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채우지는 않겠지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이야기

by 윤슬작가

"그러니까 그 사건 봤지? 어떤 사람이 부모님 살해했다는 뉴스?"

"어. 진짜 인간도 아니지..."

"누나는 그 사람 이해가 돼? 그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지 않아?"

"그럼, 그건 아니지..."


올해 나이 오십. 대충 다른 사람들이 장가가서 큰 아이가 대학생, 하다못해 고등학생이 된다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남동생에게는 별나라 이야기이다. 어제는 연예인 A씨가 왜 기자회견까지 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쇼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얘기했었다. 한번씩 생각해보면 같이 술을 마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직접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모르긴 몰라도 회사 사람들이 모두 총각, 혹은 돌싱이 아닐까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루가 멀다하고 회식을 할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사실 남동생에게도 애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곧 결혼할 것 같다며 가족 모두 들떠 생활했던 적이 있었다. 5년 전, 인터넷 동호회에서 만났다고 한 그녀는 동생보다 나이가 열살이나 어렸다. 하지만 그녀의 나이가 열살 어리다고 해도 35살이어서, 내심 가족들은 결혼에 골인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만난지 6개월쯤 되었을까, 남동생은 그녀에게서 이별통보를 받아왔고 정확한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밤마다 전화가 왔다. 야근을 해서 아주 늦게 마친 날이거나 직장동료들과 회식이 늦어진 날을 제외하고는.


처음에는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갔었다. 평소 전화를 하지 않았던 남동생의 전화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엄마는 당황했고, 남동생의 전화를 받은 다음 날 아침 내게 전화가 왔다.

"민정아. 지후가 어제 전화가 왔는데, 글쎄 엄마 어제 뉴스에 불난 거 봤냐고 물어보는거야. 아저씨가 홧김에 불을 냈다고 하는 뉴스 봤다고 했더니, 지후가 자기도 깜짝 놀랐다고 하면서 엄마는 이해가 되냐고 물어보는거야.... 그 아저씨가 이해되냐고.... 그래서 안 된다고 했지. 그러고 몇 마디 더 하고 전화를 끊는데, 아무래도 다른 할 말이 있어서 전화한 것 같은데 얘기를 하지 않네. 오늘 네가 한번 전화해서 살짝 물어봐. 무슨 일 있냐고"

"그래? 지후가 그랬어?..지후가 요새 많이 힘든가보네...알겠어...내가 전화해서 한번 물어볼게..통화하고 다시 전화해줄게"


그날 저녁 퇴근 시간에 맞춰 남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지후야, 퇴근했어? 잘 지내고 있지? 요새 소식이 뜸해서 전화했어"

"어,... 누나?. 누나도 잘 지냈지?"

"응. 넌 별...일 없어?"

"나? 별일없는데...참 조카들 잘 있지? 삼촌이 보고 싶어한다는 얘기 좀 해줘..."

"그래...지후야.. 넌 별일 없고?"

"어, 별일 없다니까..."


그렇게 전화를 끊고 다음 날 아침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지후랑 통화했는데...별 얘기없던데..엄마 너무 걱정하지마. 지후... 별일 없다고 했어..."

"그래? 그런데 어젯밤에 지후한테서 또 전화가 온 거야."

"또? 지후가? 뭐라고 하던데?"

"식사하셨냐고 묻더니... 오늘 아침에 어린이집 아이 사고난 거 봤냐고 물어보는 거야....그래서 엄마도 아침뉴스 봤다고 했더니, 누나 애들 다니는 어린이집은 괜찮은지 걱정이라고 하더라...그러면서 어떻게 아이가 내렸는지, 안 내렸는지 확인도 안하고 움직이냐고 얘기하면서 엄마는 그 기사기 이해가 되냐고 묻는거야....."

"어?...아침 뉴스에 나왔던 어린이집 사건 말이지?"

"그래, 그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는 어린이집 기사의 행동이 이해가 되냐고 묻는데...."

"그래?...지후가...그래?"

"얘가 아무래도 그 아가씨랑 헤어지고 충격을 심하게 받은 것 같아.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오는 것도 그렇고...자꾸 이해가 되냐고 묻는 것도 그렇고...아무래도 그 아가씨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야...요새...엄마가 밤에 잠이 안와... 멀리 있어서 가보지도 못하고 애가 쓰이네..."

"그럴 수도 있지. 헤어진 지 얼마되지 않았으니까...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내가 조금 더 신경써볼게... 지후... 퇴근할때쯤 전화해서 괜찮은지 내가 안부도 묻고 그렇게 해볼게...다른 일 있으면 내가 알아보고 이야기해줄게..."


그렇게 시작한 일이 5년째 이어지고 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전화를 먼저 한 날로부터. 퇴근 시간에 맞춰 처음에는 내가 전화를 했었다. 오늘은 어떻게 보냈냐고 간단하게 소식을 주고받는 것으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지후는 그날 뉴스에 올라왔던 사건을 언급했고, 그럴때마다 내게 물었다. "누나는 이해가 돼?"라고.


세상을 이해로만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주부 15년차가 모를리가 없다.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생기는 것도 인생이고,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행동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몸에 새기고 있는 나와 달리, 순수한 청년으로 남아있는 남동생에게는 세상이 온통 이해못할 일로 가득했다. 이해하지 못할 세상에 대해 얘기나눌 사람이 나밖에 없는지 지후는 이해가 안 되는 것에 메모를 해둔 사람처럼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다. 동반자살을 시도한 가장도 이해가 안 되고, 집에 사직서를 냈다고 말하지 못하고 게임방에 출근하는 어느 남자의 이야기도 동생에게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이해가 안 되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겠지만,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뉴스, 관심없는 연예인의 사생활까지 빠짐없이 알려주는 동생의 행동이 처음에는 어디 아픈가 싶어 걱정을 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레파토리가 다를 뿐 순서는 비슷했다. 사회면이나 경제면, 혹은 정치 1면에 올라온 기사거리를 이야기했고,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라며, 누나는 이해가 되냐고 물었고, 나도 이해가 이해가 안 된다고 하면, 그렇지, 하면서 누나도 얼른 쉬어라고 전화를 끊었다. 5년전에는 알지 못했다. 그녀와의 이별에 힘들어가는 남동생을 위해 이정도도 못해줄까 싶었다. 하지만 1년, 2년,...5년째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버거운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도 외로워서 저러는게 아닌가 싶어 매정하게 끊지도 못하겠다. 그래서 계속 전화를 받고, 이해가 되냐는 소리에 이해가 안 된다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어느 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옆집 언니에게 속사정을 얘기했더니, 그 언니가 이렇게 말했다.

"네 동생 외로워서 그러는거야. 여자친구 생겨봐. 전화하라고 해도 안 할껄....그때까지만 네가 좀 이해해줘"

"그럴까..지금까지...5년짼데.."

"10년까지 가기야 하겠어? 오죽하면 너한테 전화할까?"

"그치..."

"그럼... 여자친구 생기는 날로 끝날껄..."

"그렇지?....그렇겠지?.. 그런데 이렇게 10년 채우지는 않겠지?"


by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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