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SOO Jan 24. 2023

직접 해보고 말하는 비우기 예찬

페인트칠은 그냥 사람을 부르는거다

작년 이맘때 대대적인 청소를 했다.

별생각 없이 시작한 방문 페인팅이 집전체로 옮겨가고 맥시멀리스트의 10년 흔적이 누적된 물건 정리로 이어졌다. 급기야 싱크대와 바닥장판까지 뜯어 내고서야 장장 한 달 간의 대장정이 끝났다.


작정하면 끝을 보는 못돼 먹은 꼬라지와 당시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와의 이별 예감 스트레스가 만나 페인팅과 청소에 영혼을 갈아 넣은 덕분에 어깨를 잃고 일 년 내내 고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잘했다 한다. 발 디디기 어려울 만큼 온갖 물건더미던 집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텅 비운 후 많은 게 변했다.

이미지 출처: https://m.blog.naver.com/biz0807/220696012583

가장 큰 변화는 애초에 물건 자체를 사지 않게 됨. 워낙 자주, 많이 사던 지라 정리할 때 쓰레기를 버리는 데에만 80만 원 정도 들었다. 가구를 버리느라 1톤 트럭에 27만 원 든 걸 제외하고도 당근의 버프를 그리 받았건만 종량제 봉투와 대용량 폐기물 비용으로만 저만큼 써야 했다. 버려도 버려도 끝나지 않는 쓰레기로 몇 번 울컥하곤 구매를 기피하게 된다.


딱히 날을 잡고 하는 청소의 날이 없어졌다. 비운 이후 물건을 거의 사지 않기 때문에 어질러질 일이 별로 없기 때문. 그저 뭘 쓰면 바로 제자리에만 두면 된다. 덕분에 “청소해야 하는데..” 스트레스에서 해방됐다.


바닥에 뭘 놓지 않게 된다. 청소하기 귀찮아서. 선반이나 수납장 위도 마찬가지. 걸레질에 걸리적 거려서. 수납장이 거의 없다. 이거 좀 어디 넣어야겠단 생각이 들면 그냥 물건을 버린다. 수납장이 들어오면 그만큼 더 물건이 생기기 때문에.


바로바로 치운다. 아무리 피곤하고 귀찮아도. 희한하게 접시 하나일 뿐인데 설거지를 미루면 서너 개로 금방 불어난다. 뭐든 치워야 할 게 생기고 그게 눈에 보이는 게 거슬리기 시작했다.


더욱 집순이가 되었다. 전엔 (말이 좋아) 아기자기하게 꾸민답시고 집이 꽉 차있었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무의식적으로 물건 스트레스가 있었나 보다. 전엔 주말이면 거의 카페나 사무실을 나갔다. 그런데 집정리 후에는 카페 욕구가 1도 없다. 난 집에선 잡중 못한다 말하는 부류였는데 집에 공간이 많이 생긴 후론 내방이 가장 집중 잘 된다.


전엔 뭔가를 계속 사면서 절약해야지란 다짐만 반복했었다. 매달 텅장을 보며 반성하고도 다시 사들이는 걸 무한반복. 요즘은 구매욕이 거의 없는 만큼 굳이 절약해야겠단 의식 없이 그냥 안 산다.


어디서 굿즈 주는 게 싫다. 강의 수강 같은 거 하거나 어디 참석할 때 굿즈 거부옵션이 없으면 살짝 짜증도 난다. 머그컵, 에코백 등 넘 싫다고  가능하면 안 받고 필요한 걸 사도 그 자리에서 패키지를 버리고 본품만 가지고 온다. 진짜 쓰레기 버리는 거 너무 싫음.


어지간하면 오프라인으로 산다. 택배 포장 버리는 것도 싫고 필요 이상 생산되는 쓰레기도 싫어서. 책을 거의 버린 이후로는 거의 이북만 보고 굳이 봐야 한다면 서점 가서 사거나 이북 입점까지 조금 기다린다. 덕분에 무작정 책을 사놓는 것도 줄었다. 배달 음식도 마찬가지.


잘 버리게 되었다.

화장품 회사에 오고 모든 소비가 줄어든 가운데에도 화장품은 많이 산다. 보통은 광고에서 후킹 되거나 매장에서 궁금한 걸 사서 써보기 때문에. 입사하고 주요 올리브영 매장을 서른 군데 이상 돌아보며 공부했는데 갈 때마다 하나만 사도 30개가 넘을 수밖에. 예전이었으면 또 쌓아두었겠지만 요즘은 테스트만 해보고 바로 당근을 하든 나눠주든 아니면 미련 없이 버린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


집이 너무 편하다.

원래 집이야 편한 곳이나 가만히 앉아 책을 읽다가도 눈을 들었을 때 보이는 탁 트임이 너무 좋다. 그 자체로 차분해지고 힐링이 된다.

예쁨보다는 공간, 공간감이 더 중요했던 게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게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이 밀리거나 지지부진하면 한없이 미루다 점점 하기 싫어해서 원래도 효율에 집착하는 편이고 뭉개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바로바로 하는 편인데 이 성향이 더 강해졌다. 물리적으로 여력이 안 될 때 다 끌어안지 않고 단순화해 하나씩 쳐나간다. 이전보다 너저분한 걸 더 싫어하게 되면서 단순화 해 우선순위나 선택과 집중에 더욱 집중한다.


뭐든 개선하고 싶을 때 가장 좋은 건 의식하지 않고도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 건데, 소비든 정리든 생각이든 습관이든 저 모든 게 지금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덕분에 “~ 해야 하는데”란 스트레스가 현저히 줄었다.


당시 열심히 보던 청소력, 청소의 힘, 정리력 영상이나 책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게 있다. 비움과 적게 소유하는 것이 마음을 치유하고 생각을 바꾸게 한다는 얘기. 심지어는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는 말. 좀 오버네 했는데 내가 직접 해보고 느껴보니 무척 공감이 된다. 미니멀리스트란 무조건 적게, 싼 걸 가지는 게 아니라 꼭 필요한 거, 꼭 가지고 싶은 것에만 공들이고 불필요한 물건들에 집착하거나 뒤덮이지 않는 게 아닐까.

이미지 출처: https://youtube.com/@minimalnomad

새해에 정리나 미니멀을 목표하셨다면 완전 강추다!


**********************

“나는 집 안에서도 잡동사니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꼭 있어야 할 것이 제자리에 있는 게 우리집의 풍경이다. 잡다한 것들로 채워지는 순간 선택할 것이 많아져 우왕좌왕 시간과 열정을 허투루 쓸 확률도 높아진다. 산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은 죽음에 다가가는 일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삶이 복잡할 필요가 없다” (손웅정,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중)


* 난 당시 집중할 뭔가가 필요했고 덕분에 힘든 시기를 잘 넘어가긴 했지만.. 온 집안 페인트칠이나 장판 시공은 사람을 부르자!

작가의 이전글 목표는 죄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