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다리에 매달린 남자아이가 나를 빠끔히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나에게 똑같은 말을 하셨던 것 같다.
딸만 둘을 키우고 있는 나에게 딸이라서 좋겠다, 아들은 힘들다. 이런 말을 해주시는 분들이 꽤 있는데... 글쎄... 딸이라고 마냥 얌전하고, 말 잘 듣고, 엄마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겠거니 하는 것은 편견 같다. 아들은 키워보지 못했으므로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모든 육아가 마찬가지이듯 사. 바. 사. 사람 바이 사람이지 않을까?
큰 아이는 여자아이지만 인형보단 완구류를 가지고 노는 걸 더 좋아했고 발레보다 축구를 더 잘하며 지금도 남자아이들과 운동장에서 뛰어노는걸 더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에너지가 늘 넘쳤으며, 결정적으로 안타까운 부분 중 하나라면 공감능력이 다른 또래에 비해 부족하다. 대신 무던하다.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금방 잊어버린다. 아들 엄마들이 아들 키우기에 대한 하소연을 할 때 매번 ‘아니 이거 우리 큰아이 이야기네’ 하고 속으로 놀랬던 적이 많다. 이런 소감은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니었으며 유치원 시절부터 상담하러 가면 선생님들이 꼭 한 마디씩 덧붙이시던 말이다. 아이가 좀 활발하네요, 뛰어노는 걸 좋아해요. 행동이 커요, 털털해요. 같은 말들이 아이에 대한 선생님들의 평이었다.
둘째의 경우는 경상도 어르신들이 말하시는 “여시” 딱 그런 타입이다.
새침하고 예민하고 인형을 좋아하고 아직도 장래희망은 엘사 공주이다. 엄마의 기분을 잘 살피고 애교가 많은 게 아이의 특징이다. 자라면서 점점 두 아이의 성격은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큰아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질문이 있다며 여성스럽다 남성스럽다는 말이 헷갈린다고 했다. 여성스럽단 건 남자 친구들한테 쓰면 안 되는 말이냐고, 그리고 그 말의 속뜻이 조용하고 까칠하다는 거야?라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학원에 새로 온 남자아이가 조용하고 공부도 잘하고 여자보다 예쁘게 생겨 친구들이 그 아이에게 여성스러운 것 같다고 했다가 그 친구가 화를 내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아이에게 “넌 뛰고 장난치는 거 좋아하고 치마도 안 좋아하는데 그럼 넌 남성스러운 거야? ”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그럼 뭐라고 해야 하냐고 묻길래 얼마 전 어느 예능 프로에 나온 임현주 아나운서의 말이 생각나 그대로 말해줬다. 너답다. 너다워.라고 말하면 된다고.. (우연히 그 클립 영상을 본 것에 대해 감사히 생각한다) 그 친구에겐 그냥 “멋지다, 어른스럽다.”라고 칭찬해줬으면 좋아했을 거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덧붙여 여자 남자를 성격으로 나눌 순 없는 거라고도......
아이들이 어른이 된 세상에선 좀 더 시선이 열려있기를 바라본다.
여자, 남자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바라봐 주는 연습부터가 아이들에게 필요한 성교육은 아닐는지... 생각해본다.
아들에게 여자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교육시킨다며 자랑스러워하시던 어느 학부모님의 말을 듣고 여자를 때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때리면 안 된다고 말해주세요 라고 차마 외칠 수 없어 마음으로 멀어져 버린 일도 생각난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그 이웃 분은 여자 아이들은 머리도 이쁘게 묶어 줄 수 있고 옷도 이쁘게 입혀 줄 수 있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보다 먼저 내리셨다. 그런데.. 그분의 상상과는 다르게 나는 손재주가 없어 우리 딸들 머리 묶어 주는 일이 곤란스럽고 , 그걸 아는지 아이들도 대충 하나로 질끈 묶어줘도 불평이 없다. 옷 입히기는..... 글쎄다. 우리 집은 각자의 취향대로... 큰아이는 체대생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레깅스와 후드 티면 봄과 가을 겨울 패션은 완성인 듯하다.
아이들 모두가 각자가 가진 개성대로 잘 커가 주길 바라며 딸 육아도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걸 넌지시 어필해본다. 아들 키우기만 힘든 게 아니라고.. 그냥 아이를 키운다는 건, 누구든 사람 하나 만들어 내는 일에는 고행이 따르는 법이라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