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업계 종사자로서 사진시장의 축소를 그 누구보다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다. 꼭 숫자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체감할 수 있지만 숫자를 들여다보면 체감보다 지표가 더 급격하다는 것이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특히 지난 1년은 상징적인 사건이 두 건이나 발생했다. 마이크로포서드 포맷 특유의 컴팩트한 사이즈로 매니아층을 형성했던 올림푸스가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고, 곧이어 올림푸스 본사는 카메라 사업부를 매각했다. 가장 대중적인 카메라 브랜드라 할 수 있는 캐논은 카메라 사업 한국 법인인 캐논코리아컨슈머이미징을 사무기기 법인인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에 흡수통합시켰다. 사업을 유지하거나 독자법인을 유지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이즈가 작아졌다는 뜻이다.
글로벌 시장도 흉흉한 소문이 돈다. 파나소닉은 2~3년내 성과가 나지 않으면 카메라 사업부를 정리한다는 루머가 돌고, 전통 강자 니콘 역시 수년간 지속되는 성과 부진으로 카메라 사업 유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런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유저들이 모인 커뮤니티의 분위기는 뒤숭숭해진다. 그리고 지겨운 논쟁이 또 고개를 든다. ‘카메라 종말론’이다. 스마트폰은 이 논쟁의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스마트폰이 카메라 시장을 고사 위기에 몰아넣었고, 지속될 폰카의 성능 발전이 결국 겨우 숨쉬고 있는 카메라 시장의 호흡기를 뗄 것이라 주장하는 종말론자가 논쟁의 불씨를 지피면 유저들이 열심히 반박을 한다
“아무리 폰카가 발전해도 카메라를 따라 잡을 순 없다. 판형은 깡패다”
“이미 컴팩트 카메라 시장이 너희가 그렇게 무시하던 폰카에 사실상 망하지 않았나”
“그건 폰으로만 사진을 보는 사람들 얘기다. 큰 화면이나 인화에서의 차이는 극복 불가능하다”
“스마트폰이 거기까지 발전할 것이다. 지금 폰카가 1억 화소 아니냐”
“1인치도 안되는 센서에 1억화소가 무슨 의미가 있냐. 뻥튀기일 뿐이다. 1인치만 돼도 폰이 두꺼워지는데 크롭센서도 못따라온다”
“사진충들 디카 처음 나올 때 디카가 필카 절대 못 따라온다고 비웃었다. 지금 너네도 디카 아니냐. 어디까지 발전할지 누가 아냐”
“그건 지금 얘기하곤 좀 다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사이즈가 확보돼야 실현 가능한 부분이 있다”
“그 크고 무거운 거 들고 다니는 고생 생각하면 폰카가 가장 활용성이 좋다”
“그건 맞지만… 나도 폰카가 젤 편하기 하지만… 그래도 매니아 시장은 계속 살아있을 거다”
이렇게 보면 승자는 역시 종말론자다. 카메라를 쓰는 사람조차 일부는 폰카의 압도적 편의성에 카메라를 정리하곤 한다. 실제로 컴팩트 카메라와 엔트리급 렌즈교환식 카메라는 스마트폰의 보편화와 함께 급격하게 쇠락했다. 카메라를 쓰면서도 휴대성을 놓고 싶지 않아 하는 유저들은 현재 거의 사지선다형 수준의 제한적 선택권만을 가지고 있다. 풀프레임 카메라 역시 그보다 조금 나은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논쟁은 항상 하찮게 느껴진다. 본질을 한참 잘못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카메라가 절대 종말을 맞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이유는 저들의 논쟁 속에 있지 않다. 흔히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카메라 종말론 논쟁은 너무나도 기술 집약적이다. 그들의 성향일 수도 있겠으나 사진이 예술 매체의 하나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는 코끼리 다리만 더듬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컴퓨터와 스마트폰이라는 아주 좋은 기록 도구가 있는데 왜 펜글씨가 인기를 끌까? 컴퓨터 그래픽으로 극사실주의부터 추상화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는데 왜 아직도 붓으로 그림을 그릴까? 스마트워치는 이전에 상상도 못한 기능들을 모두 품고 있는데 시간밖에 표시 못하고 떨어뜨리면 고장 나고 심지어 시간 오차도 있는 수백, 수천만원짜리 오토매틱 시계는 왜 여전히 잘 팔릴까?
카메라를 단순히 기록을 위한 도구로 생각한다면 앞으로 사라지는 게 맞다. 컴팩트 카메라 시장이 고사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기록 이상의 기능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카메라는 더 작아지지 못해 아쉬운 거추장스런 도구였고, 스마트폰이 그 니즈를 해결해주자 카메라가 필요하지 않게 됐다. 그들에게 카메라와 사진은 수단이다. 수단은 언제든 더 효율적인 수단이 있으면 대체될 수 있다.
하지만 행위 자체나 결과물이 예술성을 품고 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개뿔 뭐 대단한 거 한다고 예술을 운운하냐'는 소리는 하지 마시라. 수준이 높아야만 예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싸구려 선민의식에 불과하다. 더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목적이 있다면 수준을 떠나서 ‘예술적 행위’가 된다. 붓으로 그린 그림만이 가진 미학이 있는 것처럼 카메라라는 도구를 활용해서 찍은 사진만이 가진 미학이 있다. 그 도구를 활용할 때만 거치는 과정과 사고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사진은 기록의 목적으로 탄생했으나 독자적인 미학을 완성하며 예술로도 자리잡았다. 카메라라는 도구가 다른 예술들과는 다르게 실용적 목적으로써도 활발하게 쓰이다 보니 간과하게 된 부분이다. 심지어 카메라를 쓰는 사람들조차도 예술적 의도는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진으로 기록을 하는 것이 쉽지 않던 시절부터 예술적 목적으로 사진을 즐기는 사람들이 존재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떠날 사람은 떠나겠지만 꽤 많은 사람들은 이 논쟁에서 벗어나 계속 자신만의 예술을 즐길 것이다.
물론 더이상 대중적이지 않으니 지금보다도 비싼 취미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애초에 예술이 효율성을 추구하는 행위가 아닌데 그게 중요하겠나. 필름카메라가 단종됐음에도 여전히 진지하게 필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무엇을 얻으려고 그 고생을 하고 이전보다 말도 안되게 비싸진 필름을 왜 계속 사겠나?
마지막으로 시그마 CEO 야마키 카즈토의 말을 전한다. 요약하자면, 그의 말은 카메라 대호황기가 비정상이었던 것이고 지금은 ‘비정상의 정상화’기간이라는 의미다.
"사진 시장은 실제로 줄어들고 있지만 무한히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 시장의 궁극적인 규모는 디지털 이전의 전통적인 사진 촬영 시대의 카메라 판매 수준과 비슷할 거라 생각합니다. 고품질의 카메라와 렌즈로 사진을 촬영하고 싶어하는 열정적인 사람들의 실제 숫자는 전통적인 사진 촬영 시대와 비슷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