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험실은 오늘도 불이 켜져 있다

by 윤슬작가
run.JPG

상황과 관계없이 선택지를 받으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고민이 있다.

"나에게도 좋은 일, 남에게도 좋은 일인가?"

"지금도 좋고, 5년 후에도 좋은 일인가?"

오래전에 박웅현작가님의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인터뷰에서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 것이다.

"인문학을 하면 밥이 나오나요? 쌀이 나오나요?"

이에 대한 답변, "밥이 나오지도 않고, 쌀이 나오지도 않지만, 밥맛은 좋아집니다"였다.

과연,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명쾌한 답변이었다.

읽고 쓰는 행위은 내 삶의 많은 영역을 자유롭게 이동해다니면서 여러 곳에 힘을 발휘했다.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더 멋지게 되지 않았을까,라는 후회를 뒤집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불가능한 것에 대해서 불가능하다고 인지할 수 있도록 받아들이는 데에도 큰 몫을 발휘했다. 그 덕분에 아주 멋진 사람이 된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밝아진 느낌이 든다. 삶 자체가 바뀌고, 인생이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내 인생에 대해, 내 삶에 대해 한결 고운 식감을 가지게 되었다.

마음을 즐겁게 하고, 소리내어 웃게하는, 무언가를 먹고싶게 하는 방송이나 콘텐츠가 넘쳐난다. 아주 약간씩 그들과 데이트를 하지만 여전히 나는 읽고 쓰는 것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약간의 즐거움, 그 뒤에 오는 공허함보다는 진지한 휴식이 나는 더 좋다.비운 것 같은데 온전하게 꽉 찬 느낌, 덜어낸 것 같은데 단단해지는 느낌을 가지는 데에 있어 다른 것들은 대부분 일시적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도 모르게 자꾸 읽고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요즘은 아예 대놓고 떠들고 있다. '내 인생의 테마는 독서, 글쓰기, 의미 있는 일상입니다'라고.

'백세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누군가는 '백수시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불안이 만들어낸 이름일 것이다. 불안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테드창의 소설 제목처럼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일 수 있으니. 불안이 내가 마주해야 할 미래라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박웅현작가님에게 던졌던 질문은 내게도 상당히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인문학을 한다고 밥이 나옵니까? 쌀이 나옵니까?"

"읽고 쓰는 행위를 한다고 밥이 나옵니까? 쌀이 나옵니까?"

지금까지의 경험에 미루어보았을 때, 읽고 쓰는 행위를 이어나가는 동안 내 삶은, 내 삶의 맛은 그리 나쁠 것 같지 않다. '먹고 살아가는 관점'을 넘어 '존재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지금의 방식을 유지하는 실험을 계속해나간다면 말이다.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던 실험들, 실험을 고민하게 만드는 지식들, 세상과 만나지 못한 기록들. 나의 실험실은 오늘도 불이 켜져 있다. '나다움연구소'라는 그럴듯한 간판도 생각해봤지만 아직 임상실험을 마치지 못했다. 일단 조금 해 보고 나서 그때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 모두의 르네상스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