은 것도 뭔가를 해낸 경험이 없는 이들의 또 하나 목표뿐인 경우다.


가끔 좀 남들보다 성공했다는 (예를 들면, 고학력, 고스펙, 자본가 등) 이들이 그런 이들에게 쉽게 날리는 말들이 있다. “그래서 뭐 얼마나 성공했는데?”라든가, “그래서 얼마나 벌었는데” 같은. 난 이 말을 절대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되는 오만하고 상스럽기 짝 없는 말이라 생각한다. 더구나 뭘 도와주거나 육성하거나 응원할 것도 아니라면 더더욱. (그런데 이런 말 하는 사람들을 최근 2~3년 간 너무 많이 본다. 더구나 이제 갓 30대를 넘기거나 반백년도 살지 않은 이들에게서) 그런데 더 속상한 건 뭘 좀 이뤘다는 이들의 무시보다 평범한 주변인들의 다른 사람 의지꺾기가 아닐까. 


소위 SKY 대학 졸업자가 아니라면 “공부 진짜 열심히 했었다, SKY 가고 싶어서”란 말을 꺼낼 수 없는가? 그 결과가 꼭 저 대학일 필요는 없고 여기에서 중요한 건 수험생 시절 좋은 대학 가고 싶단 목표가 있었고 최선을 다했다는 거, 인생에 그런 경험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생각한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야 알고 드러내 노력해야 닿는 법이다

학창 시절 몰래 짝사랑하는 친구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부끄러워서, 상대가 너무 인기 있어서, 친구로라도 못 지낼까봐 등의 이유로 마음을 숨기고 혼자 전전긍긍했다. 그러다 그 사람이 누구랑 만난다더라 하면 속상해하고, 몰랐던 친구가 그와 사귀면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울면서. 상대가 뭘 하든 나는 상관없이 그냥 혼자 바라만 보는 걸로 만족하는 게 아닌 이상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야 알고 드러내 노력해야 닿는 법이다. 


욕심은 있지만 드러내지 못하는 데엔 일부는 그 과정에 들여야 하는 치열한 노력을 할 자신은 없어서도 있지 않을까 한다. 더 많이 일하고, 훨씬 더 잘해야 하는 것처럼 내 수면시간, 내 취미생활, 내 관계 등에서 포기해야 할 것들을 감수하기엔 애매해서. 하지만 뭔가 목표를 잡고 세상의 성취 수준이 어떻든 나는 최선을 다했다 느낄 만하게 지낸다면, 옆에서 보아온 이들이 “너 열심히 했어”라 말해줄 수 있다면, 그런 나 자신이 좋다면 그걸로도 충분히 괜찮다.


그래서 그게 뭐든 목표가 높은 자체는 비하받을 일이 아니다. 목표를 높게 잡는 게 대체 무슨 잘못인가. 그 과정이 성실하지 않거나 도덕적이지 않은 걸 뭐라 할 수는 있어도.

원하는 게 있으면 마음껏 표현하고 당당해지자! 그럼에도 똑똑하고 가진 거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하는 걸 나는 기를 써야 간신히 저 뒤쯤 따라갈 땐 부럽긴 하고 힘도 빠지긴 하지만..

힘은 내가 빠지면 빠졌지 남이 빼버리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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