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절
”이런 아이면 열명도 키우지! “
잠깐 마주치는 모르는 아주머니들까지도 이렇게 말했다.
보통의 엄마들이 대부분 싫어하는 말인데.
싫어할 만한 말인데.
나이가 들면 눈치가 없어지는 걸까?
기선제압일까?
자신에게는 다시 돌아올 일 없으니 막 말하는 걸까?
나도 저런 아줌마 할머니가 될까?
첫 번째 아기를 낳고도 정말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저 멘트를 많이 들었었다.
그때는 듣자 듣자 하니 조금 분노가 올라왔다.
아니 잠깐 보고 뭘 안다고 저렇게 단정하듯 말해?
정말 열명 키울 수 있다고? 있다고?
해봤다고? 아니! 해보고나 말하지?
고운 말도 아니꼽게 들릴 수 있는 정신 상태였을 거다.
그 무렵의 나는.
눈 깜짝하니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신생아를 하나 키우고 또 하나 키우고.
세 번째 신생아를 여섯 달 동안 키워내는 중인 지금의 나는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음.. 그렇지. 잘하면 진짜 열명도 키우지. 이렇게 귀여운데.’
‘맞지. 진짜 순하지. 이 정도면 진짜 수월하지. 그건 맞는 말이지.’
나의 셋째만 보고 들자면 뭐 그렇게 아닌 말은 아니라고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순한 아이의 육아가 고되지 않다는 것도 절대 아니다.
육아에는 절대값의 고통이 있기 때문.
또 영유아기에 순했다고 평생 순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아기 때 지랄 맞았다고 영원히 지랄 맞은 것도 아니다.
인간에게는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하니까.
언제 어느 때에 지랄의 시기가 도래할지는 모르는 노릇이다.
그러니 지금을 즐긴다.
백설기처럼 무해한 내 아기의 호시절을.
혹여 반대의 경우라면.
조금만 더 힘을 내어보자 권한다.
좋은 시절은 온다.
반드시.
(그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 이 귀여움 그리워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