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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가 Dec 22. 2020

새벽 배송 예찬자의 기록

손가락 쇼핑의 즐거움

세상이 참 좋아졌다는 사실을 매일 아침 현관문 앞에서 깨닫는다.
눈 뜨자마자 현관문을 열면 어젯밤 손가락으로 몇 번 눌러 담아 놓은 가상의 제품들이 눈 앞에 도착해 있다.

새벽 배송, 몇 년 전만 해도 세상에 이렇게 편리한 시스템이 생겨 날 거라고 나 같은 보통 사람은 상상조차 못 했다.

온라인 소비가 늘어나면서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의 대형마트의 이용이 줄었다. (코로나 탓이 크겠지만...)
대형마트의 입점이 늘어나면서 재래시장이 존폐가 심각해졌던 것을 생각하면 역시나 모든 산업은 시대에 따른 흥망성쇠가 있는 듯하다.



사실 나는 몇 년 전부터 대형마트 가는 것이 몹시 꺼려지기 시작했는데 그건 바로 쓸데없이 긴 동선 때문이었다.
백화점에 가면 딱히 살 것도 없으면서 괜히 층층마다 둘러보고 싶어 지는 마음과 같은 걸까.
필요한 물건만 빨리 골라 계산하고 나가야지 다짐해놓고도 이상하게도 대형 마트라는 곳에만 가면 마트 한 바퀴 , 아니 두 바퀴 정도는 돌아야 쇼핑이 끝났다.
그리고 여기에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이렇게 넓고 사람 많은 곳이 싫어진다.

옛날 옛적엔....
동네마다 지금의 마트들과는 다른 규모의

슈퍼마켓이라는 곳이 있었다.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면 무조건 그 슈퍼마켓으로 달려가면 되었다. 조그만 공간이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물건들이 2단, 3단으로 진열되어 공간을 꽉꽉 채우고 있었다.
 내가 어릴 적 살던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 같은 것이 없었다.

슈퍼마켓으로 심부름 가려면 엘리베이터가 없어 5층이나 되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어야 했는데 그래도 두 손에 동전 몇 개 쥐어주시면 군말 없이 심부름을 다녀왔던 것 같다. 착한 딸이라서 라기보다는 이 참에 슈퍼마켓을 둘러보고 싶다는 이유였었다. 슈퍼마켓에 들를 때마다 내가 못 본새에 새로 나온 과자나 라면 아이스크림이 없는지를 꼭 체크해 보곤 했다. 그게 좋았다.

 조명이랄 것도 없는 희미한 백열등 아래 좁은 통로 통로마다 가득 찬 물건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내가 살던 아파트 바로 밑에 있던 슈퍼마켓 집 딸이 그 당시 내 절친이었는데...
지금은 비록 그 아이 얼굴은 기억을 못 하지만 이름만큼은 또렷이 기억한다.  현미 슈퍼마켓의 첫째 딸, 김현미.
당시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용돈이 100원까지라 100원짜리 아이스크림만 사 먹을 수 있었던 나에게 200원짜리 아이스크림도 과자도 마음대로 꺼내 먹을 수 있던 그 아이는 이사로 헤어지기 전까지 내 친구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생각해보니 슈퍼마켓 사장이 되고 싶다는 깜찍한 꿈을 꾸던 아이가 바로 다름 아닌 나였다.
(지금도 나는 신상 과자, 라면에 집착한다.)





지금 도시에는 예전 모습의 동네 슈퍼마켓들은 거의 사라지고 대형마트의 체인점, 그리고 24시간 불을 밝히는 편의점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그와 함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도 조금씩 바뀌어 간다.
아이 셋에 시집살이하면서도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시장에 가서 바리바리 두 손 가득 장을 봐와야 했던 친정엄마의 젊은 시절에 이런 새벽 배송 같은 서비스가 있었다면 그 고단함이 좀 덜했으려나.... 하는 생각도 든다.
슈퍼마켓이라는 공간에 대한 추억은 이제 어릴 적 내 기억 속에서만 어렴풋이 존재하는 것처럼 언젠가는 대형마트도 점점 사라지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새벽 배송보다 더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가 생겨날지도 모를 일이고... (아직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지금 내 아이들에게는 핸드폰만큼이나 택배 상자가 신기하고 만능인 물건이다.
아직 정확한 유통과정을 모르는 어린 둘째에게는 택배 아저씨와 산타 할아버지가 동급이니까 말이다.

어린 시절 나에겐 작은 우주와도 같던 슈퍼마켓이라는 공간에서의 기억들을 함께 나눌 수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추억은 추억일 뿐 역시 나는 편리한 게 더 좋다.

오늘도 소파에 늘어진 채로 손가락을 까닥하며 장바구니를 채워 본다.
내일 아침 도착해 있을 물건들을 상상하며 문명의 발달에 기생하는 한 명의 보통 시민으로서 이 편리함을 감사히 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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