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부서진 자리에서 글이 시작되었다
삶을 미시적으로가 아닌, 하나의 거대한 호흡처럼 바라볼 때
세 개의 분기점이 내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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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첫 번째 시기: 학창 시절, 왕따 경험 이후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사춘기가 또래보다 늦게 찾아왔고,
아이들 속에서 넘실거리던 호르몬의 파도에
나는 낙관적으로, 평화적으로 웃으며 반응했다.
그 순간, 아이들의 거센 장난은 반복되었고
나는 어느새 괴롭힘의 타깃이 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모든 것을 말로 풀 수 없다”는 믿음이 움튼 시점.
언어는 때로 나를 보호하지 못했고,
그때부터 나는 말 대신 고요를 선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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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두 번째 시기: 군대, 5평의 철장 속에서
내가 군 복무를 했던 공간은
5평 남짓한 크기에 40명이 자는 일반 내무반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특수하고 밀도 높은 공간에
나는 배치되었다.
그곳에서는 말보다 침묵이 자연스러웠고,
웃음 대신 무표정이 보호막이었다.
그 속에서 “나만의 정서적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은 있었다.
물질적으로는 끝이 정해져 있음에도,
책은 나에게 무한한 空間를 선물했다.
말할 수 없던 나는, 읽었다.
읽고 읽다가, 어느 순간 쓰기 시작했다.
철창 아래 고개를 숙이고 지나는 벙커 속에서도
글은 나를 우주의 끝으로 데려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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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 번째 시기: 공시 준비, 서울의 곰팡이 냄새 속에서
군 제대 후, 서울로 올라와
혼자 시험을 준비하던 1년은 참혹했다.
답답한 원룸,
부랴부랴 먹은 맥도날드를 체해서 토한 뒤 오장육부가 뒤틀렸던 날.
걱정할까 두려워 부모님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곰팡이가 벽을 타고 퍼지는 방 안에서
나는 미친 듯이 글에 매달렸다.
그건 공부가 아니었다.
도피도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붙잡을 수 있었던 유일한 구조물이었다.
달팽이가 위험을 느끼면 집 안으로 숨듯,
나는 책과 글이라는 껍질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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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 모든 것이 합리화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와서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이
그저 나의 사족일 수도 있다.
나는 원래 말이 많았고,
그래서 누군가의 표적이 되었을 수도 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자신이 없었던 것을
도피로 포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 시기들 속에서 글만은 거짓이 아니었다.
글은 나를 속이지 않았다.
글만은 항상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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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질문
나는 왜 말보다 글을 택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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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말은 타인의 맥락을 먼저 고려해야 했고,
나는 언제나 한 발 늦었다.
하지만 글은 내 호흡 안에서 이루어졌다.
침묵이 무너지던 순간,
내 안에 가장 깊은 문장이 태어났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