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했던 영화라서, 그리고 이동진 영화 평론가의 블로그에서 올해 최고의 영화였다는 극찬을 확인한 터라 개봉하자마자 극장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던 영화가 있었다.
코로나의 습격으로 더욱 뜨겁고 답답해진 나의 여름을 오렌지빛 회상으로 물들여준 영화
"남매의 여름밤".
사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해 진 뒤의 보랏빛 하늘이 배경인 포스터와 여름밤이란 단어가 품고 있는 노스탤지어를 상상하게 하는 제목부터가 흥미를 끌었다.
영화는 사업이 망한 아버지를 따라 두 남매가 할아버지가 계신 2층 양옥집으로 오면서 시작된다. 설명하진 않았지만 아버지 역시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듯한 이 집에 또 다른 사정을 가지고 돌아온 고모까지 함께 지내는 동안의 시간을 그려 놓았다. 비록 힘든 시기를 통과하고 있지만 함께 모여 있는 순간들을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으로 채워가는 가족들의 모습을 사춘기가 찾아온 옥주의 시선으로 보여 준 이야기는 위로와 먹먹함을 함께 전해주었다.
나 역시 오래된 2층 양옥집에 살았던 적이 있어서였을까. 옥주가 2층에 오려는 동생의 침범을 허락하지 않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그 집에 머물렀던 시간은 짧지만 나 역시 2층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나만의 공간으로 정해놓고 동생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심술을 부렸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2층 양옥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특별한 기억의 공감대, 부재가 주는 그리움, 성장하는 아이, 그리고 특히나 "벌새"와 "우리들"같은 영화에서는 미처 설명해 주지 못했던 어른들의 애환 같은 것들이 더 다정하고 친절하게 담겨 있어서 좋았다.
그 여름, 할아버지와 오래된 이층 양옥집에서 보낸 짧지만 흐뭇한 추억은 이제 어른 남매, 어린 남매 모두에게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다. 마지막 즈음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보며 터지듯 쏟아내는 옥주의 울음을 보면서... 슬프지만 그건 또 그때만 만날 수 있는 귀한 감정이라고... 그렇게 위로해 주고 싶었다. 누나와 화해하면서 "우리가 싸운 적이 있었나? "하고 능청을 떠는 어린 동주의 순수함이 귀엽고 부럽다가도... 또 그런 동주가 자라면서 옥주가 되고 언젠가는 아빠와 고모 같은 어른이 될 거라는 걸 상상하니 애잔했다. 꿈을 이룬 어른보다 깨어진 꿈을 바라보며 사는 어른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 괜히 아프게 다가왔다. 우리 모두에게 어린 시절은 공통분모이다. 그때를 돌아보고 마저 깨닫지 못한 것들을 다시 복기해 나갈 수 있는, 혹은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잠시나마 꿈꿀 수 있게 해주는 이런 영화들이 계속해서 사랑받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어른들도 아직 방황하며 자라고 있다고... 그리고 끊임없이 지나온 것들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모로 참 무해하고 좋았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