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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O Nov 02. 2024

[프로브톡 9화] 딱히 틀린 건 아니지만 ③

<지난 이야기>

[프로브톡 7화] 딱히 틀린 건 아니지만 ①

[프로브톡 8화] 딱히 틀린 건 아니지만 ②


제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던 피드백, 그 피드백을 주신 분은 리더십 문제로 이슈가 꽤 있던 분이었습니다. 팀은 와해 직전의 갈등 상황이었고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리더십이었어요. 그다음 해에 팀의 70%가 퇴사했고 리더는 면직되었습니다. 그 정도로 팀은 문제가 많았어요. 이미 불이나 활활 타고 있는 집에 나타나 기름을 더 붓고 있는 역할을 제가 하고 있던 거죠. 


리더였던 분은 좋은 분이었습니다. 적어도 인간적으로는요. 

따뜻했고 배려심도 있었으며 코칭에 진심인 분이었어요. 네, 그럼에도 정작 본인의 리더십과 팀의 문제에는 무능했습니다. 갈등이 극심했던 팀원들과의 대화를 회피했고 가끔씩 넘는 선에도 단호하지 못했습니다. 본인이 편한 특정 팀원과만 일하려 했고 나머지 팀원들은 방치에 가까웠어요. 해당 부서의 커리어를 가진 것도 아니어서 업무 디테일에 한계도 있었고 갈등과 경험 부족, 역량이 축적되지 못한 상황에서 갈수록 본인이 관심 있고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게 된 것도 한몫했습니다. 


전 늦게 시작한 직장생활로 빨리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 차있을 때였고 내가 배울 수 있는 사람이냐 아니냐로 호불호를 극명히 나누던 시절이었는데요. 아래의 내마음 보고서(http://www.mindprism.co.kr, 1~2년에 한 번씩 해보는 심리진단이에요)에도 이런 얘기가 나올 정도였죠. 은근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아니라 대놓고 구분했어요. 각기 다른 해에 실시한 검사였는데 완화된 건 최근 일이랍니다. 

이런 저의 편협함과 까칠함으로 그 리더에 대한 존경이나 존중감도 없었어요. 팀이 이 모양이고 리더십이 이 지경인데 무슨 코치냐며 그의 코칭 강의나 공부마저 꼴 보기 싫어할 정도였으니까요. (레터 쓰며 다시 돌아보니 저 정말 엉망이었네요 �) 면직 후 다른 부서로 이동한 리더와 가끔 유관부서로 커뮤니케이션하면서도 참 싫어했어요. 대체 왜 저렇게 사느냐며 한심해하기도 했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 정도였는데도 피드백(이라 쓰고 경고라 읽는)을 받던 그때 진심으로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어요. 10년을 훌쩍 지난 지금도 그때의 그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유쾌할 리는 없었음에도 피드백받던 분위기나 리더의 말투, 표정, 메시지 모두 좋았어요. 어떻게 고약하기 짝 없던 그 시절의 제가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던 걸까..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s://wonderfulmind.co.kr


1. 배려와 진심

리더는 무능했지만 인간적으로는 정말 좋은 분이었어요. 부족했을지는 몰라도 본인이 가진 능력과 생각 내에서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분이었죠. 저는 코칭은 실제로도 자기인식이 되고 남에게 코칭하는 대로 스스로도 행하는 사람이어야 할 수 있다 생각하는데 그게 아닌 분이 말하니 다른 때였으면 "너나 잘하세요" 자세였을 겁니다. 그런데 이 분은 코칭을 소명으로 삼고 계셨고 다른 이의 성장을 돕고 싶은 것도 공감도, 경청도 진심이었어요. 평소 잘못해도 단호하게 말하길 회피하는 유형이었기에 제게도 어느 정도는 돌려서 말씀하신 걸 거예요. 그 회피가 평상시엔 그렇게나 싫었는데 면담 때는 제가 상처받을까 봐, 진심으로 기회를 주고 싶단 메시지로 표현을 해주었습니다. 혼나거나 질책당하는 느낌 하나 없이 그러면 안 돼란 말을 확실하게 전달해 주셨거든요. 나의 호불호와 별개로 상대가 진심이라면, 그걸 내가 안다면 대화는 반은 성공이에요.  


2. 기본적인 신뢰

능력이나 리더십에 대한 불만, 불명확한 제 포지션 방치, 갈등 회피에 짜증과 화가 난 상태였지만 인간적으론 저를 위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회피형이었기에 내게 이런 분이 이런 말을 한다면 '오죽했으면, 이유가 있다'라 생각했죠. 이때를 기점으로 저는 지금까지 임직원을 대할 때 하나 기준이 생겼어요. 특정 유형의 사람이 매우 완곡한 표현일지라도 내게 어떤 말을 한다면 일단 경청하고 이유가 있을 거다란 전제로 대해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불평불만을 가감 없이 내비치는 사람보다 저런 유형의 사람들이 어쩌다 한 마디 하는 것의 묵직함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이분들이 입 밖으로 얘기를 꺼낼 때엔 큰맘 먹고, 정말 문제라 생각해서, 진심으로 충언이든 조언이든 문제제기든 한다고 믿거든요. 

당시의 리더를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그런 분이었습니다. 아니, 적어도 그런 분이란 신뢰가 제게 있었어요. 때문에 가장 괴팍하고 무례했던 시절에도 흘려듣지 않고 분노하기보단 저를 돌아볼 수 있었고요.  


3. 위기의식

고작 대리였지만 경력직으로 입사했고, 늦은 출발을 만회하겠단 조급함으로 빨리 성과를 내보이고 싶단 마음이 간절했어요. 하지만 제 능력이든 상황이든 제 맘 같지 않게 시간만 흐르고 있었죠. 어느 순간까진 폭주하듯 가시를 세우고 여기저기 부딪히고 있었는데 리더의 경고는 정신 놓고 달리다 "너 그러다 죽어"라며 브레이크를 대신 잡아준 것 같았습니다. 이 상태로 계속 가면 사고 날 걸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스스로는 멈추지 못하고 더 무리하게 달리는 것 외엔 다른 생각을 못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요. (물론.. 이후로도 거의 1년 정도 이런 시기가 지속되긴 했습니다만) 단 한 명만 제게 너 죽는다 소리 질러주거나 와서 박아서라도 멈추게 해주는 사람이 절실했던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좋은 피드백은 거창하게는 사람 하나 살리기도 하는 중요한 일인 겁니다. 이대로는 실패자로 낙오되고 어렵게 들어온 좋은 회사에서 잘리겠구나란 위기감이 엄습했어요. 직전에 창업하고 크게 실패했기에 더 간절했던 '안정적인 직장',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도 있었죠.  


4. 처음 받은 피드백다운 피드백

피드백을 전혀 안 받고 살았냐 하면 그렇기야 할까요. 다만 이전 레터에서 언급했듯이 되로 주고 말로 받을 이미지라 제게 굳이 말하지 않는 이들이 많았을 뿐이죠. 들었던 피드백이라는 게 어찌 보면 그냥 욕에 가까웠던 거 같습니다. 그러면 안 된다, 너 잘못이다, 너 별로다 같은. 블라인드나 잡플래닛에서 들을 불만 같은 거요. 왜 문제인지, 현재 상황에서 뭐는 어떻고 너는 어떤지,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언제까지 기회를 줄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게 설명을 해주었어요. 무조건 제 잘못이라고 하기보다는 여러 상황을 감안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였죠. 그리고 언제까지 적어도 어떤 건 어떻게 바뀌길 기대하는 지를 전달했습니다. 감정이 아닌 머리로 이해되면 꽤 수용적인 제 성향도 영향은 있었어요. 리더가 저는 합리적이라 생각하면 감정적으로 해석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얘기를 시작했는데 제 스타일을 정확히 파악하고 제가 납득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했기에 가능했습니다. 피드백에서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닌 팩트 기반 문제 분석, 해결 방안, 위로, 공감, 필요하다면 줘야 하는 질책, 리더가 지원할 부분, 맞춤형 화법까지 잘 갖춰진 피드백이었네요. 지금 보니 리더가 좋은 코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화자찬 하자는 건 아니고 모날 대로 모났던 저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좋은 멘티의 자세도 있었네 합니다. ^^  비록 "쟤 뭐야"하는 거부감만 더 얻었던 섣부른 사과였지만 피드백받은 후 문제해결을 위해 행동했고, 부정적 반응에 팀장에게 찾아가 어떤 식으로 해보면 좋을지 적극적으로 조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팀 내 선배, 동료와 이야기하며 나를 좀 도와 달라 부탁도 했고요. 1년 이상 걸리긴 했지만 결국 전체 팀원들의 신뢰나 신뢰까진 아니어도 저에 대한 이해를 얻어내는 데에 성공도 했어요. 제게 따끔하게 경고는 했지만 마음은 불편했을 리더도 더 적극적으로 저를 지원해 주기 시작했고, 저와 대립하며 투닥거렸던(2화 에피소드) 선배도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저는 멘토링이나 코칭을 가끔 하는데 준비가 안 되었거나 성의 없이 참여하면 얘기해 보고 지속될 것 같으면 중단해요. 또는 이 시간엔 열심인데 현업에 가서 아무것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진심으로 이게 필요하고 절실할 때 연락하시라 합니다. 멘토링, 코칭, 피드백 장면에서 중요한 건 이끌어가는 사람뿐만 아니라 받는 사람의 준비와 수용적 자세도 못지않게 중요하죠. 요즘 매니지업이란 말도 있고 팔로워십이란 오랜 키워드도 있습니다만 괜한 말이 아니에요. 구성원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까지가 리더의 역량이라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은 역시 진리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구성원들에게 피드백을 계속 달라고 하고 의견도 뭐든 얘기해 달라고 부탁하는 말을 자주 해요. 사무실을 어슬렁 거리며 스몰톡도 던지고 최대한 스킨십을 하려 합니다. 그럼에도 포지션 상 구성원 입장에서는 마냥 편할 수는 없지만 계속 말을 건네고 터치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리더의 구성원 입 열기는 발품 팔기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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