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아마 장식품 될걸?"
바이올린을 매만지는 둘째를 바라보는 남편의 말을 받아쳤다.
"아니야. 잘 할 수 있을 거야"
지금까지의 시간을 미루어 특히, 친정 부모님께 고마운 것이 하나 있다. 나에게 평생의 친구가 될 수 있는 피아노를 배우게 해 주었다는 것. 멋진 직업을 가진 커리어 우먼을 상상하셨는지, 우아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집의 사모님이 되기를 바랐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아는 것, 할 수 있다는 것, 잘하는 것에 갈증을 느꼈던 부모님은 나를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 피아노 학원에 보내주었다. 그리고 전공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기에 6학년 졸업을 앞두고, 학원을 그만두었다. 내가 음악, 나아가 예술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내 삶에 암묵적으로 흐르는 예술적 관심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도 혼자 피아노를 칠 때가 있다. 기분이 좋을 때, 아니 좋아지고 싶을 때. 아니 울고 싶을 때, 그냥 무언가를 막 두드리고 싶을 때, 무슨 마음인지 모를 때,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나는 피아노 앞에 앉는다. 마음이 일순간 고요해진다. 그리고는 이것저것 두드리다가 마지막에 "워털루 전쟁"을 치는 것으로 피아노를 덮는다. 워털루 전쟁은 오래전 피아노 학원을 다닐 때 대회에 나가기 위해 연습했던 곡이다. 참 희한하게도 다른 곡은 거의 모두 잊었는데, 이것은 틀리기는 하지만 악보를 보면 칠 수 있는 곡이다. 그만큼 반복했다는 의미이고, 그만큼 혼났다는 소리도 된다.
우리가 하는 일련의 행위는 그 일을 하고 있는 순간은 물론, 훗날 지금의 노력이 어떤 의미나 메시지를 가지게 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에겐 피아노를 배우는 일이 그랬다. 선생님께 혼나는 게 싫어 어떻게 하면 학원을 그만둘 수 있을까, 나중에 그만두면 절대 피아노 안 칠 거야, 그런 생각만 했었지, 마흔여섯의 내가 피아노 앞에서 워털루 전쟁을 치고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지금 내가 하려는 '실험'도 비슷하다. '시도'라고 할 수도 있고, '도전'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는 두 아이가 악기를 하나씩 다루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불확실한 세상에 대한 성공적인 투자라기보다는 보다 본질적인 관점에서 예술에 대한 호기심을 지닐 수 있기를 희망한다. 개성이 묻어나는 음표로 멋들어지게 작곡을 하거나 루벤스가 울고 갈 작품을 완성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것은 한 가지, 자정 능력(自淨能力)을 발휘해 스스로를 본래의 궤도로 끌어올 수 있는 도구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 이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첫째에게는 플루트를 배우게 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로 시작한 것이라 수준은 높지 않다. 작년에 1년 정도 쉬어서 그런지 진척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1월부터 일주일에 한번, 직접 가서 배우기도 하고, 전화 통화로 진행하기도 하면서 그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아이에게 주문한 것은 한 가지였다. 하루에 10분만 연습하기. 스스로 하는 날도 있었지만, 아예 거들떠보지 않고 지나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적어도 외면하지는 않았다. 시간의 힘은 위대하다고 했던가. 차분하게 불 수 있는 곳이 몇 곡 생겼다. 가끔, 아주 가끔 '엄마, 한번 들어봐'라고 플루트를 들려주는데, 마치 피아노를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문제는 둘째였다. 도무지 감흥이 없다. 어떻게 해서든 음악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쓴다는 느낌이다. 피아노 학원을 억지로 몇 달 보냈지만 연일 '이건 아니다'라는 아이의 말에 내가 먼저 두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드럼은 괜찮을 것 같다는 얘기에 기분 좋게 시작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학원에서의 30분 연습이 전부였다. 스스로 연습하고 잠시라도 즐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줄 수 없었다. 단호하게 말했다. "드럼 말고 다른 것을 알아보자"라고. 어떤 것이 좋을까, 고민이 깊었다. 선생님에게 배울 수도 있고, 집에서 단 10분이라도 연습할 수 있는 악기를 찾았다. 결사반대라고 주장하는 피아노를 빼고 나니, 남는 것이 "바이올린"이었다.
"바이올린 어때?"
"음... 생각해볼게"
단호한 NO가 아니었다. 긍정적인 신호였다.
둘째는 게임 대장이긴 하지만, 남자아이치고는 섬세하고 차분한 편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결정했다.
'바이올린을 배우게 하자'
솔직히 고백하면 누구보다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 나였다. 기회가 되면 바이올린을 배워야지,라는 생각을 늘 해왔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바이올린을 배워와 엄마에게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의도나 방향이 적중할지는 잘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겹쳐지는 부분이 있기를 희망해본다. 나중에, 훨씬 더 시간이 지났을 때 "엄마는 나 덕분에 바이올린 배웠잖아"라는 소리를 들어도 좋다. 물론 반대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열어놓고 있다.
"엄마, 이건 아닌 것 같아"라는 소리에 내가 배워 아이에게 알려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옳다고 시작한 어떤 경로가 다른 발달로 인한 경로와 부딪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어쩔 수 없는 일, 의지로 되지 않은 결과를 마주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리 걱정하지 않을 생각이다. 미래의 걱정은 미래에게 맡겨놓고, 지금에만 집중하고 싶다. 그렇지만 남편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마 장식품 될걸?"
"아니야. 잘 할 수 있을 거야"
어떤 결과를 마주할지 나도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시도하기를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옳다고 믿는 것을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높게 평가한 것을 마냥 고집하기는 어렵겠지만, 끊임없이 논의의 대상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계속 예술의 근처에서 배회하며 발을 내미는 작업을 도울 생각이다. 조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나의 노력이 '친절'로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것조차 지나친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