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진단, 검사는 재밌다....

by SSOO

20~15년 전 검사에 푹 빠진 적이 있다. 육성과 조직진단 업무를 하며 마치 검사 자격증이 많으면 전문가가 되는 거 같았고 뭔가 검사하고 결과를 분석해 피드백한다는 것에 꽤나 다르게 일한단 느낌도 즐기며.


DISC, MBTI, TA, Extendid DISC, 애니어그램에 직무스트레스, 호간, 버크만 등등 들어 봤든 생소하든 기업교육시장에 도는 어지간한 건 다 따고 다녔다. 그냥 교육받았다가 아니라 돈과 시간 엄청 들여가며 자격증을. 물론 이 자격증들은 진입장벽이 낮다.


검사에 재미를 들이며 조직진단지도 개발하고 통계 돌려 가며 한 4~5년 열심히 했는데 지금은 전혀 쓰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검사에 비판적. 정확히는 매우 신중.


검사에 맛 들리기 시작한 사람들은 자기 일마다 한 꼭지씩 넣기 시작한다. 참여자도 재밌어하고. 지금 비판적이라지만 나도 그 덕에 꽤 많은 데이터를 얻었다.


얼마 전 지인과 이 얘길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적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검사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검사냐 진단이냐도 정확히 구분 못하거나 관심도 없다는 거. 이론적으로 정의 싸움 하자는 건 아니고 검사와 진단은 애초에 레벨도 범위도 목적도 달라서다.


다시 돌아가 비판적인 이유는 이런 거다.


1. 분노, 혐오, 증오, 의심 같은 리스크 항목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거


2. 자기 응답형이라는 거


3. 검사가 악용되기 쉽다는 거


내가 스타트업에 들어왔을 때 가장 뜨악했던 장면 중 하나가 입사지원 시 웹에 있는 16 personalities 검사 후 그 결과를 내라는 회사들이 있더라는 거였다. 꽤 인지도 있던 곳들이고 하나같이 본인들이 대단히 인사에 진심이고 채용 프로세스를 잘 짰다 그 자부심이 엄청났다.


그러나 내부에 MBTI 전문가는 없었다. 알음알음 알려진 나무위키 수준의 해석으로 아는 걸로 판단하고 평가했을 뿐.


MBTI 자격과정에서는 기본부터 마지막 전문강사 마무리날까지 매 시간 검사 윤리와 검사자 원칙을 강조한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선 비전문가의 왜곡된 해석으로 자기 이해가 본질인 검사가 타인 편견을 부추기고 평가의 도구로 쓰이기도.


이런 검사들의 공통점은 자기보고식이란 건데 현장에서 그룹교육 프로그램에 쓰다 보면 꼭 이런 케이스가 나온다. “나 OOO야”, “에이~ 너 그거 아니야”.


자기가 보이고 싶어 하는 유형에 맞춰 응답하고 그 유형이라 주장하는 이들, 너가 무슨 O냐, XX지 하는 이들.


자기보고식은 피검사자의 자기인식 성숙도와 성향에 따라 쉽게 응답이 바뀐다. 그리고 자기보고라는 자체가 피검사자 개인에 집중하기 위함인데 충분한 자기 인식의 시간 없이 타인 이해, 관계 및 갈등과정에서 다루며 접하면 타인에게 무게 중심이 가기 쉽다.


다크 사이드를 보는 검사가 있긴 하나 널리 쓰이진 않는다. 그 임팩트가 커서 사용에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실제 내면 깊이 깔린 응축된 심리를 드러내기엔 턱없이 부족할 거다. 그러니 매우 주도적일 때 남의 의견을 무시하기 쉽고 강압적일 수 있다 식으로 해석에 퉁치는 건 자기 인식에 별 도움 안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상대적 취약점과 리스크는 전혀 다른 얘기고.


가장 큰 문제는 세 번째다.


리더들에게 이런 과정이 잘못되면 교육장에선 자신을 돌아보다가 좋든 싫든 동의하며 맞아맞아 한다. 그러다 우리 구성원도 이것 좀 해봐야겠다 한다. 여기까진 그렇다 치지만 많은 경우 이걸로 저 사람 좀 봐야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보통은 선호/비선호 유형이 분명해 뭐만 뽑자, 뭐는 뽑지 말잔 얘기도 공공연한 비밀이 된다.


그래 놓고 리더십 책 읽으며 밑줄 긋고 회사 인재상이나 핵심가치엔 다양성 존중, 경청, 다름 이해 같은 게 버젓이 강조되기도. 제한적인 사례지만 내가 만나 본 리더 중 MBTI 강조하고 묻는 사람치고 본인 리더십이나 성격 좋다 평가받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


실제 성격검사는 CEO, 임원이나 기타 파워가 절대적인 사람에게 어설피, 흥미롭게 쥐어질 땐 칼이 되기 쉽다. 아직 감정 조절력이 약하거나 정신적 미숙자에게 칼을 함부로 휘두르면 다친다를 가르치기 위해 우선 손에 칼부터 쥐어주는 셈이 되기 쉽다.


이론이나 검사나 그 자체로 죄가 있는 경우는 없다. 늘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일 뿐. 아무리 검사자가 신신당부한 들 애초에 개인 검사가 그룹프로그램으로 쓰이는 게 문제라 생각한다. 동질의 소그룹을 선별해도 진행해도 위험한데 균질하지 않은 다수에게 집체 교육은 임팩트가 대단했지만 휘발되거나 자칫 이해가 아닌 편견만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아서.


이런 검사, 인문학, 과학까지 기업교육시장으로만 오면 유행으로 변질되기 쉬운 건 참 아이러니다. 의도는 달랐는데 말이다.


그래서 쓰지 말라는 거냐 하면 그럴 리가. 나도 mbti나 애니어그램, 기타 다른 검사들 얘기 종종 한다. 가장 매끄럽게 스몰톡을 시작하기 좋기도 하고, 어쨌든 인식의 계기를 만들어준다는 의미까지 부정할 순 없다. 다만 정말정말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 그게 그건가 싶어도, 의도보다 리스크를 좀 더 생각하며 설계하면 좋겠다 싶다. 의도에 맞추면 잘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듯 리스크에 맞추면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도 의도 전달만큼 많이 고민했으면.


전달자보다 도입해 이거 해보자 하는 이가 주의해야 할 일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HR에도 적정 HR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