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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가 Jan 17. 2021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단 한가지 유혹

“사람을 쓰러뜨리고 뒤엎고 바닥으로 내던졌다가 두 팔을 뻗고 두 손을 들어 올리고 물 위로 다시 올라가, 지푸라기가 눈에 띄는 순간 매달릴 시간만 남겨놓고 놓아버리는, 먼바다에서 다가오는 강렬하기 짝이 없는 고독의 아홉 번째 파도에, 그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유혹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의 유혹 일 것이다."
 
솔직히 나는 처음 이 단편을 읽으며 로맹 가리의 소설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극찬을 받아 온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의 눈으로는 이야기 전반에 걸친 인물들의 사정에 절반도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의아해하다가  누군가가 로맹 가리의 소설은 모호함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한 것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두 번째는 서사의 바깥에서 이 글을 다시 읽어 보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의 사정이야 어떻든 그들은 그저 삶 안에서 각자의 희망을 찾아다니며 고군분투하는 이들로 보였다.
자신 혹은 타인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사는 사람들.
그 희망은 잊혀지고 싶은 마음 한편으로 숨겨지지 않는 존재의 생명력을 되찾고 싶은 기대이기도 하고, 자기 안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 사랑과 안정감에 대한 집착이기도 하다.
그렇게 각자의 희망을 찾아다니며 한 곳에 머무를 수 없는 것은 새들과 인간 모두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로 개인적으로는 새들이 페루에 와서 죽은 이유는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에서 생의 마지막 희망을 강렬히 느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미 부여일 뿐이다.

 "어쨌든 한 가지 설명은 있을 거요. 언제나 한 가지 이유는 있는 법이니까”

“이 새들이 모두 이렇게 죽어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라고 로저가 던져놓은 이 질문은 책을 읽는 동안 자꾸 이들 앞에 놓인 사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지게 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아니 이 글을 썼던 작가조차도 끝내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아낼 수는 없지 않을까?..... 언제나 저 한 가지 이유를 알지 못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삶일 테니까...
그리고 그 설명을... 이유를 찾느라 애쓰다 결국은 절망 앞에 다다르는 게 인간이라고...
로맹 가리는 되려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절망 앞에서 누군가는 또 다른 희망을 찾아 떠나거나 아니면 누군가는 페루로 날아온 새들과 함께 마지막을 기다리거나... 우리는 그렇게 선택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살아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찾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 대해서 정답을 찾아내는 일이 과연 가능한 건지 모르겠다.
그냥, 살아내는 것, 그뿐이지 않을까.
이 모호한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희망과 체념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할 뿐이다.  

로맹 가리의 문장은 공허하고 쓸쓸하지만 아름다웠다.
특히나 페루의 회색빛 도시 리마와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맞닿은 고요한 바다가 눈 앞에 그려지는 듯 한 이 문장이 마음에 남는다.

“바다란 소란스러우면서도 고요한 살아있는 형이상학, 바라볼 때마다 자신을 잊게 해 주고 가라앉혀주는 광막함, 다가와 상처를 핥아주고 체념을 부추기는 닿을 수 있는 무한이었다.”

로맹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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