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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종소리 '보신각'

다섯 번째 글보따리 (곰의 글)


당초 계획은 당장, 잠옷 바람에 슬리퍼만 신고 나가도 바로 볼 수 있는 문화재를 소개하려고 했습니다만, 새해를 맞이하여 보신각을 한 번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많이 늦었지만요. 




사람들이 바쁘게 출근하는 시간인 아침 8시. 학부에 다니는 동안에만 지내는 종각의 한 고시원 밖으로 나왔다. 어제 밤까지만 해도 시끌벅적 했던 젊음의 거리를 지나, 종로 1가 사거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서둘러 걸어간다. 도착 해보니 보신각 앞 터에서 멍하니 종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친구가 보였다.  

2021년 1월의 보신각 ⓒ곰


“많이 기다렸지? 미안해”. 
“어? 왔어?? 괜찮아 그렇게 많이 안 기다렸어. '곰'아 오늘은 학교까지 걸어갈까?” 
“그럴까? 오늘은 천천히 가자.” 


그녀와 함께 같이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보신각 종 앞에서 만나 같이 걸어갔다. 그렇게 학기마다 매일 스쳐 지나가듯이 보던 보신각 종. 이제는 어떻게 생겼는지, 올라 갈 수는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 할 수 있게 되었다. 




보신각 터 설명문 ⓒ곰

보신각은 파루(罷漏, 오전 4시경)에 33번, 인정(人定, 오후 10시경)에 28번 울려 도성의 문을 여닫고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데 쓰인 보물 제2호 보신각 종이 있던 자리를 말합니다. 파루는 불교의 33천(天)[불교의 우주관을 나타내는 개념]을 따라 33번, 인정은 별자리의 28수(고대 중국의 별자리를 나타내는 것)에 따라 28번을 쳤습니다. 


1396년(태조 5년) 처음 설치한 종루는 옛날 서울의 중심부, 현 인사동 위치에 있었으나 태종(13년, 1413년) 때 현재 종로 네거리 쪽으로 옮겼습니다. 세종 때에 초대형 누각(정면 5칸, 측면 4칸이었고 세종 때에는 1칸이 8자로 측정 되었음.)이었지만 오랜 세월동안 파괴와 재건을 거치면서 조선 후기에는 단층 전각이 되었습니다.  


종(세조 14년, 1468년에 만들어짐.) 또한 오랜 세월 병화(군사, 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재화(자연 재해로 인한 피해)로 인해 균열이 생겨 더 이상 종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입니다. 임진왜란, 6.25 전쟁, 화재 등 참으로 많은 고초를 겪은 것입니다. 


그 후, 1985년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서 지금의 종을 만들었고 같은 해 8월 15일에 첫 종을 치게 되었습니다. 현재까지 12월 31일이 되면 타종 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집 근처는 아니지만, 우리가 일상 속에서 녹아 있는 문화재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또한 2021년이 밝았으니 한 번쯤 다루어 보고 싶었습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취소가 되었지만 내년에는 꼭 종소리를 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문화재유랑단'은 문화재 탐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입니다. 회원들끼리 문화재 탐방의 나가는 것도 좋지만, 단체 외부 사람들도 '문화재 탐방이 재밌네!'라고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탐방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기도 하고, 지금 여러분이 읽고 계신 것과 같은 글을 쓰기도 하는 단체입니다. 


우리 단체에서는 '글보따리'라는 이름으로 문화재 관련 글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쓰는 이는 3명이고, 주제는 '우리가 쓰고 싶은 문화재 글'이랍니다. 그래서 글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을 수도 있고, 주제도 관심에 따라 자주 변경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다양하고 색다른 글을 만나보실 수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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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유랑단이 궁금하다면? (문화재유랑단.org)

다섯 번째 글보따리 작성자: 곰(2021.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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