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때로, 말해지지 않고도 자리를 남긴다.
나는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아버지에게서 들어본 적이 없다.
그 특유의 무뚝뚝하고 투박한 정서.
그건 아버지의 체온처럼 늘 곁에 있었지만,
말로 표현된 적은 없었다.
우리가 서로를 끌어안은 건 단 한 번,
군 입대를 앞둔 날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갑작스럽게 끌어안았다.
가슴이 옥죄일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등을 세게 밀며 말했다.
“가라. 기다리마.”
나는 나의 아버지를 이상적인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보다 더 아름다운 남성상 역시
아직까지 나는 상상해본 적이 없다.
그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완수하려는 사람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한 시간 거리의 할머니 댁을 매주 찾아뵙는 일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가 스스로 정한 도리이자 감정이었다.
그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면서도
“다시는 이런 전화 하지 말거라.” 하고 단호히 말한다.
그러면서도 10만 원을 건넨다.
새벽마다 운동을 나가고,
50이 넘은 이후부터는 매일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이제는 대화의 틈도 못 만든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속도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갔다.
외식 자리에서 음식이 잘못 나와도
화를 낸 적이 없다.
잘못 나오면 그냥 나온 대로 먹는 사람.
불평하지 않는 사람.
그러나 그 나름의 기준은 명확한 사람.
나는 그런 아버지를 두고도 결핍을 느끼며 자랐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너는 꼭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넌 할 수 있다.
정확히 해야 한다.”
그건 그가 스스로에게 걸었던 격언이기도 했다.
‘타인에게는 관대하게,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그런 신념은 고스란히
나에게도 기대와 압박으로 투사됐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수년간 고통을 지나며 얻은 삶의 진리를
아들에게만큼은 아프지 않고 건네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과만을’ 알려주었다.
그가 흘렸던 눈물들은 생략된 채.
*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우둔했고,
모든 것을 스스로 겪어야 비로소 믿을 수 있었다.
직접 실패해야만 이해할 수 있었고,
종잇조각처럼 흩어진 감정을 스스로 주워 담으며 살아야 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는 걸 너무 힘들어했다.
그게 어쩌면 그의 ‘강인함’의 반전이었다.
그는 나약한 존재를 다독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한 톨이라도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던 사람.
그래서 우리는 서로 너무 많은 상처를 주었다.
너무 조심한 사랑이었고,
너무 조심하다가 오해로 번져버린 침묵이었다.
이제 나는 상경했고,
그는 사진첩 속의 풍경처럼 점점 잔상으로 남아간다.
매일 바뀌는 로스터,
연휴마다 더 바빠지는 일.
1년에 세 번 얼굴을 마주치면 많이 보는 셈이다.
그렇게 한 집에서 오해하고 침묵하던 시절은
서서히 껍질을 벗어가고 있다.
결핍이란 어쩌면,
이 모든 과거를 부정하지 않는 일이다.
그 결핍마저 껴안고,
그 결핍 덕분에 내가 나로 서게 되었음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일.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결핍은 사랑이 된다.
말해지지 않았지만,
끝내 남아 있었던 자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