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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mi Jul 05. 2021

부다페스트 3: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들


빛을 뒤로하고 나타난 어둠 속을 얼마쯤 걸었을까. 거리의 끝이 보이며 차가 하나둘씩 나타나고, 작은 불빛과 함께 오고 가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워질수록 또렷해지는 빛은 한 밤 중을 아우르며 주변을 비추고 있었다. 그 빛의 한가운데에서 노오란 불을 잔뜩 밝힌 세체니 다리는 사진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하지만 나의 기분은 그렇지 못했다.



눈앞의 세체니 다리를 어떻게든 담아보려 누른 셔터는 빛이 번질 대로 번져 그 아름다움을 오롯이 담지 못하였다. 지금 내 기분만큼이나 번져버린 빛의 모습에 사진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강가를 따라 국회의사당 쪽으로 향했다. 아름다운 빛의 다리 한가운데를 건너기엔 기분이 도저히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바닥에는 어떤 물건으로 보이는 것들이 이리저리 늘어져 있었다. 눈앞에 하나의 신발이 나타나더니 이윽고 여성 구두가 나타났고, 이어서는 앞선 신발보다 더 작은 사이즈의 신발이 나타났으며 그 뒤로는 한 켤레의 겨울 부츠가 이어졌다. 자세히 보니 강가를 따라 늘어진 이것들은 신발 모양의 동상이었다.




​그 신발들을 보니 마치 신발을 벗기에 바빠 가지런히 두지 못한 상황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그렇게 지금 막 벗어 놓은 듯한 세밀한 묘사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사전에 부다페스트의 관광지에 대해서는 검색해보지도 않고 와버린지라 그 자리에서 검색을 해보았다. 왜 하필 강가에 신발이라는 물건이 여럿 늘어져 있는 것일까.



그리고 검색을 마친 나는 더 이상 신발을 신발로서 바라볼 수 없었다. 파시스트에 의해 신발을 벗어야만 했던 유대인들의 마지막 순간이, 섬세한 신발의 주름을 따라 잔인하게 스며든 듯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이 벗어두고 간 신발에는 그들이 갈망하던 내일이자 나의 현재가 담겨 있었다.



나는 불과 몇 분 전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에서 내일을 갈망하지 않는 사람을 마주쳤다. 그리고 또 다른 이에게서는 이곳 신발의 주인들이 꿈꾸던 내일의 행복을 보았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이 도시의 한가운데서 느낀 것은 당연하지 않은 오늘과 내일이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은 오늘과 내일을 지금껏 너무도 당연히 여긴 것은 아닌지 숙연해졌다.



그리고 스스로 얼마만큼이나 오늘과 내일에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한국에 두고 온 나의 현재야말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 어떤 것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이곳을 떠나 다시 마주해야 하는 나의 미래가 너무나도 두려웠다.



누군가 버리고 간 플라스틱 페트병 하나가 눈앞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이는 아름다운 주변 경관과 어우러지지 못하여 더욱 눈에 띄었다.



나를 둘러싼 아름다움 속에서 아름답지 못한 현실을 마주하면 마음에 더욱 사무치는 것일까. 아름다운 도시의

빌딩 위에 홀로 서있을 수밖에 없던 남자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   있을  같았다.




​결국 그 날은 세체니 다리를 건너지 못한 채로 돌아오고 말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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