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이상적인 아버지를 상상하는가

사랑은, 끝내 어떤 형식으로 남게 되는가

by Seon J

나는 이상을 믿는다.

이상은 도달하지 못하는 무지가 아니라,

도달하지 못해도 여전히 도전해야만 하는 방향이다.

그렇기에 이상적인 아버지상 또한,

추상으로 머무르는 대신 현실을 통과해

현존 가능한 언어로 정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글은 그 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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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훌륭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 상처는 미사여구보다도 깊은 자국으로 남아

지금은 말보다 눈빛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의 젊은 시절, 절대적 신념으로 나를 조형하려 했던 손길들은

지금 이 순간, 글을 쓰는 내 손끝에도 아프게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묻는다.

그가 과연 잘못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시대를 통과한 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의 방식이었다.


IMF, 외환위기, 국가경제의 붕괴.

‘안정성’은 단어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실존의 신념이었다.

그래서 그는 나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지수를 설명했고, 세계 국기를 외우게 했으며,

어린 내가 늘 ‘미래’에 맞춰져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기대를 따라가지 못했다.


사춘기 즈음, 내 학습은 멈췄고

서로를 가장 안아야 할 그 시기에

우리는 서로를 할퀴었다.

아버지는 무너졌고, 나도 그 무너짐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멀어졌다.


*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사회에 나왔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사회는 생각보다 훨씬 냉혹하다.”

그의 정제된 말이 말하지 않던 것을,

내가 온몸으로 겪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방식이 완전히 옳다고는 할 수 없어도,

완전히 틀렸다고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그가 끝내 말하지 못했던 사랑,

그는 내 삶에 형이상학의 미학처럼

조용히 스며들어 있었다.


*


그 이후로 우리는 계절처럼 조금씩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졌다.

선로의 틈을 메우듯, 생애 주기가 지나면서

나는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만약 내가 아버지가 된다면, 나는 어떤 사랑을 실천하게 될까?


사랑은 조심스러운 감정이다.

그러나 아이의 눈높이에서 보면,

그 조심스러움조차도 때로는

무언의 폭력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고 싶었다.

‘이상적인 아버지’란 무엇인가?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침묵이며,

무엇이야말로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결정인가?




그리고 지금, 나는 이 글을 쓴다.

언젠가 이 글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읽을 아버지를 상상하며.

그가 말하지 않던 것들을 나는 쓴다.

그가 끝내 사랑으로 만들었던 모든 것들을

나는 다시, 언어로 불러낸다.


이것은 단지 나의 사유가 아니다.

이것은 사랑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평생의 실험이다.

나는 그 실험의 첫 페이지를,

이제 아버지라는 단어로 열어본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