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피아노와 꿈

다시 모든 것은 원점으로.

by 낭만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지역은 비평준화 지역이어서 고등학교를 들어갈 때 중학교 내신성적으로 등급에 맞춰 고등학교를 진학했고, 고등학교 입학 전에 반 배치고사를 치르고 나서야 반 배정을 받았다. 난 어떻게든 나를 아는 아이들 틈에서 벗어나고 싶어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 우리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는 시(市)에서 공부를 제일 못 하는 꼴통 학교였기 때문에 그 학교를 가고 싶지도 않았고 동네를 탈출하고 싶었다. 그래서 제일 공부 잘 하는 시내 중심에 있는 학교는 아니지만, 그래도 "공부 어느정도는 했네"라는 소리는 들을 수 있는 시내 귀퉁이에 붙어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래도 어느정도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모여 있는 학교라 그런지, 우리 학교는 여름방학 때에도 방학 후 2주 정도는 오전에 자율학습을 하러 나와야했다.


여름방학 때 자율학습을 하러 학교를 갔다가 오후가 되서 집에 왔는데, 출근했어야 할 아빠가 집에 누워 있었다. 여름이라 덥긴 했지만 누가 물 한바가지라도 끼얹은건가 싶을 정도로 땀이 흥건했다. 꼭 겨울철 난방 빵빵한 버스 창문에 뿌옇게 서린 물방울들처럼. 수건을 가지고 와서, 아빠 얼굴과 목에 땀을 닦아주며 아빠를 불러봤는데 답이 없었고 끙끙 앓는 소리 또한 없어 그냥 자나보다 했다. 말을 못하는거라 생각은 못하고 원체 말이 없는 사람이니 대답하기 귀찮은가보다 했지만, 혹시 어디 아픈가 싶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평소 병원 한 번 간 적 없는 아빠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엄마는 평소처럼 퇴근하고 집으로 왔다.


그 날 저녁에 엄마가 밥상을 차려놓고선 아빠를 불렀는데 아빠가 느릿느릿 밥상으로 왔다. 엄마는 빨리 밥 먹으러 와야지 밥상 차렸는데 뭐하냐고 타박했고 아빠는 "싯팔, 마-"하며 밥상 앞에 앉아 숟가락을 들려는데 손에 힘이 안들어가는지 왼손으로 오른손에 숟가락을 올려놓다가 갑자기 밥그릇을 왼손으로 들고 수저를 쓰지 않고 강아지처럼 밥그릇에 코를 박고 우걱우걱 먹은 통에 나는 경악했고, 엄마는 "미쳤나, 이 양반이! 똑바로 밥 먹어" 라며 소리를 빽 지르기도 했다.


뭔가 평소와 다르다 느꼈는지, 다음날 아침에 엄마가 일 마무리만 해놓고 온다고 출근했다가 일찍 퇴근하고서 아빠를 데리고 한방병원으로 갔다. 그 때 엄마의 한방에 대한 믿음이 대단했던 때였다. 그 때 한방병원만 안가고 바로 사진만 찍어봤어도 골든타임은 놓치지 않았을텐데 그런거에 무지했던게 지금 생각해보면 제일 안타까운 결정이었던거 같다. 한방병원 가서 진단해보니 한의사가 풍이라고 했는데 엄마가 풍은 아닌거 같다고, 그 다음 날이 되어서야 종합병원 응급실에 갔으니 3일만에 종합병원에 간 셈이다. 그 종합병원에서 생전 감기 한 번 걸려본 적 없다던 아빠는 CT와 MRI를 찍고 뇌출혈 진단을 받았다.


뇌출혈은 발병 후 3시간 이내가 골든타임이라지만 3시간이 뭔가. 3일만에 병원에 간 아빠는 괜찮을 리가 없었다. 이미 피가 고여 굳어있는 부위가 족히 지름 3센티는 넘는다하니 상태가 심각했다. 병원이라하면 치를 떠는 아빠는 링거 꼽고 누워있는 자신이 싫었는지 자꾸 링거를 빼려고 해서 손발을 병원 침대에 다 묶어놓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닥거리는 아빠는 죽기 전 파닥거리며 몸부림치는 한 마리의 고등어 같았다. 진정제를 맞았는지는 몰라도 파닥거리다가 이내 조용해진 아빠는 응급실에 있다가 중환자실로 올라갔는데, 중환자실 가서도 상태가 계속 안좋아졌다.


중환자실에서 의사가 보호자 대기실로 나오더니 우리를 보고 마음의준비를 하라고 앞으로 이틀이 고비라고 얘기하는 순간 드라마처럼 엄마와 나 그리고 동생까지 셋이서 부둥켜 안고 울었다. 엄마와 동생은 아빠가 죽으면 어쩌지 하고 걱정되서 울었겠지만 난 이유가 달랐다. 아빠가 죽으면 돈이 없으니 레슨도 못받고 콩쿨도 못나가는데, 그럼 내년에 고3인 난 대학교는 어떻게 가지 라는 걱정과 함께 두 여자 틈에서 이기적이게도 내 인생을 생각하며 넋놓고 통곡하며 울었다.


아빠의 뇌출혈로 병원비가 엄청나게 들어갈 것을 우려하여 생명보험이나 실비보험이 없었던 우리 집은 긴축 정책의 일환으로 제일 먼저 나의 성악 레슨과 피아노 학원을 끊었다. 좌절했고 이 상황이 너무나 괴로웠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집에 있던 피아노로 마음을 달래며 버티고 있었다.


충격적이었던건 아빠가 돈을 벌지 않으면서 드러난 사실로 엄마에겐 빚이 엄청 많았다. 사업한다고 벌려놨다가 사기 당해 생긴 빚과 그동안 아빠가 돈 잘 번다고 항상 백화점에서 옷과 구두를 사 입고 대학교를 못 간 한을 풀 듯 평생대학원이니 뭐니 하며 무언갈 계속 배우고 수료하며 자신을 채우며 살던 엄마가 이리저리 써 댄 카드 빚까지. 2000년대 초, 우리집의 빚은 7천만원에 육박했다. 더이상 돈 나올 구멍이 없어졌던 우리 집은 7남매 중 막내였던 아빠의 형제들이 있는 곳으로 경제적, 정신적으로 의지하기 위해 멀리 이사를 가야했다.


이사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조금씩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버릴 것은 버리고 가져갈건 한쪽으로 모아놓거나 상자에 담아놓고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피아노가 사라졌다. 한창 아빠 친구들이 우리집에 놀러 많이 오고 내가 피아노학원을 다니면서 실력이 한참 늘던 초등학교 쯔음에 아빠가 사준 피아노였다.




노래를 하기 시작하면서 집에서 노래 연습을 하기 위해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니 나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분신과도 같은 사이였다. 성악 레슨을 하면서는 더더욱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겐 이젠 없어서는 안될 내 신체 중의 일부인 것 같은 존재였다.


그러던 피아노가 학교를 갔다오니 사라져있었다. 피아노 어디갔냐고 물으니 엄마가 이사갈 때 피아노가 있으면 이사비용이 더 많이 나온다고 해서 피아노를 팔아버렸다는 것이다. 어디다가 팔았냐고 얼마나 더 나온다고 팔았냐고 물었더니 피아노 학원 운영하는 사람이 60만원에 피아노를 사갔다는 것이다. 300만원 넘게 주고 산 피아노를, 내 분신과도 같은 피아노를 단 돈 60만원에 팔다니. 악을 썼다. 다시 되돌려 놓으라고. 다시 가지고 오라고. 60만원 다시 갖다주고 피아노 다시 가지고 오라고. 나 피아노 없으면 안된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악을 써도 소용없었다. 성악 레슨도 못하게 된 마당에 유일한 숨구멍이었는데, 그 마저도 상의없이 갑자기 팔아버렸으니 너무나 속상했다. 피아노가 있던 방에서 사라진 피아노가 있던 자리에 앉아 망부석처럼 움직이지 않은채 문을 걸어잠그고 며칠을 굶었다. 굶어 죽으려고 정말 죽어라 굶었다. 내게 꿈도 이미 사라졌는데, 피아노까지 사라졌고 나도 사라지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성악 레슨하는 시간에 공부를 못하기도 했고, 난 입시를 음대 입시로 준비했기 때문에 공부는 그렇게 신경 많이 쓰지 않았던 터라 성적도 보통 수준이었다. 내 모의고사 성적으로는 인서울은 커녕 경기도권도 못 갈 지경이었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음악 말고는 하고싶은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할지 감이 오지도 않았다. 길을 잃었다. 길을 잃었을 때 같이 고민해주던 부모는 없었다. 그저 너 성악 이제 못해. 어쩌라고 라는 식이었고, 내 살 길 내가 찾아야했다.


"그래서 난 이제 뭐하지? "


고3이 되어서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진로고민을 해야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엄마는 내 진로따윈 관심 없었다. 난 밥 먹여놓으면 알아서 크는 존재였으니 무엇을 해야할지 어느 대학, 어느 과를 어떻게 준비하고 가야하는지 혼자 고민해야했다.


오로지 나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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