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가 올해 15살이다.
'벌써 15살?'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고 있다.
특히 요즘은 영어, 수학학원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귀가하는 시간도 늦어지고 있다.
하루에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사춘기. 아이도 사춘기를 지나고 있다.
그래서 감정이 들쑥날쑥하여 반항 아닌 반항을 할 뿐만 아니라, 나 역시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함께 혼란한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여기서 혼란하다는 것은 전날의 기분과 다른 상태로 하루를 맞이하고, 생각과 다른 말을 툭툭 뱉으면서 원하지도 않는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는 것을 가만히 방관하는 사람이 되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갑자기 화를 내고, 잘 하지도 않는 말을 뱉기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변한 건 없다.
내 안에 있는 정적인 것이 어느 날 드러나기도 하고, 다혈질적인 것이 드러나기도 하는 것처럼 아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바라보는 사람이 '이래야 한다' 혹은 '이게 맞지'라는 생각을 전제조건을 가지고 있으니, 그때그때마다 다르게 보고 해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아이가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것들' 중에서 하나가 나온 것일 수 있는데 말이다.
어떤 날에는 이런 모습이 나온 것이고, 또 어떤 날에는 저런 모습이 드러난 것에 불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억지로 "사춘기"라는 틀에 넣고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는 달라지지 않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나는 것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자기 자신에게 도전하면서 가진 것을 확인하고 걸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시절을 지나고 있다'라는 생각은 이렇게 찾아왔다.
동시에 아이와 함께 지내고 있는 이 시절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도 함께 깨달았다.
어른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그때가 제일 좋았어"라고 말하는 시절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사춘기'라는 이름에 함몰되어 봐야 할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아껴야 할 것을 아껴 다루지 못한 것 같다.
과거의 아쉬움에 대해 스스로를 몰아붙일 마음은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이며, 지금부터 어떻게 하느냐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더 깊고 풍부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해본다.
나는 아이를 항구에 묶어둘 생각이 없다.
내가 정해준 루트로 항해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또한 '이런 모습이 가장 좋다'라는 것도 지니고 있지 않다.
지금의 이 마음은 지켜나갈 것이다.
다만 아이의 행동을 하나, 하나를 전체로 이해하는 오류를 피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볼 생각이다.
나아가 엄마가 방해꾼이 아니라 진정한 친구, 동지라는 느낌을 얻을 수 있도록 가까이 바라봐 줄 생각이다.
그래서 훗날 아이가 엄마와 함께 보낸 이 시간들을 "내 인생의 따뜻한 봄날"로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
-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