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그냥 두면 안되나요.
아빠는 힘이 아주 셌다. 키는 165센티로 크지 않지만 힘만큼은 장사였고 몸매 또한 다부진 데다가 잘생겼었다. 호탕하면서도 야무진 성격 덕에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았지만, 집에선 그저 돈 벌어다 주는 아저씨였다. 다른 친구들은 아빠에게 고민상담도 하기도 하고, 아빠가 예쁜 옷 사 입으라며 용돈도 준다고도 하지만 그와는 달리 우리 아빠는 정말이지 매정하리만큼 무뚝뚝했다.
벽에다 소리치면 메아리라도 들려오지만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벽보다 못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엄청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이기까지 했다. 나의 통금시간은 학교 갔다 올 때 빼고는 저녁 6시였다. 버스가 막혀 조금이라도 늦으면 아빠는 돈으로 권위를 세웠다. 바로 용돈을 끊었던 것이다. 밥 먹을 땐 티비를 봐서는 안되며, 입 안에 음식물이 있을 땐 말을 해선 안 됐다. 그랬다간 내 밥그릇이 얼굴에 날아와 박혔다. 깨작깨작 먹으면 밥 맛 떨어진다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뺏어 들고, 밥을 싱크대에 버렸다. 배고파봐야 밥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아빠가 출근할 때면 "잘 다녀오세요." 하면서 허리 숙여 인사하고, 퇴근할 때면 "잘 다녀오셨어요."라고 또 허리 숙여 인사해야 했다. 게다가 말끝마다, "여자가... ", "여자는..." 하고 제약하는 것이 많았다.
나에게만 그런 건 아니었다. 엄마에게도 그랬다. 엄마가 동네 남자 어른들을 스쳐 지나갈 때면 인사를 하는데 엄마가 웃으면서 인사를 하기라도 하면 외간 남자에게 웃음을 흘린다고 엄마를 때렸다. 엄마가 운전 배우고 싶다고 하니, 여자가 집에서 밥만 잘하면 됐지. 뭔 운전이야 라며 단칼에 차단하기도 했다. 아빠엄마랑 같이 있었는데, 엄마랑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아저씨가 스쳐 지나가면서 엄마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했다가 남의 여자 이름 부르며 인사했다고 무슨 사이냐며 날이 어두워지도록 두드려 맞았다.
우리 집에선 아빠의 말이 법이었다. 돈도 돈이었지만 그와 더불어 아빠의 권력의 원천은 폭력과 힘에 있었다. 아빠가 나를 때리면, 엄마는 자신이 맞지 않기 위해서였을까. 아빠한테 사랑받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아빠를 정말 사랑했거나, 나를 때리는 아빠가 정말 이해가 돼서였을까. "네가 잘못한 거야" 라거나, "그러니까 네가 아빠 왔을 때 인사했으면 됐잖아"라고 나무랐다. 내가 아빠 말을 잘 들으면 맞을 일 없다는 거다. 아빠의 폭력을 엄마가 묵인하고, 난 그 폭력을 그대로 받아내면서도 끊임없이 저항했다. 얌전히 맞아주기 싫었다. 때리지 말라고 어떻게든 발악했다. 그렇게 아파트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살아서 뭐 하나. 내게 미래는 있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다가도, 그래도 내가 살아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성악 레슨을 받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 시간에 더 매달렸다. 그 숨구멍 하나로 살고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쯤 살던 지역이 개발된다고 해서 보상금을 받고, 동네 구석에서 읍내의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처음 살아보는 아파트였다. 엘리베이터는 없지만 꼭대기인 5층이었고, 반계단만 올라가면 아파트 옥상으로도 올라갈 수 있었다. 옥상에서 별도 볼 수 있었고, 아파트 앞에는 놀이터와 읍내에서 유명한 오락실도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 방을 가져 본 적이 없었는데 난생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다. 공부할 수 있는 책상과 스탠드 조명을 두고, 그 옆에는 책장을 두어 내가 좋아하는 책들로 가득 채웠다. 들어가면 나오기 아쉬운 소중한 공간이었다.
이전에 살던 집에서는 피아노가 방에 들어갈 공간이 없어 거실마루 위에 피아노가 있었는데 여름에는 땀이 뻘뻘 나기도 하고 겨울에는 손이 얼어 피아노 치기가 고되기도 했는데, 이젠 피아노만 있는 방이 따로 있어 겨울에도 손이 얼지 않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좋았다.
이사를 하고선 나만의 공간이 생겨서 너무나 좋았던 나와는 달리, 그때부터인가 아빠는 친구들을 잘 만나지 않았고 일하는 시간이 아주 길어졌다. 아침 8시쯤 출근을 하고 새벽 두세 시쯤 귀가했는데, 그때마다 술에 잔뜩 취해 들어오고, 그렇게 집에 들어오면 그냥 자는 법이 없었다.
내가 사는 읍내에서 시내에 있는 재학 중인 고등학교까지 가려면 시내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했는데, 학교에서 운행하는 동네별 스쿨버스가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문제는 스쿨버스는 고1, 고2, 고3 이렇게 학년별 등교시간에 맞춰 동네별로 등교 시간에 세 번, 하교 시간에도 세 번 도는데, 학교에서 먼 우리 동네만 고3 등교시간에 맞춰 딱 한 번 들어왔다. 우리 아파트 앞에는 버스가 등교시간에는 오전 6시에 한 번, 하교시간에는 고3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는 새벽 1시에 한 번 운행했기 때문에, 난 새벽 5시에 일어나 등교하면, 다음날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 새벽 2시 정도 되었다. 집에 오면 바로 씻고 곯아떨어져서 새벽 5시에 일어나면 고작 3시간 정도 자는 게 잠의 전부였는데, 아빠가 귀가하는 시간이면 내가 이미 잠들어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막 잠들었던 난 잠든 지 얼마 안 돼서 깨기 일쑤였다. 아빠가 집에 올 때마다 나를 깨웠기 때문이다. 아빠가 힘들게 돈 벌고 집에 왔는데, "아빠, 잘 다녀오셨어요."라고 인사하지 않고 자고 있다는 이유였다. 나라면, 내가 아빠였다면 세 시간밖에 못 자고 학교 가야 하는 내 자식이 짠해서라도 깨우지 않고 한 번 쓰윽 들여다보고 쓰다듬어주고 방에서 나올 거 같은데 아빠는 그저 가장의 대우를 받고 싶었던 걸까. 한 번 잠들면 업어가도 모를 만큼 모든 감각이 닫히는 나라서 그 소리를 못 듣고 자면 아빠는 나를 발로 굴려서 깨우기도 했다. 아무리 자봐야 세 시간밖에 못 자는 터라 한껏 예민하던 때였는데, 그런 내게서 말이 곱게 나갈 리가 없었던 나는 자다 깨서는 아빠와 늘 싸웠다.
다섯 시에 일어나 씻고 6시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에, 무조건 자야 했다. 일 분이라도 기를 쓰고 더 자려는 나를 아빠는 죽어라 깨웠고, 말을 안 듣는다고 때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도 다 못 뜬 채로 꾸역꾸역 밥을 먹는 게 부지기수였는데, 그런 나를 보면서 아빠는 밥 똑바로 먹으라고 소리 지르고 머리를 손으로 후려쳤는데, 그럼 나는 밥 먹다 말고 소리 질렀다.
"아, 씨! 밥 먹는데 왜 건드려!"
그럼 또 사정없이 맞았다. 그냥 손으로 머리와 뺨을 맞는 건 기본이었고, 손에 집히는 모든 것으로 날 때렸다. 책상 의자를 들고 나를 내려찍다가 의자 다리가 부러지기도 하고, 신발장에서 망치를 가져와 허벅지를 때리기도 했다. 너 같은 건 배울 필요 없다며 뭐 하러 학교를 가냐며 교복을 찢어버리기도 했고, 얼굴을 많이 맞아 코피가 터져서 교복 상의가 피범벅이 되어서 학교에 체육복을 입고 등교한 날도 있었다. 학교도 아무 데도 못 가게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버릴 거라며 구둣발로 계속 내 정강이를 차서 지금도 내 오른쪽 정강이에는 그때 탈골되고 치료를 못 받아서 그대로 굳어 뼈가 볼록 튀어나온 것이 있다. 아빠가 죽던가, 내가 죽던가, 그랬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아니면 차라리 아빠가 날 때려서 죽여주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아도 될 텐데.
혹시나 나를 때리는 아빠를 경찰이 잡아가준다면, 나를 분리시켜 준다면 그럼 괜찮지 않을까 하고 112에 신고를 한 적이 있었다.
"아빠가 절 때려죽이려고 해요. 살려주세요." 하며 울부짖었다.
그랬더니 경찰이 내게 한 말은,
"자식은 부모를 신고할 수 없어. 아빠 말 잘 들어야지. 아빠 말 잘 들으렴" 하고 나를 달래며 끊었다.
그 당시 현행법으로는 자식은 부모를 신고할 수 없다했다. 엄마가 하는 말처럼 아빠 말을 잘 들으란다. 난 이 사람들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말을 잘 들어야 하는구나. 맞아도 별 수 없구나라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무력감과 함께 증오심이 생겼다. 난 왜 태어났을까. 어쩌다 여기에 태어났을까. 왜 세상에 나와서 죽을 용기도 없이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는걸까. 끊임없이 나의 존재가 나를 괴롭혔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내면에 돋아있는 가시를 더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점점 더 어둡고 뾰족해진 나를 위로해 줄 그 누구도 없었다. 내가 안타까워 다가오는 친구가 있긴 했지만 그마저도 늘 밀어냈다. 마음에 한기가 돌다 못해 시렸다. 날 이렇게 처참히 찢어놓은 내 부모를 저주했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하늘이 내 소원을 들어주려는 건가. 아빠가 쓰러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