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인사를 몰라서 그런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스타트업 라이프 초반부터 제기했던 문제. 바로 성장이라는 말로 합리화하며 필요 이상 인원을 늘린다는 점이었다. 이건 사람 없어 일이 안 된다는 대전제가 깔리는 셈인데 엄밀히는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 적다는 게 더 맞을 거다. 무슨 일을 누가 얼마나 해야 하고 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서라는 주장이었고. 회사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가장 먼저 하고 강조하는 부분이다. 프로브가 평가제도 컨설팅 요청을 받으면 대부분 거절하는 이유고 아젠다부터 새로 제안하는 이유다. 대략 이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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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대부분의 초기 스타트업은 닥치는 대로 쏟아지는 일을 누군가 하는 일당백 구조를 가진다. 이렇게 허덕이다 보니 새롭게 A라는 일을 해야 할 때 그 일이 0.3 MM (Man Month)에 불과해도 그 0.3조차 기존 인력이 더 받기 어려우니 한 사람을 채용하게 된다. 그 결과 속된 말로 1인분이 안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 생산성이 기대처럼 오르지 않은 채 고정비만 증가하게 되는 것.
여기에 그들이 일을 만드는데 생산성이나 가치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그들의 1MM을 채우는 일로 채워질 때가 많다. 해야 하는데 못했던 일을 하거나 기존 걸 개선하는 걸로 채워지면 좋겠으나 불행히도 보통은 체계를 잡는답시고 혹은 1의 속도로 하던 걸 .6~.7의 속도로 늦춰 늘린다. 일의 양도 질도 뭐 하나 얻지 못한채. 그럼 창출할 가치 대비 현저히 인원이 는다. 이 말은 불필요한 고정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얘기.
구글의 30% Rule을 언급하며 딴짓할 룸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이건 일부는 맞는 말이지만 대부분은 이상에 불과한 속 편한 얘기라 생각한다.
따라서 저 룸을 가치 발견과 창출의 시간으로 알차게 쓸 수 있는 수준의 능력과 동기를 가진 인재가 전제되어야 해서다. 또한 한 사람이 아닌 대부분의 주변 리더와 동료의 수준도 받쳐줘야 하고. 무엇보다 CEO가 이걸 진심으로 바라고 인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바빠 죽겠는데 노는 사람으로 찍히는 이만 양성될 뿐이고 저런 주장 뒤에 숨어 본인의 무능이나 느슨함을 합리화하는 사람이 생기기 쉬워서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열정과 헌신이 뛰어난 것과 별개로 정말 스마트하고 전략적 사고를 하는 이들은 소수 혹은 극소수. 대부분은 인풋을 많이 넣어 양으로 퀄을 높여가야 할 단계의 인력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을 촘촘히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최선일 수도.
다시 돌아가 맨먼스와 인원 확충 이슈, 일의 촘촘함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작업이 바로 일과 인력의 리소스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난 이걸 개인별 상세업무현황이라고 부르며 수시로, 지속적으로 어떤 일에 누가 얼마의 리소스를 쓰고 있는지 그 리소스의 비중이 그의 핵심일에 더 많이 가있는지를 들여다보곤 했다. 이는 익숙한 직무분석과는 전혀 다르다. 말 그대로 직무를 분석하자는 게 아니라 리소스가 어디 쓰이는지를 보는 것. (개인적으로 직무분석 자체가 아니라 지금까지 행해지던 방식의 직무분석은 조직에 도움은 커녕 부담만 준다 생각)
핵심일보다 언저리 일에 월등히 리소스가 쓰이고 있다면 그 이유를 실제 들여다봐야 한다. 실제 들여다본다는 의미는 미팅하며 꼬치꼬치 묻는 게 아니다. 정말 필요하면 어떻게 일하는지 그 장면을 날로 관찰해야 한다는 거.
보통은 하던 대로 비효율을 반복할 때 낭비가 일어나며 담당자의 역량이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 방법론 고민, 실제 개선까지 미치지 못해 일어난다. 그러나 이런 일의 상당 수는 안 해도 되는 일, 통합해도 되는 일이다. 심화 면담 한답시고 말로 들어봐야 그들에겐 다 이유가 있고 명분이 있으므로 절대 개선하기 어렵다.
하던 대로 한다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생각 자체를 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인데, 늘 하던 일이기에 안 하면 안 되는 일로 인식하기 때문. 설사 인식했다 해도 실무자 입장에서 이 일을 하지 말자 하긴 대단히 어렵다. 당장 닥친 일은 해야 하니 시간이 가면 귀찮아진다. 또 다른 대안과 논리적 근거를 충분히 제시해 설득해야 하는데 그건 또 어렵다 보니 귀찮고 일 하기 싫어 불만인 것처럼 비칠까 두려울 수도.
어떤 일의 진행과 중단은 실무자가 건의할 수는 있어도 의사결정은 어렵다. 결국 경영진이나 리더가 나서서 들여다 보고 교통정리 해줘야만 하는데 문제는 이들 조차 그 판단과 결정을 선뜻 하긴 어려워할 가능성이 높다.
업무 프로세스를 잡고 체계화한다, 매뉴얼을 만든다로 접근하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이게 늘 도돌이표인 이유는 리소스 현황을 제대로 안 본 채 현재 일 그대로 '정리'만 하려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 정리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1.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한데 모으거나 “치워서”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함
2.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종합함
3. 문제가 되거나 “불필요한 것을 줄이거나 없애서” 말끔하게 바로잡음. 여기서 중요한 건 일단 없앨 걸 치우는 건데 위에서 말한 상황은 2번에 주로 치중할 때 벌어지는 거.
내가 맥시멀리스트던 3년 전 한 달간의 대대적인 집정리에서 다이소 정리 바구니만 100개 넘게 나왔다. 분류해 종합하기만 한다는 건 있는 짐 다 끌어안은 채(=하던 일은 그대로 다 한다) 차곡차곡 어딘가 잘 수납하겠다는 의미일 뿐이다. 조직 내 누군가 주장하는 체계화와 정리가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 잘 봐야 한다. 룸을 벌려면 버리고 비우는 게 먼저다.
“초반엔 내가 다 했다, 지금도 인원 많지도 않고 무슨 일 하는지 다 안다” 하는 분들이 많지만 그럴 리 없다. 인원이 늘기 시작하면 각 담당자의 세부 업무를 다 알지도 못할뿐더러 더 나아가 그 업무별로 리소스가 얼마나 쓰이고 있는지, 핵심일에 얼마나 쓰이고 있는지, 진짜 일이 많아 못하는지 일이 없어도 못할지를 구분해 내기 어렵다. 아는 것과 정확히 아는 건 다른 얘기다.
일을 속속들이 팠다 해도 실제 줄이는 건 대단히 어렵다.
“~ 해야 한다”는 일은 차고 넘쳐서 못해도 리소스 부족으로 못했다 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must do로 배워 온 일들은 어제처럼 그냥 하면 그만.
하지만 어느 정도 정형화된 일들이자 보고 배운 일들 중 “~ 안 해도 돼”를 인정하리란 여간 어렵지 않다. 이건 인지하든 못하든 내면 깊숙하게 자리 잡은 그간의 내 경험과 지식이 부정당하는 듯한 방어심리를 발동시킬 가능성이 높아서다.
익숙한 게 가장 편하고 아는 거에 안주하고픈 심리와도 통하는 부분이다.
“해야 한다는 걸 잘하자”로 교육받고 자기 계발 해온 사람들에게 “안 해도 된다”는 단순히 업무 혁신이 아니라 자기부정, 자존심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
조직의 일과 사람을 집요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인사를 잘해야 해서, 리더십이나 육성이 어떻고 때문이 아니다. 거창하고 이상적인 말 말고 절박한 경영이자 조직운영 문제라서다. 리소스의 용도와 양을 최적화해야 하는 관점으로 봐야 하는 거.
핵심일을 못하는 이들 중 대부분은 실제 그 일을 할 능력부족일 때가 많다. 일을 못할수록 그들은 언저리 일에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 핵심일을 못한다며 부가가치 낮은 일 뒤로 숨어 버린다. 굳이 안 해도 되는 걸 '열심히' 하고 있다는 자기 합리화와 바뀌지 않아도 되는 명분만 강화시킨다.
실례로 아무리 상세업무현황을 들여다봐도 대체 왜 이 업무에 시간을 이리 많이 쓰나 싶은 일이 있었다. 면담도 몇 번 해보고 담당자는 “당신이 몰라서 그러는데 직접 해보면 손이 많이 간다”고. 내가 일을 정확히 몰라 선택한 방법은 그냥 옆에 앉아 일을 어떻게 하는지 들여다보는 거였다.
결론은?
엑셀을 못해서 수작업으로 일일이 하고 있던 것이고 이전 휴먼에러도 복붙 실수였다.
이들을 독려하니 챌린지 하니 하며 핵심일 하라고 아무리 말해봐야 숨을 일이 있으니 그 일만 하던 대로 할 뿐 변화는 없을 거다.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숨어 버리는 그 일 자체를 제거하는 거다. 핑계가 없어졌을 때 날것의 능력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그제야 핵심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명확히 구분이 가능해진다. 가장 중요한 건 이미 리더는 심정적으로 그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본인은 인정 않던 걸 스스로 인정하게 직시시킬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이게 바로 인사제도니 뭐니 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고 가장 중요한 일. 발라낼 거 발라낸 후 육성도 하고 필요하면 인력 채용이나 교체도 해야 한다. 이 정도 성의도 안 보여 놓고 “우리 애들 한심해요~” 하지 마시고.
그리고 이쯤 되어야 저 인간 일 못해서, 저 인간 일 없어서, 저 일 필요 없어서라고 할 수 있는 거고.
물론 대단히 어렵다. 공수는 공수대로 엄청 드는데 욕은 욕대로 '처먹기 십상'이라서. 무엇보다 파악하는 건 문제도 아니다. 이걸 얼마나 지속적으로 집요하게 들여다보며 실제 업무와 인력 조정, 평가에 활용하느냐가 관건인데 이게 어려운 거다. 이 정도 성의로 할 정도면 조직에 로스가 철철 넘치기도 어려움. 결국 다 대표와 리더의 발품이다.
보통 회사의 자원을 돈, 시간, 인력이라 하지만 시간과 인력도 결국 다 돈이다. 리소스 최적화는 돈이 새는 걸 막는 일. 사람관리 피곤하고 리더십이 어떻고 사업 하기 바빠 죽겠다고들 하는데 대단히 큰 착각이다. 거창하게 육성이니 문화니 외치지 않아도 경영자의 가장 중요한 일은 돈을 버는 일인데 돈 벌어야 한답시고 간과하는 게 새는 돈 막는 거다. 밑빠진 독에 주구장창 물만 들이 붓지 않기 위함이고. 새는 돈 막기 위한 촘촘함이 곧 문화이자 리더십이고 육성이며 제대로 일하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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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하는 사람과 조직 이야기 https://maily.so/probt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