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2022년.
만 스물여덟, 한국 나이로는 서른.
막 우울증을 극복한 딱 그 시점에 나는 다시 작명소를 찾았다. 이번에는 무려 삼십만 원 짜리였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이름 잘 짓기로 유명하다는 곳을 어렵게 골랐다.
예약한 시간에 맞춰 들어서자, 중년의 여성이 종이 위에 볼펜으로 산 하나를 주욱 그렸다.
“아가씨는 금이에요. 그런데 그 금이 산 위에 묻혀 있어요. 사람들은 금을 좋아하지만, 흙산 꼭대기에 있으니 있는 줄도 몰라요. 꽃이나 나무라도 있어야 사람들이 와서 구경하다가 발견하는데, 아가씨 산은 나무도 없고, 꽃도 없고, 심지어 그것들을 길러낼 물도 부족해요.”
“그러니까 발견하면 아주 반짝이는 금인데, 드러나기 힘든 금. 그래서 스스로 나무도 심고, 꽃도 피우고 그 산을 예쁘게 가꾸여야만 사람들이 알아보게 되는 사주예요.”
‘그렇다면, 이름을 바꾸는 일이 첫 나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과 겹치기만 했던 이름을 바꾸어, 내가 원하던 이름을 가지게 된다면.
이름을 바꾸는 순간에는 누구나 그런 상상을 하게 된다. 새 이름과 함께 살아가고픈 미래에 대해서 말이다. 그건 내가 되고 싶은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000 작가.
나는 이름 뒤에 작가를 붙여 보았다. 어떤 이름이 책 위에 새겨졌을 때 자연스러울까. 누군가 나를 00 작가님이라 부를 때, 어떤 발음이 조금 더 그럴싸할까.
그러나 그 마음을 그녀에게 수줍게 내비쳤을 때 돌아온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아니, 아가씨. 작가 될 생각 버려야 해요. 이 사주는 안정된 가정을 먼저 이루는 게 좋아요. 그렇게 살다 보면 취미로 글을 쓸 수도 있고 그렇게 쓰다 보면 책 한 권 정도 출간 할 수도 있고. 취미로 하는 건 괜찮은데, 작가를 목표로 삶을 걸면 안 돼요.”
취미로요...? 그녀의 말은 곧장 날카롭게 파고들어 왔다.
그 말을 받아들이기 힘든 건 아니었다. 오히려 동의하는 쪽이었다. 충분히, 그게 더 좋은 방향일 수도 있었다. “조금만 부지런히 쓰면, 조금만 열심히 하면….” 사람들의 말에도 나는 끝내 그러지 못했었다. 갖가지 이유를 대며, 어쩌면 쓰는 삶보다 이미 쓰인 것들을 향유하며 사는 삶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하필, 다시 용기를 내 첫발을 떼려는 이 순간에?
오랜 고민 끝에 ‘늦기 전에 다시 해 보자’라고 마음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글을 쓰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인지 실험해 보고 싶었다. 아니라면, 미련 없이 방향을 틀자고.
설명하자면, 글쓰기는 나에게 첫사랑이자 짝사랑 상대이다. 나는 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에 흥미를 가지고 즐겨 쓰곤 했고, 그 마음으로 대학까지 문예창작학과를 갔다.
어느 순간 언제라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항상 연기를 짝사랑해 왔던 것 같아요.
그 사랑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그게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하기는 해요.
이루어질 수 없으니까, 열심히 짝사랑해야지.
조여정 배우는 열심히 사랑했고, 나는 열심히 피해 다녔다. 십 대와 이십 대 전체를 무기력에 내어주며,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았고, 하지 않았음을 괴로워했고,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최소한의 것만 하며 ‘이렇게도 삶이 굴러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방 안에 누워 눈알을 굴리며 무서워하고 또 무서워했다. 무엇을? 버림받는 것을. 모든 것으로부터, 종내에는 사랑받지 못할 것을. 그래서 본체만체하며 눈앞을 흐리게 만들었다. 단지, 첫사랑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러다가 이제야 다시 해보기로, 한 번도 열심히 사랑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서 버림받을지라도 해보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대차게 차인 꼴이 되었다. 우리는 이루어질 수 없으니 마음 접는 게 좋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울었다. 실연당한 여자처럼. 그동안 얼마나 땅굴을 팠던지 깊은 우물에서나 날 것 같은 꺽-꺽- 소리가 났다. 정말로 울고 싶지 않았는데,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통제가 안 되는 눈물도 처음이었다.
“죄송해요, 꺽, 눈물이, 이, 진짜 안, 안 멈춰요.”
내가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그러고 있자 그녀는 적잖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녀는 나를 울릴 의도가 없었고, 어쩌다 보니 오래 봉인되어 있던 감정의 해제 버튼을 살짝 눌렀을 뿐이었다.
끝까지 써도 아무것도 없을까 봐. 부지런히 써도 아무것도 되지 못할까 봐. 그녀의 말대로 영영 흙속에 묻힌 채 잊히는 사람이 될까 봐 나는 두려웠던 것이다.
어쩌면, 내 이름 옆에 작가라는 말이 붙을 날은 오지 않을지도, 그 어떤 책도 완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믿음. 그녀는 그걸 건드렸을 뿐이었다.
한참 울고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양심이 없었던 건 아닐까? 혼자 아무도 모르게 짝사랑하면 누가 알아준다고. 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그랬다.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를 좋아하고 절대 티내지 않았다. 좋아하는 마음이 깊고 진할수록 더 그랬다. 가끔은 부러 이어질 가망이 없는 사람을 좋아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애초에 이 사랑의 결말 따위 알고 싶지도 않은 것처럼.
이제 청승맞은 짝사랑은 청산해야 했다. 그녀의 말대로 내가 흙산이라면, 스스로 울창한 나무가 되어야 하는 법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의 존재를 알리고 그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자고. 이루어질 수 없을지라도 나무도 심고 꽃도 심어보자고. 그러면 적어도 울창한 숲은 못 돼도 사람들이 누워 쉴 수 있는 잔디밭 정도는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그 곳에서 받은 이름으로 바꾸었다. 성은 당연히 바뀌지 않았다. 바뀔 수도 없고. 성이 김 씨이고 그 의미가 금인 걸 생각하면 재밌다. 이름은 변했지만 나는 여전히 금이고 흙 산 위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게 어디 중요한가.
어디에 있건 간에 금은 금이라는 사실, 그것만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